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운전대 놓고 ‘천막 투쟁’ 나선 화물 종사자들
  • 경기 의왕=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3 12:05
  • 호수 17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물연대, 정부 업무개시명령에 신발 벗어들고 삭발식
평행선 달리는 勞政…총파업 장기화로 산업 현장 마비

11월29일 오후 1시쯤 찾은 경기도 의왕ICD(내륙컨테이너기지) 일대는 한산했다. 수도권 물류 허브인 의왕ICD는 현재 화물연대 15개 지역본부 중 서울경기지역본부의 파업 거점으로 쓰이고 있다. 평소 같으면 화물을 실어나르는 차량으로 북적였을 텐데, 총파업 이후 오가는 화물 차량이 거의 없다. 

앞서 정부가 화물연대를 향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이날 전국에 있는 화물연대 지도부들이 삭발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화물운송 종사자들의 적정 수입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 법제화를 요구하며, 11월2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엿새째인 11월2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제2터미널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 조합원들이 명령 발동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일주일째 텐트 생활한 조합원들 

의왕ICD 인근 도로에는 승용차와 버스만 쌩쌩 지나갔다. 바람까지 매섭게 불자 을씨년스러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도로 한편에는 며칠째 화물차들이 멈춰서 있다. 하나같이 ‘안전운임제 확대! 가자! 총파업!’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이후 의왕ICD의 반출입량은 뚝 떨어졌다. 의왕ICD에 따르면, 올해 월요일 평균 반출입량은 2937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이나, 11월28일 반출입량은 592TEU에 그쳤다. 11월26~27일에는 컨테이너 반출입이 아예 없었다. 주말이라고 해도 일부 반출입이 이뤄져온 점(토요일 평균 1493TEU, 일요일 평균 116TEU)을 고려하면 기지가 아예 멈춰섰던 셈이다. 현재 의왕ICD 내 총 차량 605대 중 가용 차량은 9대로 전체의 1.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의왕ICD 입구에 들어서자 경찰 병력이 눈에 띄었다. 수십 명이 투명방패를 들고 벽을 이뤘다. 사복경찰관들도 집회 현장을 예의주시하며, 무전기를 켜고 바쁘게 움직였다. 노정(勞政) 관계가 ‘강 대 강’으로 치달은 직후라 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난 6월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엔 경찰과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 벽 너머에는 화물연대 서울경기 지역본부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강추위가 찾아오면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드럼통에 장작불을 지펴가며 몸을 녹였다. 주차장에는 텐트 6동이 설치돼 있었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 조합원들은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이곳에서 천막 생활 중이다. 조금이라도 추위를 막기 위해 텐트에 비닐을 덧씌웠다. 아울러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평소 화물차에 싣고 다니는 팰릿을 간이침대로 이용했다. 텐트 안에는 조합원들이 사용한 이불과 침낭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현장에 있던 30년 경력의 화물 차량 운전자 이창용씨(59)는 “여기 있은 지 5일 정도 됐다. 집에도 못 가고 상황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니 이렇게라도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주로 경남 양산에서 수도권을 왕복하며 하루 12시간 동안 화물차를 운전한다. 이렇게 일해도 먹고살기가 굉장히 힘들다”며 “우리 지부는 유통 쪽이어서 그동안 안전운임제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번 총파업을 통해 안전운임제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1월2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화물연대 결의대회’에서 이봉주 위원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강 대 강’ 대치에 상황 급랭 

