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 릴레이 회담 성과에도 ‘순방 징크스’ 못 떨친 尹 외교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9 14: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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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 ‘날리면’ 트라우마 탓, 언론 기피 현상 노골화
정상회담은 비공개, 김건희 여사 동정은 공개해 ‘논란 자초

“이번엔 현안을 두고 평가가 나오고 있다.” “회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만났다는 게 중요하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순방과 관련해 외교가에서는 ‘조문 불발’과 ‘날리면’으로 얼룩졌던 지난 9월의 영국·북미 순방과는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한일 관계도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중 패권 전장의 한가운데인 아세안에서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의 윤곽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1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태 전략과 관련해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자유로운 인도·태평양을 지향한다. 역내 자유·인권·법치와 같은 핵심 가치가 존중돼야 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민주주의 전통과 가치, 이에 기반을 둔 제도와 질서를 내세운 이른바 ‘바이든 독트린’에 성큼 다가간 셈이다. 덕분에 처음으로 한·미·일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포괄적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대북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데 힘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월16일 4박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연합뉴스

MBC 전용기 배제…尹, 기자 2명 따로 면담

이처럼 한국이 불안한 국제정세 속 ‘가치외교’를 분명히 해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환호의 뒤편에 중국과의 관계는 숙제로 남게 됐다. 인·태 전략 자체가 중국 견제를 공간화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한중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그럼에도 2년11개월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정상회담이 성사돼 미국·일본·중국과의 릴레이 양자 회담을 마쳤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외교전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지낸 신각수 전 주일 한국대사는 “다자 무대 속 양자 외교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며 “그간의 노력이 쌓여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순방에서도 ‘순방 징크스’는 반복됐다. 순방 직전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서 배제하며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노출하는 한편 전용기 안에서 특정 기자를 따로 불러 면담하는 등 전용기를 사유화했다는 논란도 자초했다. ‘날리면’의 트라우마 탓인지 미국·일본·중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이 순방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되지 않은 채 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현지 의료 취약계층 방문 사진은 공개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야당 정치인은 이를 ‘빈곤 포르노’라고 쏘아붙였다가 역풍을 맞고 있지만, 김 여사의 행보에 여당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다. 분명 성과를 올린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이었지만, 편협한 언론관을 곳곳에서 드러내는 한계를 노출한 채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도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 대통령실 간 불편함은 순방 직전 MBC 기자들을 전용기에서 배제하면서 촉발됐다. 다만 해외 정상들과 윤 대통령의 회담과 전용기 내 배경 취재를 위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모든 언론이 이번 순방에 협조했다. 이처럼 특정 언론의 전용기 배제는 봉합 수순을 밟는 듯했지만,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윤 대통령이 특정 언론매체 기자 두 명만 따로 불러 면담하면서 기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윤 대통령은 특정 언론 기자 두 명과 한 시간가량 따로 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용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가량 지났을 때, 승무원이 두 기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들은 전용기 앞쪽에 있는 대통령 전용 공간으로 이동했다. 대통령 전용기의 머리 부분에 참모들이, 뒷부분에 기자석이 있는 구조에서 두 기자가 앞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여러 기자가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취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두 기자가 윤 대통령을 취재하며 개인적인 친분이 쌓인 관계라는 점에서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월27일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취재진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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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월30일 NATO 정상회의 참석을 마친 뒤 귀국길에 대통령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두 번으로 줄어든 브리핑…‘날리면’ 선제대응

특정 기자와 한 시간가량 면담하면서도 순방 출발과 도착 때 모두 윤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를 열지 않았다.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는 출·귀국 때 기내 간담회를 모두 열었다. 이를 두고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 이후 일부 언론사가 항의의 뜻으로 전용기가 아닌 민항기를 이용하자 이들의 취재 기회를 제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아예 간담회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무엇보다 미국·일본·중국 등과의 양자 회담이 순방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되지 않고 열리면서 대통령실이 과거 ‘비속어 논란’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언론 취재를 제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회담들이 비공개로 진행된 이유에 대해 “양국 간 사전 협의에 따른 것”이라며 “한 나라가 임의로 취재를 제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순방을 수행하는 고위급 관계자의 현지 언론 브리핑도 9월 영국·북미 순방 때와 비교해 네 번에서 두 번으로 줄면서 “대통령실이 언론을 피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한미·한일·한중 정상회담 결과는 모두 서면 브리핑 자료로 제공됐고 별도의 언론 질의응답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기자들과 만나 약 13분간 질의응답을 진행한 것과도 대조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순방에서 정부가 언론 브리핑을 소극적으로 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순방을 떠나기 전 사전 브리핑에서 어느 정도 큰 윤곽을 말씀드렸고 정상회담이 진행되기 전에 여러 가지 예고를 했다”며 “나름대로 보도 수요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현지 의료 취약계층 방문 사진을 두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김 여사의 행보를 가리켜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하자, 여당은 “빈곤 포르노 표현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주호영 원내대표)이라며 반발했다. 여당은 더 나아가 11월16일 장 최고위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논란이 잦아들 기미가 없다.

 

논란 키운 김건희 여사의 독자 행동

장 최고위원의 발언이 적절한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프놈펜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14세 소년을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은 김 여사의 태도나 그 모습을 촬영해 공개한 대통령실이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가 정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지켰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해당 가이드라인엔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가 개발도상국의 아동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할 때 보도에 관계된 모든 사람이 아동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담겨 있다.

김 여사가 현지 병원에서 병상에 앉은 환아와 주먹 악수를 나눌 때도 최초 촬영분의 시선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환아에게 직접 손가락으로 카메라 방향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 뒤 다시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굳이 정면 사진을 요구하며 두 번씩이나 인사를 나누는 김 여사의 모습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정면보다 옆모습, 혹은 대역 사진으로 이를 대체하고자 하는 최근 흐름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다른 국가 정상의 배우자들이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과 달리 김 여사만 환아를 찾아 개별 일정을 소화한 것은 여당 내부에서도 전략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의힘 수도권 지역구 한 의원은 “캄보디아 정부가 정상회의 개최 기간에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달랐을 것”이라며 “‘외교적 결례’ 비판 이전에 캄보디아의 형편을 고려한 외교적 전략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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