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김명수 사법부’, 곳곳에서 파열음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5 07:3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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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재판 거래’ 의혹부터 김봉현 도주까지 사법부 신뢰에 잇단 물음표
판사 ‘면책특권’, 위헌심판대에 올라…인사권도 흔들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국가배상법 제2조1항의 내용이다.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민법 제750조에 따라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판사’만은 예외다. 대법원은 판사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중과실’이 입증돼야만 한다는 판결을 수차례 내렸다. “법관의 재판에 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 해도 해당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을 했거나,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히’ 위반해 법관이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을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2001년 3월 대법원의 판결(2000다29905)이 대표적이다. 판사는 대한민국의 어느 국민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2017년 12월20일 권순일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후보자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사법 신뢰, 판사 특권 내려놓기부터 시작”

그런데 6월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서영효 부장판사는 ‘판사 면책특권’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 판사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으로부터 사법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법관의 특권적 지위를 과감하게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이는 전상화 변호사다. 전 변호사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판사 특권 없애기’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전 변호사는 “판사들만 ‘위법’ ‘부당한 목적’ ‘현저히-명백히’ 등 이런 조건이 추가된다. 이런 특혜가 세상 어디에 있나? 판사는 아무 실수도 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존재란 말인가”라면서 “이런 특권을 없애지 않는 이상 판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판결에 대해 현실에서는 판사에게 얼마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입힌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1월11일 도주했다. 김 전 회장은 2020년 5월 구속기소됐으나, 법원은 지난해 7월 보증금 3억원과 주거 제한·도주 방지를 위한 전자장치 부착 등을 조건으로 김 전 회장의 보석을 인용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 다른 혐의에 대한 2건의 구속영장과 중국 밀항 준비 정황이 발견된 대포폰 통신영장 1건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이와 관련해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11월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봉현) 영장 판사와 김봉현 변호인이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영장전담 판사가 (피고인 측) 변호인과의 친분관계를 회피하도록, 법원이 반드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1차 구속영장과 통신영장을 기각한 부장판사와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고교 선후배 사이로, 과거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연루 의혹이 있어도 판사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다. 대장동 수사의 단초가 된 정영학 회계사의 녹음파일에는,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가 정 회계사에게 “50개(50억원) 나갈 사람을 세어 줄게”라며 “박영수(전 특검), 곽상도(전 국회의원), 김수남(전 검찰총장), 홍선근(머니투데이그룹 회장), 권순일(전 대법관) 그리고 윤창근(성남시의회 의장) 14억, 강한구(성남시의회 의원) 3억”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유력 인사 가운데 곽상도 전 의원만 올 2월 재판에 넘겼다. 특히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사실상 수사가 멈춰있다. 권 전 대법관은 2019년 7월 대법원이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을 당시 ‘재판 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대법 선고를 전후해 김만배씨가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 사무실을 방문했고,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을 지내면서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를 두고 재판에서 이 후보 측에 유리한 의견을 내준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영장을 두 번이나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2017년 9월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김명수 측근만 서울중앙지법원장 후보로”

법원 내부에서도 신뢰는 붕괴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산하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장인 이영훈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11월27일 법원 내부 게시판을 통해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후보(송경근 민사1수석부장판사, 김정중 민사2수석부장판사, 반정우 부장판사)가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의 측근’이라고 비판했다. 송 판사와 김 판사는 모두 김 대법원장의 수석부장을 지냈고, 반 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전 비서실장이다.

이영훈 판사는 “이런 상황에서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그대로 진행할 경우 사법부 신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나 대책에 대해서도 얼마나 검토하고 준비했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9년 도입한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로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하는 제도다. 내년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 대법원장은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내년에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확대해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축소하려던 당초 취지와 달리 오히려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권을 넓혀주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법원장 인선이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영훈 판사는 “대법원장 측근으로 평가받던 전 법원장께서 형사합의부장들을 불러모아 의견표명을 요구했다고 보도되거나 일부 형사합의부장들을 너무 장기간 근무하게 한 일 등으로 여러 번 따가운 지적이나 의심을 받았던 것은 잘 아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측근인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은 2020년 11월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을 소집해 대검찰청의 ‘판사 성향 분석 문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라고 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김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 3년 재직’ 원칙을 깨고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부인 윤종섭 부장판사를 6년째, ‘조국 재판부’ 김미리 부장판사를 4년째 잔류시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월2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코드 인사로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을 요직에 기용하면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사법부를 문재인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켰다”면서 “김 대법원장은 내년 대법원장 퇴임식에 1억800만원이라는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기록을 계속 써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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