“대한민국 대학에서 2일에 1번 성범죄가 발생한다”
  • 박성의·조문희·변문우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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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캠퍼스 성범죄 보고서①]
5년간 대학 성범죄 1200건…성희롱 47%, 성추행 26%, 성폭행 20%
‘제2 인하대 사건’ 우려에…與김병욱 “성범죄 대응 전문인력 배치해야”

‘스무 살, 그 꽃다운 시간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지난 7월16일 인천 인하대 귀퉁이 하얀 벽면에 이 같은 내용의 노란색 쪽지 100여 장이 붙었다. 캠퍼스에 추모공간이 열린 건 전날 새벽 캠퍼스에서 학생 A양(20)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다. 수사 결과 범인은 A양의 동기 B씨. B씨는 A양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의혹으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날 이후 84일이 흘렀다. 추모는 끝났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러나 캠퍼스의 비극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대한민국 대학교에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성폭력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해결방안으로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학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인권센터를 비(非)전문 교수가 총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캠퍼스 성범죄의 실상을 최라희(22·가명)양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대학 내 성범죄 5년간 1200건 발생

지난 5월22일, 오후 10시경.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대학생 최라희양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학교에서 만난 선배 김아무개군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기에 선뜻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사건은 벌어졌다. 김군은 최양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체접촉을 시도했다. 성추행이었다. 최양의 거센 저항에 김군은 돌아갔다. 최양은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다만 신고하지 않았다. 교내에 소문이 퍼질 것이 무서워 침묵을 지켰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김군이 전날 밤 이야기를 왜곡, 최양에 대한 모욕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것이다. 동기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양은 분노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누구는 고소하라 했고, 누구는 김군을 불러내자 했다. 고민하던 최양은 교내 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인권센터장은 공과대 학장인 박교수님. 교수님에게 상담프로그램을 문의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전문 상담사가 학교에 상주하지 않는다며 조사위원회부터 꾸리자 했다. 하지만 최양은 공론화로 인한 2차 피해가 두려워 결국 신고를 철회했다. 김군은 휴학계를 냈고, 사건은 없던 일이 됐다.

최양이 겪은 ‘악몽’은 낯선 사고가 아닌 한국 대학의 단면이다. 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포항시남구울릉군)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7월) 전국 대학에서 1200건의 성범죄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 321건 △2019년 348건 △2020년 196건 △2021년 215건 △2022년 120건이었다. 2020년에는 성범죄 건수가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급감했는데, 코로나 펜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대면 수업과 동아리 모임 등이 재개되면서 성범죄도 다시금 증가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대학 내 성범죄 건수도 200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대학 내 성 비위 유형으로는 언어‧신체의 성희롱이 570건(47.50%)으로 가장 많았다. 회식 자리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부적절한 농담을 하거나, 2학년 선배가 단체 채팅방에서 후배의 외모를 품평하는 등의 경우다. 같은 기간 성추행과 성폭력도 각각 316건(26.33%)과 242건(20.17%) 발생했다. 불법촬영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도 35건(2.92%) 발생하며 주요 범죄 유형으로 부상했다. 최근 논란이 된 스토킹의 경우 총 13건으로, 강력범죄로 번질 수 있는 주거 침입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유형을 분석한 결과, 인하대 성폭행 살인 사건처럼 학생 간 캠퍼스 성범죄가 714건으로 가장 빈번했다. 학생이 가해자인 경우가 62.0%(744건)로 가장 많았으며, 교수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25.75%(309건)를 차지했다. 이외 교직원(9.0%, 108건)이 가해자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타교 직원이나 외주업체 직원 등 학사 관련 종사자가 아닌 경우(1.58%, 19건)도 있었다.

피해자 역시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학생인 비율이 87.25%(1047건)로 압도적 수치를 기록했다. 교직원이 성범죄를 당한 사례도 75건(6.25%)으로 나타났다. 다만 교수가 학생으로부터 언어적‧신체적 성희롱 등을 당한 사례도 42건(3.50%) 발생했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센터장이 체대교수?…SOS 외치기 어려운 피해자

교육당국 역시 대학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에 교육부는 올 3월부터 의무적으로 인권센터를 대학 내 설치하도록 했다. 인권센터는 대학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취재 결과, 인권센터를 운영 중인 국내 대학 10곳 중 8곳이 성 문제 및 상담 관련 지식이 전무한 교수를 센터장에 앉힌 것으로 드러났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현황’(9월1일 기준, 국내 4년제 및 전문대학 295교 대상)에 따르면, 상담·심리학이나 여성학 등 관련 전공자를 상담센터장으로 임명한 대학은 7.12%(21개교)에 그쳤다. 여성 복지나 상담 등을 부수적으로 전공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임명한 대학(22개교)을 합치더라도, 성평등 상담 관련 전공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14.58%(43개교)에 불과했다. 특히 성평등센터장의 전공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상담학과 무관한 이공계 12.54%(37개교)로 나타났다.

담당 교수의 전공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간호·물리치료학과로 11.53%(34개교) △체육이나 음악, 연기 등 예·체능학과 8.81%(26개교) △종교·철학 9.83%(29개교) △법대 6.78%(20개교) △경영·경제 6.10%(18개교) △교육대 5.42%(16개교) △유아교육 4.41%(13개교) △사학과 등 인문계열 3.73%(11개교) △사회과학계열 1.69%(5개교) △의예 0.34%(1개교) △조리과 등 기타 학과 3.39%(10개교)였다. 교수가 아닌 일반행정직원이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9.83%(29개교)였으며, 아예 전담기구가 설치되지 않은 학교도 4곳이나 있었다.

학생들은 이 같은 실태에 분노하고 있다. 대학 인권센터가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운영되는 사이, 성희롱·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최윤하(가명‧32)씨는 “법이나 상담 지식, 젠더 감수성 등을 충분히 갖춘 전문가가 상주하지 않는다면, 굳이 대학 인권센터를 피해자가 찾을 이유가 있을까”라고 반문한 뒤 “대학생은 성인이지만 동시에 보호받아야 할 학생이자,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다. 학내 성범죄 문제에 학교가 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학 내 성범죄가 사회 현안으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보다 실효적이고 강제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인권 또는 법, 상담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 센터장을 맡을 경우,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없어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각 센터에 맞게 전문 인력이 적정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교육 당국이 현황을 파악하고 운영 평가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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