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예상 밖 부진’에 다시 복잡해진 김정은의 셈법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2 10: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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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웨이브’ 없었던 미 중간선거…北, 당장 핵실험보다 일단 사태 관망 쪽으로 방향 잡을 수도

미국 중간선거가 11월8일(현지시간) 치러지면서 미 의회 권력 변화가 향후 북한 이슈나 한반도 관련 사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화당의 압도적 승리를 의미하는 ‘붉은 물결(Red Wave)’은 없었지만 상·하원 민주·공화 양당의 미묘한 지형 변동이 정책의 전환이나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특히 향후 2년3개월간 이어질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나 그 이후 권력, 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하는 경우 대(對)한반도 접근법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지금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로 떠오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정치권과 의회·행정부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이 어떻게 생존전략을 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을 사실상 확정한 상황에서 대만 문제뿐 아니라 세계 공급망 관련 사안 등 바이든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의회·행정부와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게 놓여 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장 뜨거운 감자로 자리한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다. 미 의회 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부분은 대체적으로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온도차가 드러난다. 중간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11월9일(현지시간) 공화당의 하원 장악을 일찌감치 선언한 케빈 메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미국의 경제 침체를 이유로 들면서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공화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사진공동취재단

공화당 “바이든, 나약하고 무능하게 안보 다뤄”

중국의 위협도 만만치 않은 도전으로 미국의 조야는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에 대해 “물러 터졌다”고 비난해온 공화당이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 대해 강력한 대응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중간선거 직전 공화당은 정책공약을 통해 ‘중국 특별위원회’ 신설을 공언했고,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약하고 무능하게 미국의 안보를 다뤘다”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이슈가 미 대외정책의 맨 우선순위로 다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과거 중동 문제나 테러 이슈처럼 한반도 현안과 병행해 2~3개 현장을 다룰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복합적이고 중차대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양상이란 측면에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사안은 미국 입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거나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불가피한 국면 속에서도 북한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나 미 의회가 마냥 후순위로 밀어두거나 방치할 수 없는 사안이란 점도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들어 핵과 미사일 도발 위협을 통해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 무력시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워싱턴 정가에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북한의 전술핵이나 탄도미사일 도발, 신형 잠수함 건조나 이에 탑재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이 미국의 안보와 한반도 전략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북한 김정은은 9월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법령화를 통해 유사시 핵운용을 위한 교리를 완성했다. 핵버튼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유일 지배’를 명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핵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거나 수뇌부가 위해를 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제 핵사용도 가능한 길을 열었다. 북한의 호전적 특성으로 볼 때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월25일부터 보름간 이뤄진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을 직접 참관하면서 저수지에서의 탄도미사일 수중발사 등 기상천외한 도발 유형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 열도를 넘는 사실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려 미국과 일본의 관심과 대응을 유발했다.

 

北, 전술핵이나 탄도미사일 시험 가능성 있어

특이한 점은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김정은이 대응하는 양상의 변화였다. 과거 한미 훈련 기간에는 도발을 자제하면서 공개활동까지 접었던 김 위원장이었으나, 이번에는 미사일 발사뿐 아니라 대규모 항공전력과 포병부대를 동원한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맞대응을 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은 11월3일 펜타곤에서 열린 54차 안보협의회(SCM)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강화하고 새 조치도 강구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이런 기류 속에서 중간선거 이후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가 북한에 대해 어떤 대응을 결정하고 정책에서 어떤 변화를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화당이 의회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아무래도 바이든 행정부에 더욱 강력한 대북 대응을 주문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원에서 공화당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로 다루고 있는 마이클 맥카울 의원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나약한 외교정책을 쓰는 바람에 북한이 대담해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영 김 하원의원 등이 북한인권특사의 조속한 임명을 촉구하는 등 대북 압박의 고삐도 더욱 조일 기세다.

물론 의회 권력의 변동이 대북 정책이나 한반도 관련 접근 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11월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에서는 초당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북한 이슈가 미국 내에서 정치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한 대북 전문가도 “설령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 해도 유럽에서의 전쟁(우크라이나 사태)이 워싱턴 입장에서는 더 급박한 문제로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가을 들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며 탄도미사일 발사 등 연쇄도발을 이어온 북한은 중간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선은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미 중간선거를 계기로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란 예상을 깬 건 그중 하나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말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중국 공산당 대회(10월26일)와 미 중간선거 사이에 추가 핵실험을 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고지도부의 결심만 남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런 국정원의 예측이 빗나간 건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자초하고 중국 지도부의 심기도 불편하게 만들 핵실험보다 일단 사태 관망 쪽으로 김정은이 방향을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은의 7차 핵실험 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이미 전술핵 운용 훈련까지 마친 터라 소규모·저위력 전술핵이나 관련 탄도미사일 시험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앞서 이뤄진 북한의 미사일 연쇄도발도 서울과 윤석열 정부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북핵과 미사일의 종착점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을 개발하고 이를 투발할 ICBM급 탄도미사일 체계를 안정적으로 갖추는 건 김정은 체제의 생존은 물론 존립 기반을 다지고 북·미 간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고 북한은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간선거일인 11월8일 플로리다주 팜 비치에서 연설하고 있다.ⓒAP 연합

김정은, 누구보다 공화당 완승 원했을 수도

이런 맥락에서 정작 김정은이 이번 중간선거 국면에서 촉각을 곤두세운 대목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 승리로 차기 대선주자 입지를 다지려 했던 트럼프로서는 선거 결과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물론 트럼프는 공화당 일각의 책임론 제기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조금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내 개인적 관점에서는 매우 큰 승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11월15일 자신의 자택인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중대한 발표를 할 것이라며 대통령 재출마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김정은은 여전히 2018년 6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추억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북핵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첫 정상회담을 한 건 김정은에게 승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그의 염원이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다. 이듬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로 쓴맛을 봤지만 트럼프에 대한 김정은의 각별한 애정은 퇴임 이후 트럼프가 공개한 친서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귀환을 고대하는 듯한 기류도 드러난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나 고위 인사들이 트럼프에 대한 비난을 금기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2년 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김정은은 ‘어게인 2018 싱가포르’를 재현하려 들 수 있다. 북한이 김일성 집권 시기부터 오매불망하던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가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현실이 되는 짜릿한 광경을 김정은은 생생하게 지켜봤다.

공화당이 하원을 이끌게 되면 트럼프 사법 리스크의 핵심인 1·6 폭동 사태를 다뤄온 조사위원회가 해체되거나 활동을 중단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에겐 족쇄가 풀리는 셈이다. 낯뜨거운 표현까지 써가면서 트럼프에게 구애편지를 보내고 공을 들여온 건 ‘역사적’ 재회에 대한 김정은의 기대 때문일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의 뜻대로 일이 풀려 갈지는 미지수다. 중간선거에서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든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 책임론이 제기된다. 우호적이던 폭스뉴스까지 나서 트럼프를 “중간선거의 최대 패배자”로 지목하고 나서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플로리다 주지사로서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로 급부상 중인 론 드샌티스와의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 백악관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시사하면서, ‘트럼프와 드샌티스 중 누가 더 위협적이냐’는 질문에 “둘이 다투는 걸 지켜보는 게 흥미로울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드샌티스를 더 주목해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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