오후 2시부터 본격적인 결의대회가 시작됐다. 조합원 100여 명이 주차장 바닥에 앉아 ‘안전운임 무시 말고 전 품목 확대하라’ ‘일몰제 폐지 말고 안전운임 확대하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노동자에 대한 계엄령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서동렬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 쟁의국장은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전 품목 확대는 화물노동자와 국민이 함께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제도”라며 “화물연대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조합이다.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안전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정부가 국가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삭발식이 시작되자 앉아있던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일제히 신발을 벗어들었다. 가수 꽃다지가 부른 민중가요 《민들레처럼》이 흘러나왔고, 조합원들은 박자에 맞춰 결연한 의지를 담아 신발 바닥을 땅에 내리쳤다. 이날 삭발식에는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과 이광재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 본부장이 참여했다. 같은 시각 전국에 있는 화물연대 주요 간부들의 삭발식도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 삭발을 한 이광재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 본부장(54)은 19세 때부터 화물 차량을 운전했다. 이 본부장은 기자와 만나 “정부는 우리를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노동 3권이 없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노동기본권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내리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파업에 참여한 화물노동자 대부분이 안전운임제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화물운송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모두가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파업 참여 인원은 전 조합원에 해당하는 2만5000명이다.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은 안전운임제 법제화 및 확대 적용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자가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필요가 없도록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이를 어기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또 현재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을 컨테이너와 시멘트 부문에서 철강, 유류, 택배, 사료곡물, 자동차 운송 등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2018년 4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 도입됐지만, 3년 후 종료되는 일몰제로 시행됐다. 정부는 2020년 제도를 도입하면서 2년의 시범기간을 가진 뒤 입법 여부를 정하기로 한 바 있다. 일몰제로 인해 오는 12월31일이면 소멸된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안전운임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2020년부터 약 1년간 국토교통부 의뢰로 안전운임제 성과를 분석한 한국교통연구원의 비공개 자료를 보면,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견인형 화물차 사망자는 최근 3년 새 42.9% 늘어났다. 견인형 화물차의 같은 기간 교통사고 건수도 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정부 차원에서 화물운임을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화물연대의 입장 차로 인해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는 걸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화물연대와 정부는 총파업 이후 두 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모두 결렬됐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고, 화물연대는 삭발식으로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이 같은 대치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없어 총파업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먼저 총파업으로 인한 집단운송거부로 전국 21곳의 주유소가 휘발유 재고 품절 사태를 빚는 등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30일 화물연대 파업의 영향으로 유류제품 수송이 지연돼 품절된 주유소가 전국 총 21개소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휘발유 품절 주유소가 19개소, 경유 품절이 2개소로, 모두 저장용량 대비 판매량이 많은 수도권 주유소(서울 17개소, 경기 3개소, 인천 1개소)였다. 

이미 판매량이 많은 수도권 일부 주유소는 휘발유·경유 재고가 바닥나면서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올 6월 파업 당시 10%에 불과했던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탱크로리 기사들의 화물연대 가입률이 최근 70%를 넘기면서 ‘기름 대란’이 촉발된 것이다. 대한석유협회는 사전 주문이나 재고 비축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석유제품 수급 차질이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11월2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들이 며칠째 멈춰서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이봉주 위원장이 삭발식을 마치고,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 조합원들과 정부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결의대회 후 화물 조합원들이 텐트 안에서 쉬는 모습. 조합원들은 텐트 안에서 일주일 넘게 생활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으로 

국내 주요 산업 현장은 사실상 ‘셧다운’됐다. 이로 인해 철강과 시멘트, 자동차, 사료 등 주요 산업 곳곳에서 1조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물류 차질로 인한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철강 업계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 이후 전날까지 철강 업체들은 제품 총 60만 톤을 출하하지 못했다. 현재 철강재 평균 가격이 톤당 13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7800억원의 매출 이연 손실이 났다. 

시멘트 업계도 출하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하루 평균 180억여원의 매출 이연 손실이 발생해, 피해 규모가 약 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시멘트 공급이 끊기면서 공사를 멈추는 건설 사업장이 늘어났다. 자동차 업계는 로드 탁송(차량을 운전해 운송하는 방식) 등을 통해 화물연대 파업에 비상 대응하면서 하루 약 4억원을 추가 부담하고 있다. 사료 업계도 부산항과 광양항 등을 통해 들어오는 원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컨테이너 보관료나 체선료 등으로 매일 수백만원 이상의 물류비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이 지속되면서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정부는 위기 발생 때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이뤄진 위기경보체계를 발동한다. 위기경보 단계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감에 따라 관계부처들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화물연대 총파업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제계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연대 운송거부 철회 등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경제단체는 “최근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위기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국회, 기업과 근로자 등 모든 경제 주체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화물연대의 일방적인 운송거부는 즉각 철회하고 안전운임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