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공포’ 극대화 노리는 푸틴과 김정은의 도박은 성공할까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8 10: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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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버튼’ 만지작거리며 전 세계에 핵전쟁 경고음 발신
러는 전술핵무기 사용, 北은 핵실험 가능성 커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 버튼을 만지작거리며 전 세계에 핵전쟁 경고음을 요란하게 발신하고 있다. 푸틴은 갈수록 불리해지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뒤집을 결정타로서 전술핵무기 카드를, 김정은은 한·미·일 동맹의 압박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핵실험과 전술핵 동원 카드를 각각 주무르고 있다. 세계가 더욱 불안해지는 이유다.

ⓒ연합뉴스

‘핵 보유국 북한’에 고개 숙이라는 김정은의 압박

북한은 9월25일부터 10월6일까지 열이틀 새 여섯 차례, 이틀에 한 번꼴로 ‘소나기 미사일 도발’을 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긴장 속에 몰아넣어 왔다. 특히 10월6일 발사한 미사일은 미군 항공모함 공격을 상정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발사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갈수록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의 핵실험장에서 9월 중 활동이 증가한 정황이 포착되고, 3번 갱도 쪽이 말끔히 치워져 핵실험 준비를 마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매체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가 10월3일 상업위성 ‘에어버스 네오’ 영상을 토대로 분석해 발표한 내용이라 신빙성이 상당하다. 국가정보원은 앞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경우 그 시기가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가 열리는 10월16일과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7일 사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서 9월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공갈이 가중될수록 그를 억제하기 위한 우리의 힘도 정비례해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이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4월5일 담화에서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인 것과 같은 갈래다.

당시 담화는 “핵 무력의 사명은 우선 전쟁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기본이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타방의 군사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으로 바뀐다”며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 핵 전투 무력이 동원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유사시 재래식 전력이 우위인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쏘아 이른 시일 안에 항복을 받겠다는 ‘남침 작전 계획’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는 이미 전술핵 공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10월4일 발사해 일본 열도를 넘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최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미·일 동맹에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음을 밝힌 ‘핵전쟁 경고장’이나 진배없다. 북한이 이날 4500㎞를 날아간 IRBM을 골라 쏜 것은 유사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는 물론, 평양에서 3400㎞ 떨어진 괌의 미군 전략자산도 얼마든지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IRBM 발사는 1월30일 이후 약 8개월 만이고, 일본 열도 통과는 2017년 9월15일 ‘화성-12호’가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간 이래 5년 만이다. 시기적으로는 한미 연합훈련과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 훈련의 사이를 택했다. 결국 이번 IRBM 도발은 북한이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한·미·일 동맹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시작한 신호탄에 불과하다.

북한이 이렇게 도발 강도를 끌어올리다 급기야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은밀한 타격이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또는 7차 핵실험으로 한·미·일 동맹을 본격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국 IRBM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도발은 ‘핵보유국 북한’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압박인 셈이다.

 

“궁지에 몰린 푸틴, 전술핵무기 외 대안 없어”

가을 들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러시아도 핵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9월21일 예비군 30여만 명에게 부분동원령을 내린 푸틴 대통령이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핵 사용 위협을 한 데 이어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들의 지지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 수뇌부가 이미 3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적의 군사공격에 따라 국가 존립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지역 도네츠크·루한스크와 점령지 자포리자·헤르손을 형식적인 주민투표와 푸틴의 서명을 거쳐 9월30일 합병한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이 4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간주하면 이 지역에서의 전투를 자국 침공으로 간주해 핵 사용 근거로 삼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9월 들어 푸틴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처 전체를 점령하지도 못한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을 합병했다는 사실 자체가 생생한 증거다. 러시아 내부에서조차 합병지의 정확한 경계를 설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푸틴은 10월5일 점령지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의 국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인근에서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다.

