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앞두고 당무 관련 공개발언 증가…‘친윤 스피커’ 재부상
“계파활동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
지난 8월31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의 혼란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장 의원은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상임위 활동에만 전념하겠다”라고 했다. 당 일각에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퇴진 요구가 나오자 이를 수용한 것이다. 실제 이후 장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에 머물며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이후 100일, 장 의원의 ‘백의종군’이 끝난 모습이다. 차기 전당대회 등 당내 현안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다. ‘친윤’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 권성동 의원 등과의 접점도 늘려가고 있다.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는 각을 세우는 양상이다. 여권 일각에선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을 아는 ‘실세’가 장 의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당대회 앞 ‘윤심 메신저’는 장제원?
여권의 화두는 전당대회다. 여당 대표는 정치권의 ‘노른자 자리’로 꼽힌다. 공천권을 손에 쥘 수 있고, 총선 승리까지 이끈다면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그렇기에 전당대회의 시점과 룰(rule·규칙)은 민감한 사안이다. 전당대회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여느냐에 따라 후보들 간의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주호영 원내대표는 관련한 사견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주 원내대표가 ‘이상적인 당 대표상’에 대해선 의견을 제시했다. 이른바 ‘수도권·MZ(2030세대) 표심을 잡을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런데 돌연 이 발언에 장제원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심’과 배치되는 대표상이라는 게 장 의원의 주장이다. 영남에 기반을 둔 김기현 의원 등도 장 의원 주장에 동조했다.
장 의원은 8일 친윤계 의원모임 ‘국민공감’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주 원내대표가 말한 ‘수도권·MZ 세대 차기 당 대표 조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의도,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원내 관련돼서 얼마나 현안이 많나. 예산 문제도 타결해야 하고 국정조사 문제도 같이 맞물려 있는데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될 말씀을 해서 우리 당의 모습만 자꾸 작아지는, 그렇게 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성에 차지 않는다는 그런 표현들을, 뭐 윤심이 담겼다고 얘기를 하는데 우리 대통령께서는 전당대회 후보를 두고 성에 차지 않는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이 주 원내대표를 비판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8일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 현장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내용의 필담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주 원내대표가 퇴장시키자, 장 의원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작심 발언했다. 당시 주 원내대표가 장 의원 등 중진들과 만나 오해를 풀었다. 그러나 한달 만에 장 의원이 주 원내대표를 재차 비판하면서 두 사람 간의 ‘불화설’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장 의원이 ‘윤심’을 당 지도부와 당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장 의원이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윤 대통령을 대신해 전당대회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맞다면 ‘수도권 대표설’에 윤 대통령이 호응하지 않았고, 이 같은 대통령실 분위기를 장 의원이 대신 전달한 셈이다.
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장 의원이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안철수 의원과) 단일화 협상을 성사시키고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이가 바로 장 의원”이라며 “장 의원은 지도부도 아닌데 윤 대통령과 만찬을 했다. 장 의원이 ‘윤심’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2023년 장제원의 존재감은 더 커진다?
장 의원은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장 의원은 7일 페이스북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법원이 현장 책임자마저 사실과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상민 장관의 책임부터 묻고 탄핵을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직격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장 의원을 확정했다. 행안위는 행정안전부를 감시하는 상임위로, 이상민 장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다. 이에 야권에선 사퇴 기로에 선 ‘이상민 지키기’에 장 의원이 앞장설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장 의원은 내년 5월까지 행안위원장을 맡은 뒤 과방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장 의원은 ‘친윤 그룹’과의 스킨십도 늘려가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친윤계 공부모임인 ‘국민공감’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당초 계파활동으로 비칠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국민공감’은 순수 공부 모임이라는 게 장 의원의 주장이다. 친윤 의원들도 장 의원 행보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장 의원과 불화설이 돌았던 권성동 의원은 7일 ‘국민공감’ 출범식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저와 장 의원은 오랜 기간 함께 의정활동을 해왔던 동지”라고 강조했다.
다만 장 의원은 자신의 주장이 ‘윤심’으로 대표되거나,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선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장 의원은 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한 입장에 대해 “그거는 그 정도로 하자. 충분히 내 의사가 전달된 것 같다”라고 답했다. ‘당대표 선거 룰 변경’에 대해서는 “전당대회나 이런 사안에 대해 언론에 가끔씩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장 의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정치 현안에 대해 다 물어보면 어떻게 답변해야 되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