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땐 14일 만에 대통령 사과…이태원 참사 마주한 尹대통령은?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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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정부 책임론에 尹대통령 향하는 ‘대국민 사과’ 요구
‘세월호 참사’ 朴은 두 번 사과에도 지지율 10%p 넘게 폭락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진상 규명 움직임이 일수록 ‘정부 책임론’이 들끓고 있다. 경찰의 부실‧늑장 대응 정황이 드러나는가 하면, 다수 정부 인사들의 부적절한 태도가 도마에 오르면서다. 비난의 화살은 국정운영의 총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다. “정쟁을 자제하겠다”던 야권은 윤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면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릴 태세다.

다만 대통령실은 “진상 파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논란에 휩싸인 정부 인사 경질 요구에도 명확한 태도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윤 대통령의 집권 스타일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윤 대통령의 사과 여부를 두고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직접 사과하라” 요구에 선 긋는 대통령실

이태원 참사 닷새째인 2일 야권에선 본격적으로 윤 대통령 소환 움직임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연일 윤 대통령을 겨냥해 공개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태의 원인은 경찰의 부실 대응이며, 근본책임은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인 윤 대통령에 있다는 주장이다. 사태 초기 수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외쳤던 태도에서 보다 공세적인 자세로 변한 모습이다.

정부로선 책임론을 회피할 길이 없어 보이다. 전날 경찰청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직전 112 신고 내역이 도화선이 됐다. 사망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를 우려한 신고 전화가 빗발쳤는데도 경찰 측에서 적절한 대응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여기에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의 면피성 발언이 성난 여론에 불을 지폈다. 전날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농담조 발언을 한 것도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다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차원의 공개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오는 5일까지인 국가 애도 기간 동안 진행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의 직접 사과 요구에는 “진상 규명에 주력할 때”라며 사실상 거절했다. 대통령실 차원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피해자를 ‘사망자’로 지칭하라는 규정을 내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방문, 헌화한 뒤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읽는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방문, 헌화한 뒤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읽는 모습 ⓒ 연합뉴스

사과 대신 ‘진실 규명’ 말하는 尹대통령

윤 대통령은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현재로선 최소 애도 기간까지 윤 대통령의 직접 사과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다음 주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자진 사퇴할 경우 사과를 갈음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윤 대통령이 사과 요구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초 수도권 집중 호우 피해 당시 퇴근 논란에 휩싸였을 때가 첫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집중호우 사태 이틀 만인 8월10일 “피해자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하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의 대응 방식은 질타를 받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 “굳이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는데, 취재진 사이 혼선이 생기자 “첫 번째 사과라는 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었지, 사과는 맞다”고 말을 고쳤다.

지난 9월 말 윤 대통령의 북미 해외 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야권은 해당 비속어 논란과 이재명 당 대표를 둘러싼 사정 정국 고조 움직임에 대항해 사상 초유의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까지 감행했는데, 윤 대통령은 “사과할 일 한 적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를 문제 삼으며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윤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5월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5월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눈물 흘린 朴…이태원 참사도 “정부가 무한 책임져야”

이번 참사와 비교선상에 놓인 세월호 참사의 경우엔 어떨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발생 14일 만인 2014년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사과했다. “뭐라 사죄를 드려야 아픔이 위로 받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 장소가 국무회의였던 데다 내용 대부분을 ‘적폐 청산’에 할애하면서 “진정성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로부터 2주 뒤인 5월19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열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참사 발생 34일 만이었다. 

그 사이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넘게 추락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사과 시점인 2014년 4월5주차 조사 기준으로, 한국갤럽에선 11%포인트(59%⟶48%), 리얼미터에선 11.8%포인트(64.7%⟶52.9%) 폭락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 이반을 불러 탄핵을 촉발했다고 평가받는 사건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윤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정부가 무한 책임을 지는 게 맞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시사저널에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정부 여당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대통령의 의무이고 정부여당의 의무이다”라며 “누구 하나 목 자르는 것으로 끝나면 참사는 재발될 수 있다. 사과를 하는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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