사실 푸틴에겐 핵무기가 거의 유일한 탈출 카드가 될 수 있다. 서방의 관측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계속 밀리는 것은 물론 전력 손실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영국 국방부는 9월13일 트위터에서 “러시아군의 정예 제1 근위전차군이 하리키우 전선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며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이 심하게 약화했으며 회복에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내용을 올렸다.

문제는 러시아의 지상군 통합 군수업체인 우랄바곤자보드가 개전 직후 시작된 서방의 제재로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상당수 멈췄다는 점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 경제는 올리가르히와 정부가 관리하기 쉬운 석유·가스 등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유지됐으며 제조업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러시아 밖에서 러시아산 자동차나 선박, 전자장비 등을 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결국 상당수 부품은 해외에 의존해 왔는데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이를 확보하지 못하자 슈퍼마켓에 식료품과 의류 등은 충분해도 수입 장비를 써야 하는 무기는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영국 국방부는 회복에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사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엔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전차·보병전투차·자주포를 비롯한 군사장비는 점검과 수리가 필수적인데, 부품 부족으로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장비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핵 사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모스크바에 대한 국내외의 도전에 대응하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유지하면서 민심 이반을 막으려고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전술핵무기(TNW·Tactical Nuclear Weapon)일 가능성이 크다. 전략핵무기(SNW·Strategic Nuclear Weapon)는 아무래도 후폭풍과 정치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전술핵무기는 전략핵무기와는 그 사용 목적과 대상, 폭발력은 물론 거리, 투발 수단 등에서 사뭇 다르다. 전술핵무기는 기본적으로 야전에서 지역 목표물을 타격해 적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주고 전황을 유리한 국면으로 바꾸는 등 전술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계됐다. 폭발력은 1kt(kt은 TNT 1000톤의 폭발력) 미만부터 수십kt 수준으로 수백kt 규모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전략핵무기와 차이가 크다. 전략핵무기는 국가 간 전략적 교전 단계에서 적지 한복판의 대도시 같은 인구 밀집지역이나 경제·에너지·물류 인프라, 군수공업 중심지, 군 지휘사령부, 군사기지 같은 곳을 노려 상대방의 궤멸이나 전의 상실을 노린다.

운반이나 투발 수단에서도 차이가 있다. 전략핵무기는 ICBM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장거리 폭격기 등 핵무기 삼위일체로 운송된다. 전술핵무기는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이나 야포는 물론이고, 핵배낭이나 핵기뢰 등을 통해 투발된다. 전략핵무기는 상대방이 핵보유국일 경우 보복 핵공격을 불러 해당 국가는 물론 자칫 인류가 절멸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전쟁을 억제할 뿐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판단된다.

하지만 전술핵무기는 이러한 부담이 비교적 적어 사용 가능성이 전략핵무기보다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전술핵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B-29 폭격기를 동원해 투하한 이후 그 누구도 사용하지 못했다. 1950년대 말 등장한 전략핵무기도 아직 실전에서 이용된 적이 없다. 그만큼 핵무기 자체의 정치적·군사적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다.

ⓒEPA 연합
10월4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이 이날 쏜 탄도미사일은 일본 열도에서 동쪽으로 약 3000㎞ 떨어진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했다.ⓒEPA 연합

“핵 맞대응보다 러시아 재래식 전력 무력화”

이런 상황에서 2011~12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예비역 육군 대장의 전망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10월2일 미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쓸 경우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장과 크림반도에서 식별할 수 있는 모든 러시아 재래식 전력과 흑해에 있는 모든 선박을 제거하는 나토 등의 집단적인 노력을 이끌어내 대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모든 러시아군 병력과 무기는 물론 흑해함대까지 궤멸시켜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을 무력화해 앞으로 서방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위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퍼트레이어스는 “이렇게 (핵 사용에 재래식 무기로 대응) 해야 ‘핵에는 핵’ 식으로 전쟁이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하고 “(핵 사용은) 어떤 식으로든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서방이 러시아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대응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 자체가 미국이 러시아에 핵을 쓰지 말라는 압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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