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0 10: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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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누구의 것인가’→‘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10월15일 SPC그룹 계열사 한 제빵공장에서 기계에 끼여 20대 근로자가 숨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면 회사는 직원에게 12시간 밤샘근무를 시켰고, 2인 1조 근무원칙은 지키지 않았으며, 덮개를 열면 기계가 멈추는 자동방호장치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고가 난 다음 날에도 사고 현장을 가린 채 직원들을 그 옆에서 일하게 했다. 빵을 만들다 사망한 고인의 빈소에는 관례라며 빵을 보냈다.

대응도 늦어 사과문이 나온 건 사고가 나고 일주일이 지난 10월21일이었다. 사과문이 발표되고 이틀 뒤인 23일에는 SPC의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해 SPC는 또 사과문을 내야 했다. SPC그룹은 이번 사고 전에도 제빵사의 불법 파견 및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과 잦은 산재 발생으로 문제 제기가 많았던 회사다.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여성노동단체 관계자 등이 SPL 평택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업 스스로 존재 가치 입증해야

같은 날(10월15일) 오후 경기도 판교 SK C&C 데이터센터(IDC) 화재로 카카오 플랫폼이 마비됐다. 카카오톡은 물론 메일과 포털, 카카오TV, 뉴스 등 카카오의 대다수 서비스가 24시간 넘게 장애를 겪었다. 티스토리 등 일부 서비스는 만 이틀이 지나도록 정상화되지 못했다. 메일 서비스의 경우 4일이 지난 10월19일에야 복구됐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오판이었다. 막대한 투자비 부담에 네이버는 9년 전에 세운 자체 데이터센터를 카카오는 끝내 만들지 않았다. 사고는 카카오톡을 내놓고 12년 만에 재계 15위의 대기업집단이 됐으면서도 그만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했던 결과다.

유제품 기업 푸르밀은 11월30일로 사업을 종료한다면서 일방적으로 직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다행히 이후 푸르밀은 4차례의 노사 교섭을 통해 사업 종료 방침을 철회하고, 30% 인원 감축을 통해 조직을 줄인다는 조건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푸르밀은 신준호 전 회장(60%)과 장녀 신경아 대선건설 대표(12.6%), 차남 신동환 대표(10%) 등 총수 일가가 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준호 전 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2007년 롯데에서 분리 독립했다. 문제가 생긴 건 2세 경영의 실패 탓이다. 4년 전 오너 2세가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 푸르밀은 내내 적자였다. 이미 누적 적자는 300억원이 넘는다.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매각을 추진했으나 실패하자 아예 사업을 종료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청산이나 폐업이 아닌 사업 종료를 택한 이유는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사회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ESG 열풍이 불었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같은 비재무적 지표를 고려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개념은 기업 경영의 새로운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기가 나빠지면서 상황이 변했고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당장 수익 창출과 살아남기가 우선 과제가 된 시장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기업은 영리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하지 못하고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은 의미가 없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말한 것처럼 파산한 회사는 바람직하지 않은 고용주이고, 그런 회사가 좋은 이웃일 가능성은 작다.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활동으로 사회와 국가의 부(富)를 키우는 것이 기업 본연의 역할이다. 기업이 져야 할 유일한 책임은 주주에 대한 것이며, 이는 금융시장에서 주가로 나타난다는 것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견해다.

물론 기업이 성공하는 데는 전제가 있다. 적법한 과정을 거친 투명한 성과여야만 한다. 미국 조지아주립대학 경영학자 아치 캐럴(Archie Car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4단계로 구분한다. 재화나 서비스의 효율적 생산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적 책임이 1단계라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은 2단계다. 윤리적 책임과 인도적 책임이 다음 단계들이다. 프리드먼도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기업 본래의 경제적 기능이라면 동시에 기업은 공해, 결함상품, 사고, 재해 등을 발생시키지 않는 ‘비경제적 책임’도 가진다고 했다. 결국,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의 기본은 좋은 성과로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달성하면서도 윤리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지고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과 대주주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 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소액주주와 종업원, 소비자, 지역 주민 등의 이익을 보호하는 문제다. 근로자의 고용 보장이나 안전한 근로환경 유지, 플랫폼 기업의 고객 데이터 보호는 사실 상식적인 과제들이다. 기본적인 규범을 지키는 데도 기업이나 경영자의 자율과 양식으로 부족하다면 제재가 따른다. 당장 우리 사회에서는 플랫폼 규제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고 국회에서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효용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기업의 잘못된 행위로 이 같은 논의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기 하락으로 ESG 열기도 시들

‘워크 워싱(Woke Washing)’은 기업이 사회적 문제나 가치에 깨어있는 척하면서 실제로 경영활동에서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이 기업에 기대하는 사항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는 소비행위를 뜻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적극적인 소비자들은 이제 친환경을 포함해 사회적 의미가 담긴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찾고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어긋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도 나선다. 깨어있는 소비자의 시대에 기업은 스스로 이해관계자와 대중에게 존재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이 주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메시지는 여전히 힘이 있다. 근본적으로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첫 단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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