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명절과 안전하게 공존하는 길 찾아라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6 12: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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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청춘 열정이 분출하는 새로운 명절
‘핫플레이스 문화’에 군중 집결하는 것 대비해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후, 젊은이들이 왜 생소한 날에 시내에 몰렸는지 궁금해하는 기성세대가 많았다. 사건 초기에 여러 매체에서 이날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몰릴 줄 몰랐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핼러윈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가장 뜨거운 축제일이었다. 과거엔 크리스마스에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렸고, 그후 밸런타인데이가 부상했는데 최근엔 핼러윈이 가장 주목받았다. 가장 짧은 시간에 국가적 축제가 된 사례일 것이다. 거의 새로운 명절이 됐다고까지 할 수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가장 짧은 시간에 국가적 축제가 되다

핼러윈은 원래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이었다. 그들은 10월에 한 해가 끝난다고 여겼다. 그해와 다음 해가 교차하는 10월31일 또는 11월1일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유령이 출몰하는데, 그때 악령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얼굴에 악령 분장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분장을 하고 집단 제사를 지낸 것인데, 이것이 축제로 발전해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로마 교황이 11월1일을 모든 성인의 날(만성절·All Saints’ Day, All Hallows’ Day)로 지정하자 핼러윈 축제일은 10월31일로 굳어졌다. 핼러윈(Halloween)은 ‘모든 성인의 날의 전날(All Hallows Eve)’이라는 뜻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만성제 또는 할로윈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영어를 더 우선하는 세태에 따라 만성제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할로윈은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핼러윈으로 바뀌었다.

이 문화가 더욱 발전한 것은 미국에서다. 1840년대 감자역병 대기근으로 아일랜드인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해 가면서 핼러윈 축제가 미 전역에 퍼졌다. 자체 명절이 없던 미국에서 핼러윈은 다양한 국가 출신의 유럽인들이 함께 즐길 만한 보편적인 기념일이었다. 시점이 10월말이기 때문에 추수를 마친 후의 넉넉한 지역 축제 같은 느낌도 있었다. 핼러윈을 상징하는 두 가지 풍습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잭의 랜턴(Jack-O-Lanterns)’이다. 구두쇠 잭이 악마를 골탕 먹이자 악마가 저주를 걸었다. 잭이 죽은 후 천국과 지옥 어느 곳도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암흑 속에서 헤매게 된 잭은 악마에게 사정했고, 악마는 잭에게 양초를 주었다. 잭은 순무의 속을 파내 그 안에 양초를 넣어 불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엔 호박이 흔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호박을 파내고 양초를 넣었는데 그게 오늘날 잭의 랜턴이라는 호박 상징물이 됐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사탕을 얻는 풍습이다. 아이들이 이웃집에 찾아가 ‘Trick-or-Treat’라고 외치면 이웃이 사탕을 내준다. 얼굴에 분장을 하거나 특이한 옷을 입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핼러윈은 아이들과 관련된 기념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축제로 바뀌어 갔다. 미국에선 1920년대부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핼러윈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카니발적 분위기로 받아들여지면서 핼러윈 거리행렬이 많아졌다. 요즘도 뉴욕에선 핼러윈에 위험 지역 100여 곳이 폐쇄되고 주요 100개 구간이 차 없는 거리가 될 정도로 큰 행사가 펼쳐진다.

마을 공동체의 아이들 관련 기념일처럼 느껴졌던 핼러윈을 성인 젊은이들이 가져간 것은 여기에 열광할 만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분장이다. 분장을 하는 순간 내가 가려지면서 일상과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모두가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서면 일상과는 확연히 구분된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도 강해진다. 처음엔 악령 분장이었지만, 분장 그 자체의 의미가 강해지면서 이젠 온갖 캐릭터와 시각적 아이디어들이 총집결하는 분장 축제가 됐다. 이런 열기에 도취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핼러윈의 위상이 점점 더 강화됐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핼러윈 관련 이미지가 많이 등장했다. 핼러윈의 악령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핼러윈은 ‘핫’해졌다. 1980년대에 핼러윈이라는 록그룹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10월29일 오후 핼러윈 축제가 시작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한국의 핼러윈 문화, 1990년대 중반에 시작

처음에는 당연히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지식으로만 알던 핼러윈을 한국인이 즐기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다. 당시 서울 신촌 홍대 권역에 클럽 문화가 태동했다. 그 클럽에서 핼러윈 파티가 나타난 것이다. 분장과 특이한 옷차림 등도 등장했다. 그때까진 일부만의 소수 문화였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더욱 확산됐다. 영어유치원이 퍼졌는데 그런 곳에선 으레 핼러윈 행사를 했고, 그러자 아이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핼러윈을 챙겨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조기유학이나 해외여행 등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한 이들도 늘어났다. 서구 문화를 추종하는 경향도 강해져 2010년대부터 핼러윈 파티 문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도 핼러윈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연예인들이 일상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핼러윈 분장 사진이 있었다. 이것이 포털사이트를 통해 해마다 크게 화제가 됐다. 2010년에 한 연예인이 독립열사 분장을 하고 핼러윈 파티에 참석한 모습을 인터넷에 올려 큰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핼러윈은 서구인들만의 낯선 기념일이 아닌, 우리가 즐길 이벤트라는 인식이 퍼져 갔다.

