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윤(尹)이, 당은 안(安)이 책임진다.’
지난 20대 대선이 끝난 후 정치권에선 이 같은 전망이 제기됐다. ‘안철수-윤석열 단일화’ 협상 배경에 이 같은 ‘밀약’이 있다는 추측이었다. 당시 안 의원은 부인했다. 다만 당권 욕심은 감추지 않았다. 대권은 양보했지만, 당권은 쟁취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됐던 ‘개국공신’ 안철수. 그러나 최근 여권 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이른바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이 안 의원에게 쏠려있지 않다는 신호가 감지되면서다. 동시에 ‘원조 친윤’(친윤석열)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정권 초기와 비교해 안 의원의 당내 입지가 불안하다는 우려 섞인 해석도 나온다.
이준석 징계로 재부상한 ‘단일화 밀약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의 선택은 ‘신의 한 수’와 같았다. 대선의 승패가 단 0.8%포인트 차이로 갈리면서다. 이에 단일화를 택한 안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정치권 일각에선 안 의원의 입각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안 의원은 입각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 성남시 분당갑 보궐선거에 출마해 뱃지를 달았다. 안 의원이 원내에 진입하자 정치권에선 다시금 ‘안철수-윤석열 밀약설’이 고개를 들었다. 안 의원 측이 ‘여당 강세 지역 공천→여당 대표→차기 대선 출마’라는 청사진을 그렸고, 이를 윤 대통령 측이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단일화가 성사됐다는 추측이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징계를 받으면서 더 힘을 얻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 전 대표에게 내려진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에 대해 “왜 이 시점에서 (징계를 하는 것인지) 정치적 의도를 읽어야 한다”며 “결국 (여권이) 선거에서 이 대표를 활용하고 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이 단일화를 할 때부터 ‘안 의원이 정부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당은 안 의원이 책임지게 해준다’와 같은 밀약이 있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눈엣가시가 됐던 이 대표를 이런 문제(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를 빌미 삼아 ‘팽’하고, 그 후 전당대회에서 안 의원을 (당 대표로) 앉히려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추측했다.
‘윤심’도 ‘당심’도 오리무중
유력한 당권 주자로 거론됐던 안 의원. 그러나 최근 정권 초와는 입지가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당 대표 권한대행을 지낸 권성동 의원부터 ‘친윤’을 자처하는 김기현 의원, ‘신윤핵관’으로 불리는 윤상현 의원까지, 안 의원의 경쟁 후보들이 난립하면서다.
여권 내에선 안 의원이 윤 대통령의 ‘최측근’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4인방이라 불리는 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철규 의원을 부부동반으로 관저에 초청해 만찬을 했다. 이어 같은 달 25일에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관저에서 만찬을 했고, 같은 달 30일 김기현 의원과 관저에서 만찬을 했다. 반면 안 의원이 윤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윤심’이 안 의원에게 기울어있지 않다는 후문도 나온다. 이에 안 의원과 윤 대통령의 단일화 다리를 놓은 장제원 의원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PK(부산·경남) 지역구에서 활동하는 여권 한 관계자는 “장제원 의원으로선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가) 되지 않으면 빚을 지는 셈”이라며 “장 의원이 아무리 안 의원을 (당 대표로) 밀고 싶어도 ‘통’(윤 대통령)의 뜻이 다르다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안 의원 측도 이른바 ‘친윤 마케팅’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윤심’이 아닌 ‘당심’과 ‘민심’을 앞세워 당권을 잡겠다는 포부다. 안 의원은 지난 11월1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용산(대통령실)의 생각을 100% 그대로 똑같이 한다면 지지층이 확장될 수 없다”며 “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민심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당심’과 ‘민심’도 안 의원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자체 실시, 지난 1일 공표한 월례여론조사 결과(전국 성인 최종 1000명·지난 11월29~30일 이틀간·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무선전화 임의걸기 100% ARS·응답률 4.6%·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차기 여당 대표 적합도’를 설문한 결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전체응답자 31%의 지지로 선두를 달렸다. 이어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15%, 안 의원은 11%를 얻었다. 김기현 의원 5%,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4%, 조경태 의원·윤상현 의원 2% 동률로 뒤를 이었다.
당대표 경선 여론조사에 당헌상 ‘역선택 방지 룰’을 가상 적용한 ‘국민의힘 지지층+무당층’(479명) 응답 통계에서도 안 의원이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나 전 원내대표가 28%로 선두에 안 의원 15%, 유 전 의원 12%, 김기현 의원 10%, 황교안 전 대표 7% 등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할 경우 나 전 원내대표 선호도가 35%로 1강에 안 의원 16%, 김 전 원내대표 13%로 2중(中)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