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美·EU 들의 보조금 전쟁에 새우韓 등 터질라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1 08: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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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RA에 유럽연합은 ‘유럽 공동체법’으로 맞불…‘묻지마’ 현지 진출로 국내 생산기반 약화 우려

최근 미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강력한 우려와 불안감을 표시했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2차전지 등을 중심으로 한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폭적인 세금공제 혜택을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미국 기업과 소비자로 하여금 저탄소 녹색기술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센티브 제공은 결국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확대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유럽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데 대한 불만을 마크롱 대통령이 표명한 것이다.

2차전지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과 EU의 신경전이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EPA 연합

바이든 만난 마크롱의 경고

마크롱 대통령은 IRA의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공격적인 보조금과 인센티브는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문제 등으로 인해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의 이기적인 결정이 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미국은 마크롱 대통령의 불만에 대해 다양한 옵션을 충분히 논의할 것임을 밝히면서 달래기에 나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국가가 특정 산업 및 기업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은 정상적인 무역 흐름을 저해하며 불공정 경쟁을 초래하는 요소로 비판받아 왔다. 수출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국산 부품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경우 수입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상호 이익을 전제로 이뤄지는 자유무역 관점에서 보면 이런 보조금은 기본 전제를 침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보조금 관련 규정을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무엇이 보조금인지, 그리고 어느 규모까지 규제할 것인지를 둘러싼 기준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보조금은 자국 산업 육성과 수출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특정 기업 및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고, 보조금 종류를 ‘금지’ ‘조치가능’ ‘허용보조’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만약 특정 국가의 보조금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판단한 국가가 있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WTO에 제소하도록 함으로써 보조금에 대한 보복과 중재 절차를 공식화했는데, 이것이 ‘보조금 및 상계관세에 관한 협정’, 일명 보조금협정이었다.

하지만 2001년 중국의 WTO 참여와 이후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보조금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은 증폭됐다. 중국이 철강, 태양광 등 특정 분야에 대해 불공정한 산업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무역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과 기업에 대해 선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당 분야의 지배력을 향상시켰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은 2021년 초 보조금협정 개정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무제한적인 대출 보증과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보조금을 금지보조금에 포함시키며, 국가 이외에 국영기업을 통한 간접적인 형태의 보조금 지급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이 중국과의 첨단제조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022년 8월 제정된 반도체 및 과학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과 고도화를 위해 527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직접 투자하도록 규정했다. 이 가운데 390억 달러는 반도체 제조 부문에 직접 지원금으로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특정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 지급을 공식화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법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또는 기타 우려국가에 대해 관련 시설의 신설 및 확장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어 제정된 IRA 역시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전기차에 대해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전기차 보급을 위한 구매 보조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IRA의 경우 그 대상을 미국 또는 북미에서 생산되는 2차전지로 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료물질에 대한 지역 제한까지 두고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또는 북미 지역에 투자하라는 노골적인 신호다. 이에 따라 아시아와 유럽의 2차전지 업체들은 자국 또는 지역 내 투자를 중단·축소하고 미국에 대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지만 2차전지 및 전기차의 경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따라 큰 타격을 받게 됐다. EU는 미국에 대한 항의와 함께 변경 요구를 넘어 자신들 역시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문에 대한 EU 기업들의 투자 축소나 해외 유출이 일어날 경우 이를 막기 위해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은 ‘약’ 아닌 ‘독’

실제 유럽은 지난 2월 EU 내 반도체 관련 역량 제고 및 생산 확대를 위해 총 430억 유로 규모의 ‘유럽 반도체법’을 발의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반도체 생태계 역량 강화를 위한 보조금 지급이 포함돼 있다. 9월에는 2차전지에 포함되는 광물자원에 대한 유럽 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유럽핵심광물법(CRMA)을 2023년 상반기까지 도입할 것을 공식화함으로써 정부의 공개적인 산업정책 추진과 지원이 이뤄질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과 EU의 이러한 보조금 경쟁은 단기적으로는 우리 기업에 시장 진출 확대와 투자 부담 감소 등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기반 약화와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 역시 필요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보조금 지급 조치를 할 수 있음을 밝힘과 동시에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이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것임을 강조하면서 상호 타협을 이끌어내는 양면 전략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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