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악재에 잠 못 이루는 정몽규 HDC 회장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2 07:3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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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이미지 악화에 실적 하락, 신용등급 강등까지
영업정지 가까스로 면했지만 위험요인 ‘첩첩산중’

1월11일,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현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아파트 구조물과 외벽이 붕괴돼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경찰은 곧바로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아파트 구조 검토도 없이 시공법을 변경하는가 하면, 상층부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동바리(지지대)를 미리 철거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경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법이 정한 가장 엄중한 처분이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주력 계열사인 HDC현산 대표이사직도 내려놨다. 서울시는 6개월 안에 HDC현산에 대한 처분을 결정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처분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울시는 9월말 HDC현산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청문을 결정했다. 청문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시 몇 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월17일 서울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이파크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그 후

HDC현산은 6개월 전인 2021년 6월에도 비슷한 사고를 냈다. 광주 학동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던 5층짜리 건물이 순식간에 도로변으로 무너진 것이다. 무너진 건물은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54번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에도 서울시는 1년4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얼마 후 관리의무 위반으로 부과한 영업정지 8개월을 철회했다. HDC현산은 서울시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건설·부동산 분쟁’ 전문팀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오는 11월부터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6개월 만에, 그것도 광주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대형 사고를 낸 HDC현산은 아무런 제재 없이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화정동 아이파크 수분양자들은 최근 서울시청에 몰려가 HDC현산에 대한 강력한 행정조치를 요구했다. 화정아이파크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6개월 만에 34명의 사상자를 낸 회사가 지금까지 받은 처벌은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경감시켜 받은 4억원대 과징금이 전부다”면서 “대기업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부실공사를 하고도 그에 맞는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특별시의회와 광주광역시의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9월13일 등록말소 처분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서울시에 촉구했다.

10월4일부터 실시되는 국정감사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를 국감에 무더기 소환한 것을 두고 그동안 뒷말이 적지 않았다. “경제인에 대한 마구잡이 소환이 정치권의 갑질 아니냐”는 것이었다. 기업들 역시 자사 총수들의 국감 소환을 두고 “망신 주기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올해 국감 분위기는 달랐다. 오너 대신 CEO들이 국감장에 대거 불려 나갔다. 하지만 HDC그룹의 경우 CEO(최고경영자)인 최익훈 대표와 CSO(최고안전책임자)인 정익희 대표, 오너인 정몽규 회장까지 국감장에 소환됐다.

물론 HDC그룹 측도 할 말은 있다. HDC그룹은 그동안 사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나서 아이파크 전동 철거 및 리빌딩과 수분양자들의 주거 지원을 약속했을 정도다. 두 가지 후속 조치로 회사에서 떠안은 비용만 6000억원을 웃돈다. 지난해 이 회사 영업이익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현장의 안전성을 높일 새로운 안전·품질 조직도 출범했다. 외부 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안전 전문가인 정익희 대표도 이때 영입했다.

그럼에도 HDC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사고 직전 2만5700원이었던 이 회사 주가는 10월5일 현재 1만650원으로 10개월 만에 59%나 급락했다. 실적도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사고로 회사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도급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있다.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33조6000억원에서 올해 6월말 31조원으로 6개월 만에 2조6000억원이나 감소했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HDC현산 측은 무리한 수주를 감행했다. 어렵게 매출은 전년 수준에 맞췄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상반기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됐다.

7월6일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 HDC현산 관계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악의 경우 대출금 조기 상환 가능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용등급까지 강등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0월4일 HDC현산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을 ‘Negative(부정적)’로 부여했다. 현산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것은 2018년 이후 8년여 만이다. 나이스신용평가 측은 광주 지역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사고로 인해 사업 경쟁력이 저하됐고, 공사 손실 반영으로 최근 영업실적이 크게 감소했고, 현금 유동성 및 재무적 융통성을 활용해 자금 소요에 대응하며 차입금이 확대되는 등 재무 부담이 높아진 점 등을 신용등급 조정 이유로 들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건설 사고가 발생한 화정 아파트를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하기로 회사 측이 발표하면서 3377억원의 손실을 반영했다”면서 “영업이익률은 2020년 16.0%에서 2021년 8.1%, 2022년 2분기 -1.7%로 크게 저하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화정 현장 사고 발생 이후 회사가 자금 보충 및 조건부 채무 인수를 제공한 PF유동화증권의 차환 위험이 대두됐다”면서 “차입금은 1조8021억원에서 2조4326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재무 부담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그동안 그룹이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서울시가 영업정지를 확정할 경우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대출금 조기 상환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정 회장이 당면한 악재에 대해 어떤 솔루션을 내놓을지 재계뿐 아니라 정치권, 아이파크 수분양자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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