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제2 전성기 이끈 학원액션물과 회귀물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5: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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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약한영웅》부터 JTBC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웹툰·웹소설 원작이 넓히는 K드라마의 지평

최근 K드라마에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색다른 장르들이 눈에 띈다.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 1》 같은 학원액션물이나 JTBC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회귀물이 그것이다. 웹툰, 웹소설 원작이 가져온 새 장르들은 K드라마와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있을까.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는 단연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이 작품은 방영 전부터 올 하반기 K드라마의 기대작으로 꼽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고, 11월18일 공개와 동시에 웨이브의 2022년 유료 가입자 1위를 기록했다. 또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통합 차트인 키노라이츠에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1, 2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해외 반응도 뜨겁다. 아이치이(iQIYI) 미국과 대만을 비롯해 미주 ‘코코와(KOCOWA)’를 통해 공개된 비키(ViKi) 채널에서도 평점 9.9를 기록하며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웨이브 드라마 《약한영웅》 한 장면ⓒ웨이브 제공

학원액션물, K액션의 가능성을 보이다 

《약한영웅》의 성공은 사실 갑자기 생겨난 우연적인 일이 아니다. 이미 학원을 배경으로 액션을 다루는 이른바 ‘학원액션물’이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작되면서 최근 웹툰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약한영웅》은 물론이고 《외모지상주의》나 《진짜사나이》 《최강전설 강해효》 같은 웹툰들이 그것이다. 물론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나,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 같은 영화에서도 학원액션물의 전조는 이미 존재했고 최근에는 《샤크: 더 비기닝》(2021) 같은 작품이 그 계보를 이었다. 즉 《약한영웅》의 탄생에는 이미 학원액션물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의 저변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학원액션물이 이렇게 하나의 장르로 자리하게 된 건,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그 어느 곳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사들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나 집단 괴롭힘 같은 문제는 물론이고, 부모가 가진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자식들의 위계마저 결정되는 학교 사회의 불공평한 구조, 그리고 학교폭력이 학교 밖으로까지 연결되며 범죄화하고 있는 현실 같은 것들이 그 이유다. 《약한영웅》은 이 모든 서사가 꾹꾹 채워져 보는 내내 강력한 타격감을 주는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어른 없는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현실을 폭로하는 무게감 있는 비판의식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약한영웅》과 더불어 디즈니+가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 《3인칭 복수》 역시 주목받는 학원액션물이다. 죽은 쌍둥이 오빠의 진실을 찾는 여고생 찬미(신예은)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키는 학교 짱 수헌(로몬)과 함께 복수 대행을 하는 이야기다. 보통 복수라고 하면 개인적 사적 복수(1인칭 복수)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타인의 복수를 대행해 주기 때문에 ‘3인칭 복수’다. 이 작품이 공적 의미가 더해진 학원액션물이 되는 이유다. 

《약한영웅》이나 《3인칭 복수》 같은 학원액션물은 액션의 강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저 볼거리로서의 액션 때문이 아니라 하나하나 감정을 쌓아 넣는 액션에서 비롯된다. 드웨인 존슨 같은 근육질의 마초맨들이 등장하는 서구의 액션이 볼거리에 치중돼 있다면, 이른바 K액션의 힘은 주먹 한 방을 날려도 거기 꾹꾹 눌러 담아내는 감정에서 극대화된다. 그런 점에서 학원액션물은 글로벌 OTT와 만나 K액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원액션물의 좀비 버전으로서 전 세계 대중들을 열광케 한 바 있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한 장면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한 장면ⓒJTBC 제공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물에 역사 담아 

그런가 하면 웹툰, 웹소설에 의해 하나의 장르가 된 후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 시작한 또 하나가 바로 ‘회귀물’이다. 즉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며 다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 ‘회귀물’은 《광마회귀》 같은 무협물과도 결합하고, 《상남자》 같은 오피스물과도 섞이며, 나아가 《어게인 마이 라이프》 같은 복수극으로 들어와 웹툰, 웹소설의 한 분파를 이루게 됐다. 이 역시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올해 4월에 방영됐던 이준기 주연의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 이어 최근에는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 방영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장이라는 그럴듯한 직책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오너가의 갖가지 리스크를 관리하고 해결해 주는 머슴 같은 역할을 하는 윤현우(송중기)가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회사의 숨겨진 자산을 회수하기 위해 해외에 나갔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살해된다. 일반적인 드라마라면 이렇게 끝나야 하겠지만 회귀물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이다. 죽었던 그는 1987년으로 회귀해 순양그룹 오너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막내 손자 진도준(김강훈)으로 깨어난다. 이미 한 번 다 살아본 진도준 입장에서는 미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두 꿰고 있고, 그건 그가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말해 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직선제로 치러진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고 있는 이 꼬마는 비자금을 전해줄 대선후보를 알려줌으로써 진양철 회장의 눈에 들고, 결정적으로 그해 있었던 대한항공 폭파 사건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진양철 회장을 구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얻는다. 그 보상으로 분당의 땅을 받은 진도준(송중기)은 대학 시절 그 부동산으로 이미 240억원을 벌어들인다. 회귀물의 판타지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잘 말해 주는 대목이다. 

회귀물이 이처럼 웹툰, 웹소설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건, 이른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수저 계급’의 현실 속에서 노력에 의해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이 만들어낸 이 정서는, 회귀물을 통해 아예 ‘인생 리셋’이라는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픈 욕망이 하나의 판타지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흥미롭게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덧붙임으로써 그 극성을 끌어올렸다. 앞서도 소개했지만 6·29 선언 이후 치러진 직선제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해 결국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던 당대의 대선이 소재로 들어왔고, 대한항공 폭파 사건도 스토리 속에 녹여졌다. 또 분당이 신도시가 돼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일들이나, 《타이타닉》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일들은 모두 주인공이 투자해 큰돈을 벌게 되는 배경이 된다. 즉 실제 한국 현대사의 사건·사고를 회귀물의 밑그림으로 넣음으로써 리얼리티가 더해진 좀 더 강력한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면서 이 드라마는 3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이제 웹툰, 웹소설은 점점 영상 콘텐츠의 원작 IP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은 이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특징 속에서 탄생한 서사들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리메이크작 속으로도 들어와 K콘텐츠의 새로운 영역들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약한영웅》 《3인칭 복수》 같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학원액션물이나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회귀물이 그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것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갖게 된 K콘텐츠에는 중요한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웹툰, 웹소설의 성장과 더불어 그 영향을 받아 K콘텐츠 속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장르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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