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환호 엇갈리는 ‘냉온탕 IPO’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22.11.28 12: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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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만 공모 철회 공시 4곳 vs 한편에선 IPO 1000대 1 경쟁률

국내 증시 침체가 지속되면서 IPO(기업공개) 시장의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기관 수요예측 부진에 공모 철회를 공시한 기업만 11월 들어 네 곳에 이른다. 한편에선 1000대 1이 넘는 경쟁률로 희망 공모가 밴드 상단에서 공모가를 결정짓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자금 집행에 보수적이어서 IPO 시장에도 더욱 선별적으로 접근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11월22일까지 기관 수요예측 이후 공모 철회를 공시한 기업은 4곳(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포함)이다. 지난해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했다가 공모 철회를 한 IPO가 두 곳임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숫자다. 한 달 동안 4건의 상장 철회 공시는 최근 10년 동안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최근 IPO 시장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연합뉴스
증시 침체가 지속되면서 IPO를 추진했던 기업들의 공모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올 초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념식ⓒ연합뉴스

심화된 IPO 양극화

실제 11월21일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던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바이오인프라가 금융감독원에 공모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11월16~17일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결과를 받아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바이오인프라 관계자도 “최근 글로벌 증시 침체로 기업공개 시장 여건이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당사의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경영진 판단과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공모 철회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던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밀리의서재는 독서 플랫폼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상장에 나섰다는 점에서 IPO 시장에서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11월4일과 7일 양일간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100대 1의 경쟁률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기관 수요 대부분이 희망 공모가 밴드(2만1500~2만5000원) 하단 이하에 몰리면서 상장 철회로 이어졌다. 밀리의서재 측은 공시를 통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해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 대표 주관사의 동의로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밀리의서재는 향후 기업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에 다시 IPO에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증시 부진 속에서도 가파른 상승 흐름을 보였던 2차전지 관련 종목도 IPO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2차전지용 탄소나노튜브 제조기업 제이오는 11월8일 공모를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제이오는 당초 기술 특례제도를 활용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1월7일 종료된 기관 수요예측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지 못했고 결국 공모를 철회하게 됐다. 이 밖에도 투자사 에이티넘파트너스가 발기인이자 최대주주인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는 11월10일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스팩의 공모 철회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스팩은 올해 일반 IPO 침체 속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렸었다. 스팩 역시 IPO 투자심리 위축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시 부진에 기관들의 투자 전략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공모 철회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지난 1월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총 10곳의 기업이 IPO 과정에서 하차했다. 특히 올해 4분기 들어 철회 기업이 쏟아졌는데, 이번 달 공모를 철회한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를 포함하면 총 6곳이 IPO 시장에서 쓴맛을 보게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흥행에 성공하는 IPO들도 있어 단순히 시장 분위기 탓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달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 중에서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티쓰리엔터테인먼트는 174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도 희망 밴드(1500~1700원) 최상단인 1700원으로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반도체 테스트 부품 업체 티에프이는 11월3~4일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1295.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총 1428곳의 기관이 참여했고, 이 중 1260곳이 희망 공모가 밴드(9000~1만500원) 상단 이상의 가격을 써내면서 공모가도 1만500원으로 확정됐다. 이 밖에 에듀테크 기업 유비온도 11월 초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736.72대 1의 경쟁률로 흥행했고 공모가를 희망 밴드(1800~2000원) 최상단인 2000원으로 확정했다.

이 같은 양극화는 투자자들의 성향이 더욱 보수적으로 변한 데 따른 결과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성장주들의 미래 성장 프리미엄이 낮아졌다. 보수적으로 변한 기관 입장에선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업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라면서 “여기에 시장 친화적인 몸값 여부, 유통 물량의 많고 적음 등을 따지다 보니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의 보수적 변화 방증

밀리의서재의 경우 지난해 14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들어서야 10억400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아직 규모가 크진 않다. 밀리의서재는 공모가 밴드 상단 기준 예상 시가총액이 2047억원 수준이었다. 최대 6000억원의 시가총액을 기대했던 제이오는 지난해 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27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11월에 나온 공모 철회 종목 중에선 바이오인프라가 유일하게 견조한 실적을 냈다. 바이오인프라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06억원, 75억원이며 영업이익률은 24.2%로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그동안 좋지 못했던 데다 유통 가능 물량이 1개월 후 59.38%로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이슈가 불거졌던 점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흥행에 성공한 티쓰리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는 이에 육박하는 7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티에프이는 지난해 연간 10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5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티쓰리엔터테인먼트와 티에프이의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각각 1115억원, 1195억원이었다. 시장의 한파가 지속되면서 향후 IPO의 성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스팩을 제외하면 차세대 통신 반도체 설계기업인 자람테크놀로지, 바이오 콘텐츠·동물진단 전문기업인 바이오노트, 자동차 부품사인 한주라이트메탈 등이 12월 중 기관 수요예측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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