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국가대표 된 김민경의 운동은 ‘여성운동’이다 [남인숙의 귀여겨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6 11:0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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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외모와 먹방으로 인기 끌던 여성 코미디언의 우연한 사격 국가대표 선발과 여성의 보디 프로필

코미디언 김민경이 사격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김민경은 11월19일부터 태국에서 열린 ‘2022 IPSC 핸드건 월드 슛(IPSC)’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했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100여 개국 1600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실용사격대회다. ‘국가대표’라는 단어를 의심하며 비인기 종목 홍보 명목이나 선발 특혜 등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인맥이 개입하는 게 불가능한, 엄연한 기록경기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당당히 선발된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2년에 걸친 영화와 같은 서사다. 뚱뚱한 외모와 먹방으로 인기를 끌던 여성 코미디언이 출연하던 먹방 방송에서 일종의 ‘벌칙’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건 순전한 우연으로 그가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멤버로 당첨된 것이었다. 애초 기획은 운동 초보 비만인이 쩔쩔매며 고행을 감내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내려는 것이었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상황이 달라졌다.

김민경은 지난해 6월 iHQ 《맛있는 녀석들》의 파생 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을 통해 사격을 처음 접했으며, 올해 6월 대한실용사격연맹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다.ⓒ유튜브 캡쳐

우리 사회 ‘여성의 운동’에 대한 관념 바꿔

태어나 처음으로 헬스장 운동을 해본다던 그가 트레이너를 놀라게 하며 재능을 드러내더니, 필라테스·이종격투기·권투·킥복싱·사격 등 연이은 도전에서 타고난 운동신경과 극적인 성장을 보여줬다. 그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사격 재능을 확인한 코치와 제작진의 권유로 자격증, 국가대표선발전에 도전한 것이다. 결과는 여성 국가대표 2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고, 심지어 국제대회 성적도 11월28일 기준 100위권으로 나쁘지 않았다. 평생 자신의 재능을 모르던 40대 비만 여성이 새로운 시작으로 인생 행로를 바꾼 이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운동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있다.

근래 몇 년간 여성이 하는 운동의 이미지는 ‘보디 프로필’이라는 것으로 대표되고 있다. 보디 프로필이란 운동과 식단을 통해 최상의 상태로 만든 몸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보통 SNS에 과정을 인증하고 결과물을 올리는 식이다. 그 이전에 유행했던 ‘누드 프로필’과 다른 것은 자기계발적 요소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누드 프로필은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몸을 사진으로 기록해 간직한다는 의미에 머물렀지만, 보디 프로필은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 중심이다.

일정 기간 동안 목표를 정하고 절제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잡지 화보의 모델과 흡사하다.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둔근, 가늘고 탄력 있는 사지가 공통점이다. 피트니스 선수나 모델이 아닌 이상 유지하기 힘든 비일상적인 이미지다. 우리가 떠올리는 여성의 운동과 건강은 대개 그런 형태로 무의식에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보디 프로필의 준비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임을 안다. 근육을 드러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운동보다도 그 근육을 덮고 있는 지방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극단적인 식단 조절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지방을 말리고 근육 부피를 끌어올린 몸은 면역력이 떨어진다. 촬영 이후 식습관이 망가져 이전보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 관리와 건강을 ‘마른 몸’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경향은 유독 여성에 한해 강하게 나타난다. 올해 초 발표된 국가기술표준원 한국인 인체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경도 이상 비만 남성이 47%로 늘어났지만, 여성은 22.5%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여성의 신체가 여성호르몬 영향으로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하게 돼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예전에는 차라리 ‘살만 빼면’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 다가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근육까지 추가된 셈이다.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크롭 톱(Crop top: 배·허리·배꼽을 드러내는 윗옷)은 복직근 외곽선이 보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패션 아이템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민경은 운동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뚱뚱해도 운동을 잘할 수 있고,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열심히 운동해도 여전히 뚱뚱할 수 있으며 그대로도 멋질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맛있는 녀석들》과 파생 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 출연 중인 김민경ⓒ유튜브 캡쳐

보디 프로필의 육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

운동과 식이로 조각되고 포토그래퍼의 사진 보정으로 완성되는 보디 프로필의 육체는 미학적으로 아름답지만, 그것을 보면서 운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지는 않는다. 나도 살을 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다. 그러나 점차 민첩해져 가는 김민경의 육중한 몸은 ‘나도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를 따라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고 싶고, 힘이 세어지고 싶다.

그동안엔 감량이 없는 여성의 운동은 ‘살도 못 빼면서 왜 운동하나’라고 폄하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론상으로 보고 들은 게 많은 필자조차도 기존의 신체 이미지상(像)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했으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이전에는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와 관련한 일련의 주장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추상적인 메시지의 반복으로만 느껴졌기에 강한 자존감의 일부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이번에 김민경이 본의 아니게 만들어낸 서사는 말로만 듣던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라는 게 무엇인지 피부로 깨닫게 해주었다. 소위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의식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가 멋져 보인다.

현대사회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아의 알맹이에 집중하고 싶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김민경이 그 합일점을 찾을 수 있는 범례가 돼주어 반갑다. 여성신문에서 이 일을 두고 ‘이 여성의 운동은 여성운동이다’라고 중의적인 표현을 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는 특별한 신념을 가졌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가녀리고 약하다’는 전형성을 넘어 그저 최선을 다해 재능을 펼친 여성의 이야기가 환영받는다는 것은, 그것을 깨줄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뚱뚱한 것도 예쁘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엄격한 외양의 잣대에서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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