인터넷 문화가 형성될 당시 엽기, B급 문화가 유행했다. 이런 유행과 핼러윈 분장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누리꾼의 축제가 될 수 있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즈음 클럽 문화와 파티 문화도 확산됐다. 처음에 홍대 앞에서 인기를 누렸던 클럽은 나중엔 기존 나이트클럽을 대체해 청년 유흥문화의 중심이 됐는데, 그런 클럽에선 때마다 파티를 열었다. 그 파티 중엔 서양의 기념일도 많았고 핼러윈이 그 핵심이었다.

마침 키덜트 문화도 번져 갔다. 그에 따라 캐릭터, 분장에 열광하는 젊은이도 많아졌는데 핼러윈은 이런 흐름하고도 맞아떨어졌다. 특이한 분장은 인터넷 인증샷 문화하고도 어울린다. 젊은이들이 해방감을 만끽할 만한 기념일로 핼러윈만 한 게 없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핼러윈이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등을 제치고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기념일이 됐다.

그리고 핫플레이스 문화가 생겨났다. 과거엔 서울 명동, 종로 등으로 젊은이들이 분산됐는데 요즘엔 몇몇 핫플레이스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핼러윈에 더욱 강하게 집중되는데, 서울에서 그 대표적인 집결지가 바로 이태원과 홍대 앞이다. 이 두 지역이 모두 외국인이 많이 찾는, 개방적이고 이국적인 지역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선 한국의 전통적인 인습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고, 클럽 문화도 발달했기 때문에 핼러윈의 성지가 됐다.

그런데 홍대 앞은 길도 넓고 평지인 반면, 이태원은 좁은 골목에 경사까지 졌다. 그래서 이태원 인파가 위태로워 보였고, 그 모습이 인터넷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이것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풍경이다. 이번 대참사에 일각에선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라서 젊은이들이 특별히 더 많이 모였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전부터 이태원의 핼러윈 인파는 유명했다. 거기다가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라는 해방감까지 겹쳤으니, 이번 핼러윈을 맞아 관리 당국에서 사전에 긴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많은 이가 이번 핼러윈에 기록적인 열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핼러윈 축제로 붐비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시사저널 임준선

운행 통제하는 각국 정부와 대조된 모습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당국은 긴장감이 없었다. 참사가 터진 후에 행안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애초에 인파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핼러윈은 분장을 하기 때문에 일반 축제보다 열기가 더 뜨거워서 관리의 필요성이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군중이 모였을 때 공권력이 나서서 관리하곤 했다. 뉴욕타임스는 방탄소년단 부산 공연에 경찰 1300여 명이 투입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왜 이번엔 관리에 손을 놓은 것처럼 보였는지 불가사의하다.

핼러윈이 젊은이들이 해방감을 만끽하는 축제일이 되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므로 당연히 외국에선 이에 대한 관리를 한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선 경찰이 곳곳에 설치된 감시탑이나 차량에 올라가 질서를 유도한다. 보행 전용 도로와 바리케이드도 설치한다. 홍콩에선 일방통행과 도로 통제를 실시하거나, 시민들을 줄 세워 이동시키는 방법 등으로 운행 통제를 한다. 관리자의 숫자보다 운행을 통제하는 이가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도쿄와 홍콩에선 그런 운행 통제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국 당국이 관리에 나설 정도로 핼러윈의 열기는 뜨겁다. 일본에선 2014년부터 핼러윈 시장이 크리스마스 시장에 버금갈 정도로 커졌다는 말이 나왔다. 그즈음 일본의 한 회사가 주최한 핼러윈 이벤트에 11만 명이 모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선 2010년대 중반에 핼러윈 시장 규모가 우리 돈 7조원 정도라고 했었는데, 올해 전미소매연맹은 미국인들이 핼러윈 용품 구입에 15조원가량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거기에 파티 비용, 술값 등을 합치면 더욱 거대한 액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핼러윈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는 중이다. 요즘에는 영어유치원이 아닌 일반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도 핼러윈을 챙긴다. 자라나는 세대 모두에게 핼러윈이 익숙해져 간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에서도 핼러윈 전후에 으레 관련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클럽 문화도 융성하기 때문에 앞으로 핼러윈은 더욱 뜨거운 청춘의 분출구가 될 것이다. 핫플레이스 문화로 특정 지역에 대군중이 집결하는 모습도 계속될 것이다. 이 새로운 청춘의 명절과 평화롭고 안전하게 공존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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