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걸작들을 만나다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0 11: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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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해 기획…볼거리 향한 인류의 타고난 본능 충족 평가

체감온도 영하 15도로 알려진 날의 이른 오전, 국립중앙박물관 바깥으로 일군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전시실이 문을 열기 30분 전이라 무심히 지나쳤다. 박물관 관계자의 협조로 취재를 위한 관람을 전시장 오픈 직전에 먼저 보는 혜택을 얻었다. 내가 전시를 다 볼 즈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시실로 밀려 들어왔다. 아까 밖에서 봤던 이들이 관람을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밖에서 줄을 서다가 들어왔다는 걸 알았다. 나와 그들이 그날 본 전시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2022년 10월25일~2023년 3월1일,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빈미술사박물관 제공
《십자가 모양 해시계》, 1619년, 구리 합금에 도금, 높이 17.8 cm 길이 12.1cmⓒ빈미술사박물관 제공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기 직전까지 60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 중 일부가 소개된 전시였다. 도금된 황금빛 해시계와 금으로 제작된 바구니, 수정을 재료로 쓴 투명 공예품, 왕가의 초상화처럼 일반인의 삶과는 다른 세계에 귀속된 볼거리들이 전시 중이었다. 미술품의 원형은 볼거리에 있다. 미술과 전시를 상찬하고 판촉하려고 광채 나는 수사법과 우아한 해석이 뒤따르지만, 미술의 가치는 언어 영역 너머의 볼거리라고 나는 믿는 편이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년경, 캔버스에 유화, 105.0 x 88.0cmⓒ빈미술사박물관 제공

부유층의 소장품이 만인의 볼거리로 변모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이고, 빈미술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성기이던 19세기 중반 무렵 수 세기 동안 수집한 보물과 예술품을 보관할 목적으로 20여 년의 건립 기간을 거쳐 1891년 완공된 미술관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8년 몰락했고 왕족의 수장고는 후대에 공공미술관으로 용도 변경됐다.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던 루브르궁전이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가유물 전시장으로 변경됐다가 후대에는 지금처럼 만인에게 공개되는 초대형 미술관으로 변모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포함해 여러 왕족이 주요 예술가들의 후원자가 돼 메세나 정신의 원형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궁정화가가 돼 안정된 생계와 명예를 보장받은 만큼, 그런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왕가 입장에선 생전과 사후, 왕가에 후광을 달아줄 유명 볼거리 제작자들과의 거래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대중문화 전성기가 된 현대의 유명 연예인들이 광채 나는 홍보와 판촉을 위해 유명 사진가를 고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시실 중에는 작품을 위해 각별히 설계된 곳도 있다. 바로크 음악이 흐르는 검정 박스형 공간 내부에 걸린 바로크 화가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1620~25년경)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하이라이트 조명을 받아 어두운 실내와의 명암 대비로 인해 주목도가 높아진다. 안정된 화면 구도를 공식으로 취했던 앞선 르네상스 시대와 차별되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 빛과 어둠의 대비로 주제를 극적으로 부각시킨 점을 전시 설계에 반영한 것이다.

17세기 해상무역으로 유럽 지역에서 경제 호황기를 누린 네덜란드 정물화를 모아놓은 전시실도 각별히 설계됐다. 플로리스트가 꾸민 실제 화훼장식물이 전시실 중앙에 자리하고, 사방의 전시장 벽에 꽃그림 정물화가 걸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꽃그림은 꽃잎 한 올 한 올의 세부가 정교하고 조화롭게 채색돼, 화병에 꽂아놓은 꽃다발 이상의 완결성을 갖췄다. 지나간 지면(시사저널 제1718호 ‘예술과 본능이 경계선 없이 뒤엉킨 해방구’ 참조)에서 설명한 대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부흥한 정물화는 풍성한 과일과 꽃이 어우러져 볼거리 역할도 했을 뿐 아니라, 정물화 속에 단골로 출현하는 과일이며 꽃 등이 시간이 흐르면 아름다움을 상실하는 사물들이라, 결과적으로 인생무상의 교훈을 준다고 해석된다. ‘헛됨’ ‘공허함’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 회화로 이 정물화들이 명명되는 이유인데, 바니타스 정물화를 여러 점 소유했던 합스부르크 왕조도 600여 년의 황금기를 지나 결국 몰락했다.

전시장에는 수백 점의 그림을 벽 하나에 다닥다닥 붙인 장면을 그린 원화를 컬러 인쇄물로 전시장 벽에 건 출력물이 있다. 인쇄된 그림을 보고 17~18세기 프랑스에서 시행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벽면에 빼곡하게 건 살롱 전시회 장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듣자하니 왕가의 일원이 자신이 소장한 무수한 그림들을 벽면에 걸고, 그 광경을 마치 사진으로 기록하듯이 그림으로 남긴 것이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중 한 점이 그 원화 인쇄물 속에 포함된 여러 그림 중 하나다.

서두에서 나는 미술품의 진가는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해석)가 아니라, 미술품 자체의 볼거리 가치라고 말했다. 볼거리·구경거리는 급수가 낮은 유희를 뜻하는 용어로 쓰이는 감이 있지만, 만인이 보고파 하는 볼거리는 소장자의 신분을 과시적으로 입증할 때 요긴하게 쓰여 왔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 1773년, 캔버스에 유화, 225.0 x 190.0cm, 빈미술사박물관을 사용한 공식 포스터ⓒ빈미술사박물관 제공
《세로 홈 장식 갑옷》, 빌헬름 폰 보름스 1세, 1525~30년경, 높이 190.0cmⓒ빈미술사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가 쌩뚱맞게 전시장에 등장한 이유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장의 마지막 부스에는 생뚱맞게 조선시대의 갑옷과 투구가 진열된 윈도 갤러리가 나온다. 듣자하니 조선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진 후, 오스트리아와 수교하면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기념품이라 한다. 이처럼 어떤 종류의 볼거리는 금전적 가치도, 실용적 용도도 떨어지지만 신뢰라는 상징 가치를 지닌다. 그 점은 이번 전시의 개최 배경이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주요 박물관의 협업·주최로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전시의 공식 포스터 중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중심으로 주변에 군중이 모여 만찬 장면을 지켜보는 그림을 쓴 포스터가 있다. 이 그림은 황실의 음식 76가지가 차려진 만찬을 ‘비황실’ 사람들이 구경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자신의 볼거리 소유물을 전시해 과시 욕구를 충족하는 극소수와,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얻는 절대다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미술과 전시회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 게다.

미술을 전공하려는 수험생을 만류할 때 “미술이 밥 먹여주냐”고들 한다. 절대 다수의 미술은 의식주를 제공하지 못하며 몸에 와 닿는 쾌락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형이상학의 영역에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극소수의 어떤 미술은 의식주 해결이나 육체의 쾌락이 닿을 수 없는, 볼거리를 향한 욕망을 충족시키며 그것은 인류의 타고난 본능인 듯하다. 그 본능은 양국의 수교를 기념하는 의전으로 소환될 만큼 공신력까지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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