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민 돕는 정부의 현명한 자세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4 17: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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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세 사기는 그리 쉬운 범죄가 아니다. 집값이 얼만지 대충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는다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런 어리숙한 희생양을 찾는 게 쉽겠는가.

그러나 요즘은 어처구니없는 전세 사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계를 보자. 집값보다 비싼 전세금 때문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래서 중간에서 보증을 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대신 물어준 대위변제금액이 작년엔 5000억원을 넘었고 올해는 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그렇게 대신 물어준 후 집주인으로부터 회수한 돈은 물어준 돈의 절반에 불과하다.

9월28일 기획재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 후속조치로 임차인 피해예방, 피해지원·전세사기 혐의자 단속·처벌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세분야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공인중개업소 앞.ⓒ연합뉴스

전세 사기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요즘 발생하는 전세 사기는 집값이 전세금 이하로 내려가면서 생긴 이른바 ‘깡통전세’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보증보험 탓에 생긴 문제다. 그래서 전세 사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사기범들의 문제로 규정하고 세입자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건 전세 사기의 진짜 원인을 감추려는 불순한 의도로까지 보인다.

뭐가 문제인지 설명하기 위해 전세 사기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시세 2억원짜리 빌라는 경매로 넘어가면 1억원 남짓일 수도 있으니 그런 집의 전세금은 1억원 이상이 되면 불안한 게 상식이다.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이런 집도 공시가격의 150%까지는 전세금으로 인정해 준다. 그런데 시세 2억원짜리 빌라의 공시가격은 때로 2억원 근처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공시가격이 종부세나 재산세의 기준이 되다 보니 그걸 시세 근방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빌라 공시가격의 150%는 집값을 훨씬 추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악용해 집주인들은 공시가격이 2억원 남짓인 빌라의 전세금을 3억원 가까이 부른다. 일반적이라면 위험한 전세라서 다들 꺼리겠지만 공시가격이 2억원인 집은 전세금이 3억원이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을 서주니 세입자들은 안심하고 그런 집에 3억원을 주고 들어간다. 그러니 이런 사고의 원인을 한 줄로 요약하면 ‘집값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위험한 수준까지 보증을 서준 주택도시보증공사’ 때문이다.

이 문제를 굳이 시비하는 이유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리고 이런 전세 사기 문제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면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왜 이런 위험한 집에도 보증을 서게 됐을까. 그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을 서줘야 은행들이 그런 위험한 집에 전세대출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집에 전세로 들어가려는 세입자들은 주로 서민들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자칫하면 나랏돈을 날릴 수도 있는 위험한 결정을 내리느냐, 아니면 눈 딱 감고 서민들을 돕는 걸 선택하느냐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 또는 그 윗선은 눈을 감는 걸 선택한 것이다.

이런 일을 서민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하는 정책 결정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 배경이 그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무 집이나 보증보험에 가입하게 해주는 바람에 수천억원의 나랏돈이 사라졌는데 차라리 정부가 도와줘야 할 어려운 세입자들의 월세를 부분적으로 지원해 줬다면 이처럼 큰 손실은 없었을 것이다. 무조건 서민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윗선의 요구가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게 공무원의 신분과 생계를 평생 보장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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