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향후 10년 책임질 새 대들보 나왔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2 13:05
  • 호수 17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드컵 무대에서도 통한 조규성과 이강인의 본격 등장,
역대급 조합으로 큰 기대 모았던 ‘손-황-황 트리오’ 공백 훌륭히 메워

카타르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가장 믿었던 것은 역대급 공격 조합이었다. ‘손황황 트리오’로 불린 유럽파 공격 3인방 손흥민(토트넘), 황의조(올림피아코스), 황희찬(울버햄튼)은 지난 시즌 기준으로 총합 51개의 공격 포인트를 빅리그에서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 손흥민은 존재만으로 상대팀을 긴장케 했다. 황의조와 황희찬은 손흥민에게 쏠리는 집중 견제를 역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을 앞두고 그 역대급 트리오는 부진과 부상으로 신음했다. 황의조는 프랑스 리그1을 떠나 그리스 무대로 갔지만 적응에 실패하며 골 감각이 급격히 떨어졌다.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동료들이 패스 플레이로 만든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황희찬은 카타르에 도착한 뒤 햄스트링 부상이 도지며 아예 우루과이·가나전에 출전도 못 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손흥민이었다. 월드컵 3주 전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출전조차 기적이라던 의료진의 예상을 뒤엎고 특수 제작된 마스크를 한 채 우루과이전부터 선발 출격했지만 멈춰버린 경기 감각을 되살리기 어려웠다. 가나전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하자 손흥민은 또 한 번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마른 대지에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싹은 트기 마련이다. 선배들이 뜻밖의 부진에 빠진 사이 그 공백을 대체한 새 영웅이 등장했다. 1998년생 스트라이커 조규성, 그리고 2001년생 플레이메이커 이강인이다. 이번 대회에서 벤투 감독의 플랜A로는 거론되지 않은, 흐름을 바꾸는 조커 역할로 예상됐던 두 선수가 아예 대표팀의 경기력을 바꾸는 중심에 선 것이다. 특히 11월28일 열린 가나와의 2차전에서 숨 막히는 추격전을 리드하며 조규성은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본선 한 경기 멀티골을, 이강인은 날카로운 크로스로 자신의 월드컵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1월28일(현지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조규성이 선제골에 이어 동점 헤더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외모만큼 빛난 조규성의 킬러 본능…유럽 진출도 가까워져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전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가 활발한 모습을 보인 조규성을 황의조 대신 과감히 가나전에 선발 투입했다. 그 선택은 우루과이전의 무디었던 공격의 창끝을 예리하게 바꿨다. 후반 13분과 16분, 가나 선수들의 피지컬을 압도하는 제공권으로 3분 사이 스코어를 0대2에서 2대2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월드컵 역사에도 새 장이 열렸다. 한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홍명보(1994년), 안정환(2002년), 이청용·이정수(2010년), 손흥민(2018년) 등이 한 대회에서 2골을 기록한 적은 있지만 멀티골은 조규성이 처음이다.

스트라이커 조규성의 축구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17년까지는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건 1학년 말이었다. 당시 광주대 이승원 감독이 포지션 변경을 권유한 이유는 189cm의 장신에서 나오는 타점과 영리한 위치 선정에서 나오는 헤더 때문이었다. 2년 뒤 프로 무대에 진입한 조규성은 2부 리그인 K리그2의 FC안양에서 14골 4도움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1년 만에 K리그1 최강 전북 현대가 거액의 이적료(8억원)를 지급하고 데려갔다.

전북에서 첫 시즌을 보냈지만 1부 리그에서는 한계가 드러났다. 슈팅력과 헤더는 좋았지만 등지는 플레이나 공이 없을 때 움직임 같은 기본기에서 약점을 보였다. 조규성은 큰 결심을 했다. 2020 시즌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것.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국군체육부대(상무)로 간 뒤 조규성은 완전히 다른 선수로 거듭났다. 타 종목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웨이트 트레이닝 강도를 높여 근육량만 6kg을 늘렸다. 호리호리했던 체형은 넓게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두께의 상하체의 체형이 됐고, 상대 수비와의 치열한 몸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이 됐다.

