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참을 수 없는 책임의 가벼움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1 08: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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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으로 꽤 오랜 기간 익숙하게 마주해 왔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은 늘 대하기가 어렵다. 안타까운 참사로 인해 마음이 가뜩이나 무겁고 참담한 상태에서 툭툭 던져지는 말들의 해괴함이 그 어려움을 더 크게 만든다. 참사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튀어나오는 그 말들은 너무 모호하고 낯설고 엉뚱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마치 언어에 대한 이해력을 시험받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참사가 일어난 지역의 단체장은 “마음의 책임을 지겠다”라는 희한한 말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고, 대통령비서실장은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건 좀 후진적으로 본다”는 표현을 써 논란을 불렀다. 구청장이 입에 올린 ‘마음의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 마음이 발설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김대기 실장이 언급한 ‘후진적’이라는 단어의 뜻도 마찬가지다.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내린 잣대가 무엇인지도 난해할 뿐 아니라, 장관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후진적이라면 그런 말조차 삼가고 인내하는 것이 과연 선진적 행위인지 알 길이 없어서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론조사에서 이상민 장관의 사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다수의 국민은 결국 ‘후진 국민’이 되고 마는 셈이다. 그런 정도의 이해도 없이 한 발언이라면 그야말로 억지 주장이나 다름없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대통령실 국정감사 중에 적었다가 언론 카메라에 잡혀 입방아에 오른 ‘웃기고 있네’라는 문장과 이상민 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폼나게’ 발언도 이해력을 시험받게 하는 언어로서 빼놓기 어렵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휘들은 그 자체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슬픔이 헛돌고 책임이 희화화되는 이 상황은 현 정부가 줄기차게 강조해온 ‘참사 원인 규명 우선’이라는 기조와도 어긋나 있다. 책임 공방이 가벼운 말들에 의해 비틀리고 경찰 수사가 ‘일선 실무자 과실’에 집중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참사가 제대로 수습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만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14일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모인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모인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특히 소방 당국에 먼저 화살이 돌려지는 데 대한 우려와 걱정이 적지 않다. 이미 현장에서 영상으로도 보여졌듯이 참사나 재난의 마지막을 견디고 수습하는 것은 대부분 소방의 역할이다. 그처럼 참사 현장의 맨 끝자리를 지켜냈던 이들이 책임 문제에서는 맨 앞자리로 이끌려나오는 형상은 이 정부가 그토록 외치는 ‘공정’ ‘상식’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11월4일 아연 광산에서 고립된 광부들을 221시간 만에 구조해낸 소방요원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조에 나섰던 장수창 소방사는 “사고가 난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라고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현장의 악조건은 물론, 자기 마음속의 두려움과도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는커녕, ‘마음의 책임’을 먼저 말하거나 ‘누군들 폼나게 사퇴하고 싶지 않겠냐’며 버티는 고위 인사들에 앞서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 일일까.

이처럼 책임이 가야 할 방향을 바로 찾지 못한 채 가벼이 부유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우리의 안전 또한 함께 가벼워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안전과 책임이 계속 막막해지는 상황에서는 “(안전을 기대했던 곳에서 누구나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날 죽지 않은 모든 사람이 생존자”라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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