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인구문제 해결책 누구도 모른다…탁상공론 탈피부터 시작”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1 07:3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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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미래인구硏 이사장 맡아 ‘동반성장 전도사’ 10년 노하우 접목
“헛바퀴만 돈 20년 정책 딛고 기업·학계·종교계·정부 힘 모아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시사저널 박정훈<br>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이 10월2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인구문제에 대해선 자신 있는 해법을 잘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니 더 열심히 파고들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솔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총장, 국무총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등을 지내며 대한민국의 주요 현안을 두루 섭렵해온 정 이사장에게도 인구문제는 난제다. 그는 “2010년 국무총리 재직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대안을 모색해 보기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종합적인 대책이 아닌 단편적인 지원을 반복해온 결과, 효과가 나타나긴커녕 출산율만 계속 떨어졌다”면서 “인구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심각한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함께 극복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 이사장은 10월25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초대 이사장이란 직함을 하나 더 짊어졌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민간기업, 학계, 종교계 등이 함께 인구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 플랫폼 형태의 기관이다. 이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출범식에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감경철 CTS 기독교TV 회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출범 기념식과 이어진 토론회, 참석자 제언 등 모든 순서가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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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초대 이사장이 10월2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연구원 출범식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인구문제 해결 위한 기업 역할 강조

앞서 연구원 발기인 대표인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으로부터 이사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정 이사장은 잠시 망설였다. 스스로 인구문제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설립 10주년을 맞은 동반성장연구소 활동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반성장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인 인구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합류했다. 김종훈 회장(이사 겸 발기인 대표), 이인실 전 통계청장(연구원 원장) 등 연구원 주축 멤버들의 진정성도 그의 결정을 도왔다. 

더 이상 정부에만 인구문제 대응을 맡겨선 안 된다는 게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구성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연구원은 민간, 특히 기업이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포스코, SK, 매일유업, 한국콜마 등이 연구원에 지지와 후원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으나 경영계 전체로 볼 땐 작은 물결에 불과하다. 파도를 일으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려면 면밀한 연구와 적극적인 캠페인, 그리고 이를 통솔할 리더십이 절실하다. 바로 정 이사장이 연구원의 리더로 추대된 이유다. 이사장 취임 이틀째인 그를 10월2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동반성장연구소에서 만났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식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만큼 인구문제가 심각함을 방증하는 듯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인구구조 변화라는 예정된 미래가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거란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임에도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기록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출산하면 돈을 주겠다’는 등 비슷비슷하고 일시적인 미봉책 속에서 악순환만 이어졌다.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에만 머물러서다. 나 역시 국무총리 재직 시절 보건복지부와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내려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실효성이 없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넘어 국가가 소멸하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암울한 상황에서 연구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과 국내외 학계는 ‘한국이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앞으로 5년에서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여전히 해결 방안은 안갯속이다. 나도, 어제 출범식에 모인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러니 인구문제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연구하고 정책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꾸려진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10월25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식 현장ⓒ시사저널 박정훈
10월25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식 현장ⓒ시사저널 박정훈

연구원은 정부의 대응에 더해 기업과 가정, 사회도 참여해 종합적인 인구문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서다. 출범식에서 포스코가 사내 출산 장려 제도 운용을 두고 ‘미래를 생각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언급했다. 인구문제가 이대로 방치되면 기업들은 수요뿐 아니라 생산 능력 측면에서 암담한 미래를 맞닥뜨릴 것이다. 자본에 노동이 합쳐져야 생산이 가능하다. 인구 감소에 따라 노동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투자 여력 충분…성장과 분배 동시에 챙겨야” 

재계 6위 포스코는 인구와 생산 능력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출산 친화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경력 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시행하고 자사는 물론 협력사(중소기업) 직원 자녀들까지 직장어린이집 이용과 장학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연구원 발기인 대표인 김종훈 회장이 이끄는 한미글로벌도 직원들에게 다자녀 출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관련 지원 제도를 운용 중이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포스코와 한미글로벌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정 이사장은 지적했다. 

포스코가 출산 지원 범위를 협력사 직원들로 확대한 것은 정 이사장이 주창해온 동반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정 이사장은 “대기업의 지원으로 중소 협력업체의 근무 여건이 좋아져 그 업체 직원들이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자녀를 많이 출산할 수 있다. 업계와 국가 경제 발전 등 상생의 선순환으로 가는 좋은 사례”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더불어 성장하고 같이 나누는 동반성장의 원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처럼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더구나 복합 경제위기 상황이다. ‘비상경영’ 체제인 기업들에 동참을 요구할 수 있을까. 