약점이었던 움직임도 개선됐다. 미드필더 출신답게 현재도 매 경기 11km에 육박하는 많은 활동량을 보이지만, 정작 득점 찬스에서는 힘을 폭발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북 시절 대선배인 이동국의 조언을 받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갖추자 2022 시즌 조규성은 17골을 기록, K리그1 득점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 기세는 결국 월드컵 본선까지 이어졌고 새 역사를 썼다.

조규성은 가나전이 끝난 뒤 “보잘것없는 선수였는데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골을 넣어 믿기지 않는다. 나 자신을 믿고 꿈을 좇으면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는 울림이 큰 인터뷰로 눈길을 모았다. 안양공고 입학 당시만 해도 170cm가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으로 축구부를 그만둘 위기에 몰렸지만, 성실함으로 돌파했다. 배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교 시절부터 무섭게 키가 자란 데다, 대학에서의 포지션 변경과 이후 치열한 노력으로 조규성의 반전 드라마는 완성됐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잘생긴 외모도 국내외에서 한층 주목받았다. 월드컵 개막 전 2만 명에 불과했던 그의 SNS 팔로워는 130만 명을 돌파했다. 일찌감치 군 문제까지 해결한 가운데 월드컵에서의 강렬한 활약으로 다음 목표인 유럽 진출에도 한 발짝 더 다가섰다.

11월28일(현지시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이강인이 슛을 날리고 있다.ⓒ연합뉴스

이강인 활용하자 빌드업 축구도 완성돼…천재성 입증

이강인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벤투호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올 시즌 들어 마요르카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거듭난 이강인은 스페인 라리가 전체에서도 창의적인 미드필더로 인정받았다. 지난 9월 벤투 감독이 1년6개월 만에 이강인을 다시 대표팀에 소집하며 중용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정작 그 당시 치른 두 차례 평가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축구인은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강인이 들어도 본선에서는 크게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론이지만 이강인은 벤투 감독의 와일드카드, 조커 역할이었다. 대표팀 관계자들은 “9월에 경기에 투입되진 않았지만 훈련에서 이강인을 활용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걸 본 사람들은 벤투 감독의 구상 안에 이강인이 있다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우루과이전부터 이강인은 교체 출전했다. 후반 29분 투입된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로 우루과이 수비를 흔들었다.

가나전에서는 이강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빛났다.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전보다 타이밍이 빠른 후반 12분에 이강인을 투입했고, 측면이 아닌 2선 중앙에 세워 자유롭게 공격 작업에 관여하도록 했다. 불과 1분 만에 이강인이 흐름을 바꾸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했다. 왼쪽 측면에서의 압박에 가세해 공을 탈취한 뒤 곧바로 문전으로 왼발 크로스를 올렸다. 빠르게 올라가던 공은 문전에서 뚝 떨어지며 수비가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조규성이 낙하 지점에서 몸을 던져 헤더로 연결하며 스코어를 1대2로 만들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골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 것이다.

이강인은 가나전에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 벤투호에서 처음으로 2선 중앙에 위치, 공격의 프리롤을 부여받았다. 그러자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전방과 좌우의 공격수들을 확실히 지원했다. 벤투 감독 입장에서도 현재 대표팀의 어떤 선수보다 이강인이 그 위치에서 경쟁력을 발휘해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전방에 이강인의 날카로운 왼발 킥을 살려줄 조규성이 배치되며 두 선수의 조합이 답답했던 공격력을 풀어주는 해답이 됐다. 경험이 무르익은 선수들이 아닌 20대 초반의 젊은 공격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을 하며, 한국 축구도 향후 10년을 이끌 새 동력을 발견하는 큰 성과를 얻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