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윤미향보다 권인숙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2.12.16 17: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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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이름 석 자는 박종철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1987년 전두환 정권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든 반인권적 행태의 희생자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다. 박종철은 세상을 떠났고 권인숙은 그 사건 이후 여성 학자의 길을 걸어 2003년 한 대학 교수로 자리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야를 떠나 많은 이는 한 시대의 희생자이자 새 시대를 여는 데 용기를 발휘한 권인숙 교수에 대해 존경을 거두지 않았다. 그 후 성폭력 문제 등을 깊이 연구하면서 여성 문제에 관한 목소리를 높였고, 나아가 성폭력 전문 연구소 ‘울림’ 초대 소장을 맡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권 교수는 이쪽으로 훗날 큰 학자가 되리라 오판했던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오판의 이유는 권 교수가 품고 있던 권력욕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3월8일 하필이면 여성의 날에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더니 한 달 후에는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의 자기 행적과 연구활동을 고스란히 정치권력에 팔아넘기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또한 한참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그런 시대적 고통을 겪은 한 사람이 그런 고통을 손쉽게 권력과 바꾸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권인숙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2022년 11월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권인숙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 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권인숙씨의 완장은 늘어만 갔다. ‘군적폐청산위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법무부 성희롱 성범죄대책위원장’ 등등…. 그는 마침내 2020년 당시 여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의회에 진출한다.

이때부터 정치인 권인숙은 그간 살아온 궤적과 그로 인해 우리 사회 건전한 식자들이 갖고 있던 그에 대한 기대에 반하는 삶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장남의 성매매 의혹이 불거지자 변호에 나섰다.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당시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에 대한 도에 지나친 민주당의 공격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김건희씨에 대한 비판이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그게 바로 여성에 대한 모독이다.” 당시 권인숙 의원 인터뷰를 보면 이 말 자체는 크게 틀려 보이지 않는다. 일부 경력 부풀리기는 누가 보아도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권 의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정작 권 의원은 당시 김건희씨에 대해 민주당이 여성 비하를 넘어 도저히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입에 담기도 힘든 이야기들을 쏟아낼 때 ‘여성 문제’에 입을 닫고 있었다.

사실 누가 윤미향 의원 입에서 그런 지적이 나오기를 기대하겠는가? ‘권인숙’이기에 그런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지금도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허구에 빠져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 그리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어이없는 공격을 일삼고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부질없는 바람 같지만 그래서 여성 비하에 관한 한 여야를 뛰어넘어 권인숙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일갈(一喝)을 기대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그의 아픔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응원했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함 같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바람은 접어야 할 듯하다. 자신이 겪은 한 시대의 비극을 저처럼 자기 출세, 자기 영달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에 대해 그동안 가졌던 일말의 부채의식을 털어버려야 하는 시간인 듯하다. 다만 권 의원이 윤미향과 같은 수준으로 퇴락해 버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그다지 쾌한 일은 아니다. 새삼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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