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 의한 핵 아마겟돈? 가능성 지극히 낮다”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2 12:05
  • 호수 17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럽 군사 전문가들 “핵 위협 고조되는 건 맞지만 실행은 비현실적인 시나리오”

1962년 10월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가 60주기를 맞는 이 순간, 세계는 다시 한번 핵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체첸 자치공화국의 수장 람잔 카디로프 등은 “허풍이 아니다”며 핵무기 사용을 언급해 왔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러시아가 절박한 패배 상황에 몰리면 도박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면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세계 최후의 전쟁, 핵 ‘아마겟돈’ 가능성이 쿠바 위기 이래 제일 높다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사회는 오히려 차분하게 반응하는 모양새다. 핵무기 전문가 대다수는 러시아의 전술핵 협박에 대해 그 실행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분석하고 있고, 러시아가 단지 나토와 유럽연합에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조성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판단하고 있다.

10월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의 사우르-모길라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4개 지역에 대한 러시아 가입 조약 서명식에서 사람들이 대형 스크린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

“우크라 영토 아닌 흑해 해상에 쏠 수도”

독일 함부르크대 평화&안보정책연구소(IFSH)의 핵무기 전문가 모리츠 퀴트는 독일 공영방송 ‘타게스샤우’와의 인터뷰에서 핵 위협이 “전에는 제로였으나 지금은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낮다”고 단정했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대 안보학과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연구하는 미할 스메타나 교수도 온라인 안보 전문매체 ‘복스폿(voxpot.cz)’ 기고 글에서 “앞으로 러시아의 패배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확률이 높고, 만약 푸틴이 이를 자신과 정권 유지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다면, 이를 모면하기 위해 핵무기를 고려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로 인한 정치적 대가가 너무 크다”고 봤다.

“푸틴의 위협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특정한 시점과 구체적인 지역을 언급한 최후통합이 아닌 점에 다소 안도한다”면서 “핵 위협의 위험 수위는 50대50 수준이 아니라, 아주 확률이 낮다”고 봤다. 그는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이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개연성이 아주 낮더라도 결과는 참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는 푸틴이 핵폭탄을 우크라이나 영토에 직접 투하하지는 않더라도 흑해 해상이나 흑해 상공에 쏘는 방식으로 위협적인 군사행동을 펼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러시아가 핵공격을 개시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미국과학자협회 통계에 의하면 러시아가 현재 대륙 간 이동이 가능하고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는 총 1500개,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의 약 6배의 화력을 가진 전술핵무기는 2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국보다 다소 많은 수치다.

다수의 전문가는 핵탄두들을 보관소에서 비행기나 로켓, 선박 등 발사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송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인공위성이나 정보활동을 통해 관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영국의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나 미국의 국가안전보장국(NSA)의 모니터링을 통해 어느 정도 사전에 탐지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국정보통신본부는 크렘린이 핵무기 발사를 위한 예비작업을 하는 정황이 보이진 않는다고 10월11일 언론에 밝혔다.

핵무기와 관련한 러시아군의 정확한 의사결정 과정은 불투명하지만, 모든 군 관료가 푸틴의 최악의 결정을 순순히 따를지 여부도 논쟁의 대상이다. 핀란드의 군사 전문가 페카 토바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현지 매체에 “푸틴이 누를 수 있는 빨간 버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면서 핵무기를 사용하려면 러시아 국방장관을 포함해 군대 내 일련의 장군들의 승인이 있어야 필요한 절차가 준비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핵폭발로 생긴 버섯구름이 바람의 영향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지 모른다는 점 등 러시아 정부도 통제 불가능한 물리적 상황은 핵 위협 회의론이 대세를 이룬 이유 중 하나다. 일단 한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되면 러시아 군인들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없을뿐더러,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쉽게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 사용 땐 러시아까지 방사능 오염 예상돼

아울러 핵구름의 이미지가 전 세계에 퍼진다면 그간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 침묵을 지켜온 국가들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스트 소비에트’ 안보 전문가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의 게르하르트 망고트 정치학 교수는 푸틴의 리스크 중 하나로 러시아의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전망했다. 즉 그간 “간접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해온 중국과 인도를 포함해 아프리카·중동·남미·동남아의 수많은 국가와의 관계가 냉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핵 위협이 늘면 자국 내 러시아 엘리트들의 저항도 푸틴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푸틴이 핵을 사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할 경우, “비극적인 결과”를 거론하며 군사적 보복을 하겠다고 했으나 정확히 어떤 대응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푸틴 정권의 2014년과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안전보장각서’에 대한 명백한 위배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개발·생산했던 대규모 핵무기를 보유했었는데 이 각서를 통해 핵 포기의 대가로 러시아·미국·영국으로부터 자국 주권과 영토에 대한 보장을 받았고, 미국으로부터 경제 지원도 약속받았다. 미국은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경제 지원을 했고 핵무기는 모두 1996년까지 러시아에 이관됐다.

 

■ “러시아, 나토에 가입 신청한 적은 없지만 꾸준히 소통해 와”

극한 대치 중인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일까. 이에 대해 시사저널은 나토 측에 서면 질의서를 보내 질문했다. 나토는 본지 질의서에 대한 답으로 “러시아가 그간 공식적으로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한 적은 없지만, 나토는 러시아와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설명했다.

나토의 답변을 요약하면,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관계는 소련 해체 이후인 1991년 러시아가 나토협력이사회(NACC)에 가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1997년 나토 회원국과 옛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이 모여 창설한 안보기구, 유럽대서양협력평의회(EAPC), 1997~99년 활동한 나토·러시아 상설공동위(PJC), 2002년 발족한 나토-러시아협의회(NRC) 등의 기구를 통해 소통해 왔다. 쌍방은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 및 중앙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마약훈련, 반테러 프로그램, 잠수함 요원 구조작업, 민간 긴급지원, 과학교류, 언어 훈련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다.

러시아는 1990년대 말 나토가 이끌던 발칸 지역의 평화활동 지원 차원에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정권의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쌍방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러시아는 각각 2001년과 2002년부터 양자 간 정기적 소통 채널 역할을 해온 모스크바의 나토 지부(NIO), 나토 군사연락사무소(MLM)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