“경제가 비상인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인 측면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은 외형적인 성장으로 경제 강국이 된 동시에 내적으론 저성장과 양극화에 직면했다. 장기 성장률은 김영삼 정부 때 6%를 기록한 뒤 정권마다 1%씩 낮아져 박근혜 정부 때는 2%로 떨어졌다. 또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7%를 가져가고 자산의 불균형은 소득보다 더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소득 상위계층은 요즘 돈을 펑펑 쓰고 있다. 비상경영 체제라는 주요 대기업들은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너도나도 대규모 신(新)사업 투자계획을 내놨다. 상생에 투자할 여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기업들이 인구와 상생 문제 대응에 비용을 지급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나. 

“그렇다. 현실이 이런데 아직도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의 성장 없이는 나라가 망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 프레임이 지배적이어서 안타깝다. 영혼 없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중소기업 격차와 소득·자산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로 관점을 전환할 때다. 성장 없는 분배는 없고 분배 없는 성장도 없다. 분배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 미시적인 정책에 머무르지 말고 동반성장과 인구문제 해결 등을 포괄하는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만 연구원의 취지에 기업들이 어떻게 반응해 나올지는 모르겠다. 일단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해 호응을 끌어낼 계획이다.” 

정운찬 이사장이 최근 발간된 《동반성장연구소 10년사》를 손에 들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정운찬 이사장이 최근 발간된 《동반성장연구소 10년사》를 손에 들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인구문제 해결을 놓고도 인구수뿐 아니라 인구구조를 고려하며 종합적이고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정 이사장은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고령층 인구 비율 증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43.7세였던 우리나라 인구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나이 순으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은 2031년 50세로 올라가고, 2056년에는 60세에 도달한다. 9년 뒤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50세 이상이 차지하게 되고, 이 연령대가 계속 올라간다는 것이다. 

중위연령이 높아지면서 고령층이 나라의 부(富)를 과점하고 정치권은 보수 일변도로 흐르는 현상이 심해질 여지가 많다고 정 이사장은 내다봤다. 정 이사장은 “변화와 상생에 대한 생각이 씨가 마르면 나라 발전의 모멘텀이 떨어지고 고령층과 청년층 간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인구구조’라는 키워드를 잊지 말고 인구 회복에 더해 사회 혼란을 줄일 방안도 함께 챙겨야 한다”고 했다. 

실종된 정책·정치 리더십에 아쉬움 토로  

청년층 불만과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진행돼야 할까. 

“출산율 제고를 통해 꺼져가는 국가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계획은 (지금 추진하면) 20년 후에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추진하고 당장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령층이 모아둔 돈인 연기금을 청년들의 벤처 창업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이 나올 경우 청년들이 안심하고, 자연스레 결혼·출산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행정과 정치가 제 일을 해내지 못하니 기업과 시민이 팔을 걷어붙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탄생했다. 국가 리더십이 취약하고 정치 갈등이 워낙 큰 가운데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인구문제도 등한시되는 분위기다. 

“인구문제를 파고들 만한 정책·정치 리더가 눈에 띄지 않아 안타깝다. 이제껏 저성장 양극화를 극복할 유일한 길인 동반성장도 주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한 번도 ‘동반성장’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아직까지는 동반성장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부와 국회에 제언한다면. 

“인구 회복과 동반성장 등을 종합적으로 봐달라.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인구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민관이 함께하는 범국가적인 사회운동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정 이사장은 인터뷰 중 ‘모른다’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연구와 실례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 단정(斷定)하지 않겠다는 학자적인 풍모가 엿보였다. 2012년 6월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해 사회의 무지와 냉담한 반응을 뚫고 동반성장의 가치를 증명해온 경험도 녹아있는 듯했다. 정 이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평생의 스승이자 캐나다 출신으로 세계적인 수의학자인 프랭크 스코필드(1888~1970·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가르침을 언급했다. 정직이 가장 경제적인 생활 방법이란 것이다. 그는 “스코필드 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정직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고백하고 나서 의외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며 “솔직히 지금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인구문제를 두고 왜 해당 문제가 발생했는지부터 집어내고 국내외 현장에서 각계의 연구와 정책을 모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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