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할인 분양…울며 겨자 먹는 건설사들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2.12.12 10: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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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진·브랜드 가치 하락 우려에도 파격 할인 잇달아
전문가들 “연말까지 밀어내기 분양 이어질 것”

주요 건설사들의 할인 분양이 시작됐다. ‘청약 불패’라던 서울 시장까지 수분양자에게 판촉 차원의 혜택을 줄 정도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분양시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청약 열기가 식자 건설사들이 자금경색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인 셈이다.

엠디엠이 시행하고, 대우건설이 시공한 오피스텔인 파주 운정지구 푸르지오 파크라인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전용 84㎡ 중심의 1단지 578실과 전용 107·119㎡ 등 대형 평수의 2단지 86실로 조성돼 있다. 1단지의 경우 첫 분양에 돌입한 지난 5월 분양률이 한 자릿수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행사는 각종 혜택과 함께 분양가를 대폭 낮췄다. 취득세 전액 지원과 함께 10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 무료 제공을 내걸었다. 7억원대 중반이던 전용 84㎡ 타입 기준 분양가도 5억원대로 2억원가량 인하했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서울도 이 같은 분위기를 피하진 못했다. 서울 강북구 칸타빌수유팰리스는 최초 분양가보다 15% 할인한 금액으로 분양을 진행 중이다. 계약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곳도 생겨났다. 서울 구로구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는 계약만 하면 4회차 중도금까지 무이자 혜택을 주고 현금 3000만원을 지급하는 동시에 발코니 공사도 무상으로 해준다고 약속했다.

최근 계속된 집값 하락과 기준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아파트 청약시장이 바짝 얼어붙었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견본주택ⓒ연합뉴스

중소 건설사 이어 대기업도 ‘할인 행렬’

자금경색 우려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게 중소 건설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건설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 삼성 사업장 수분양자에게 중도금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확정 고정금리 이자후불제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대출실행 시 확정 고정금리를 초과하는 경우 사업주체가 이를 부담하는 형태인 것이다. 12월초 분양에 나선 GS건설의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자이 레디언트도 중도금 전액 이자후불제 혜택을 적용해 계약금 10%만 있으면 입주 때까지 자금 부담이 없도록 부담을 대폭 낮췄다.

그간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 소진차 할인 분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존 수분양자와의 갈등이 소송으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분양가 혜택은 물론 중도금 무이자, 가전제품 제공까지 하면서 기존 수분양자와 역차별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할인분양은 민원뿐만 아니라 역마진 위험에 브랜드 가치 하락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이 할인분양에 나서는 것은 자금경색을 우려해서다.

일반적으로 시행사는 사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토지 매입 대금은 브리지론을 통해 조달한다. 이후 자금은 분양을 마치고 수분양자로부터 받은 계약금으로 해결한다. 또 공사비 등을 위해 받은 본PF 대출금은 수분양자로부터 받은 중도금과 잔금으로 충당하게 된다. 미분양 물량이 나오면 PF 대출 상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안고 있는 미분양 물량을 활용해 담보대출로 대환하기도 하지만 주택 경기가 하강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담보물 가치 하락으로 인해 PF 대출금을 전액 충당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마진이 적거나 심지어 없더라도 시행·시공업체 입장에서는 빨리 팔아 일정 수준 이상의 계약률을 유지해야 자금경색 등 유동성 위기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분양률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계약률을 높여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수분양자가 동시다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시행사나 시공사가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일부 수분양자에게도 최대한 중도금 이자 지원 등을 통해 계약을 유지하는 방향 등으로 유도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지방 건설사 연쇄 부도로 불안감 더 커져

건설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점도 불안요소 중 하나다. 지난 9월 충남 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이 부도난 데 이어 경남 지역 18위 건설업체도 지난 11월에 최종 부도 처리됐다. 동원건설산업 부도는 근린상가 등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이 시발점이 됐다. 지방에 공급한 상가가 미분양으로 고전하면서 시행사가 먼저 파산하고 미수금을 해결하려다 채무가 큰 폭으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분양 물량을 소진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공급 물량은 쏟아진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직방에 따르면 12월 전국 46개 단지에서 총 3만6603가구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일반분양은 2만5853가구다. 지난해 12월에 견주어 보면 분양 물량은 약 16%인 7092가구가 감소한 수준이지만 얼어붙은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많은 물량이라는 게 분양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건설사들은 내년까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올해보다 내년 분양시장이 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따라 물량을 예정대로 공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매층의 매수 의지는 역대 최저치로 떨어져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인 11월 마지막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66.8이다. 수도권 전체 매매수급지수 역시 69.4로 떨어지며 지수 70선이 깨졌다.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도 79.1로 지수 80이 무너졌다. 이처럼 서울과 수도권, 지방 매매수급지수가 모두 곤두박질치면서 결국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74.4)는 2012년 7월 부동산원이 매매수급지수를 조사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청약 수요는 유례없는 수준으로 감소하고 분양시장에선 미분양 물량이 꾸준히 쌓이고 있어 앞으로 미분양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1604가구로 집계됐다. 전월(3만2722가구) 대비 27.1%(8882가구) 급증한 수준이다. 수도권은 7813가구로 전월(5012가구) 대비 55.9%, 지방은 3만3791가구로 전월(2만7710가구) 대비 21.9%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분양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앞다퉈 분양에 나선 데는 향후 분양시장이 더 악화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들이 미분양 물량 증가와 주택 수요 감소에도 공격적인 분양에 나선 이유는 금리 상승기가 이어지면서 향후 분양시장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며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분양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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