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어렵다 아우성인데 예산안 처리 실패한 못난 국회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정치학) (db827@naver.com)
  • 승인 2022.12.16 16:05
  • 호수 17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당의 ‘예산 전쟁’ 힘자랑, 대선 민심에 역행…총선에서 몰락한 미국 깅그리치 사례 살피길
윤석열 정권의 이상민 장관 지키기도 비정상…정기국회 회기 중 처리 불발은 8년 만에 처음

여야가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정기국회 폐회일(12월9일)에 이어 2차 마지노선인 15일 처리에도 실패했다. 예산안은 정부가 국가 활동에 수반되는 수입과 지출 예산을 편성해 국회의 심의 확정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의안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 예산은 법률의 형식으로 성립되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 법률이 아닌 예산의 형식으로 의결된다. 미국은 예산 편성권이 의회에 있는 반면, 우리 국회는 예산 심의권만 있기 때문이다. 헌법 54조 1항에선 ‘국회의 입법권과 별도로 예산안 심의권’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헌법 57조)

여야 대립의 최대 쟁점은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여부다. 국민의힘은 “법인세 최고 세율을 낮추는 것은 외자를 유치해 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대기업 법인세 인하는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기존 25%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폭을 당초 3%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낮추는 타협안까지 내놓았다. 민주당은 이를 거부하다 막바지에 “1%포인트 인하”라는 국회의장 중재안을 수용했으나 양당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12일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합의 처리가 지연되는 데 대해 “민생 앞에 여야가 따로 없는 만큼 초당적 협력과 조속한 처리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야당이 다수의 힘으로 예산안·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이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중재를 했으나 실패했다. 왼쪽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오른쪽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시사저널 박은숙

헌법과 법률 위반 행태 드러내

민주당판 예산 수정안의 핵심은 ‘감액 예산안’과 ‘서민 감세안’이다. 민주당은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도 예산 삭감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정부 원안에 포함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 관련 예산, 경찰국 등 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부서 예산, 분양 주택 공급 예산 등을 삭감하는 ‘감액 예산안’을 준비했다. 한편, 저소득자 근로소득세 면세를 확대하고 중소·중견기업 법인세율을 낮춰주는 ‘서민 감세안’ 방안도 포함시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우리가 비록 예산은 감액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예산부수법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서민 지원 예산을 증액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민 삶에 도움이 되도록 서민 감세는 이미 예산부수법안이 자동 상정돼 있기 때문에 처리 가능하다”고 했다.

여야가 예산안 심의를 둘러싸고 보여준 기형적인 행태로 국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첫째, 헌법과 법률 위반 행태다. 헌법(54조2항)에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은 매년 12월2일로 법정 예산 처리 시한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규정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를 내용으로 하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이 정기국회 회기(12월9일) 안에 처리되지 못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법을 만들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다.

특히, 민주당이 헌법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는 비난받을 만하다. 민주당은 헌법에 보장된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엔 국회 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는 ‘불체포 특권’에 기대어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자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려 한다. 노 의원은 “전체적인 상황이 제 개인 문제가 아니며, 민주당의 운명과 관련된 명백한 정치 사건”이라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그런 마음으로, 무도한 검찰에 맞서겠다”고 ‘황당한 일치단결’을 요청했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불체포 특권을 규정한 헌법을 들먹이고, 불리하면 헌법에 규정된 예산안의 법정 시한을 지키지 않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권 교체됐는데 예산은 야당 안으로 편성?

둘째, 민생이 걸려 있는 예산안 처리를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여당의 집단 퇴장 반발 속에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을 향해 예산안 처리를 원한다면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장관 탄핵 소추를 관철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문제적 인물인 이상민 장관 한 명 경질하지 못하는 윤석열 정권도 정상이 아니지만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시절에 정치 사안을 국민 살림살이와 연계하는 일 역시 용납하기 어렵다.

셋째, 대선에서 확인된 국민 심판을 역행하는 행동이다. 정권이 교체되었는데 야당은 예산 심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 예산은 대거 삭감하면서 문재인 정부 때 실패한 정책 예산들을 되살리고 이재명표 예산을 관철시키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민주당이 망쳐 놓은 국정을 바로잡으라고 윤석열 정권을 선택했는데 야당이 거대 의석으로 몽니를 부리는 것은 대선 불복일 뿐이다.

뉴트 깅그리치 의원은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하원의석을 무려 52석이나 늘리는 이른바 ‘공화당 혁명’을 주도해 하원의장 자리에 등극했다. 그러나 그는 199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후 책임을 지고 하원의장과 의원직을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공화당의 선거 패배와 깅그리치 몰락엔 클린턴 민주당 정부를 상대로 한 공화당의 삐뚤어진 ‘예산 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깅그리치는 ‘7년 안 연방정부 적자 해소’를 목표로 내걸고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상·하원에서 통과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깅그리치는 예산안 처리를 보류시켜 정부 셧다운을 주도했다. 1995년 11월14일부터 다음 해 1월6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27일 동안 이어졌다.

미국인들은 셧다운을 겪으면서 다수 의석 야당이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채 의정을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다수당 힘자랑을 하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음미해볼 만한 사례다. 예산안 하나 법정 시한 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못난 국회’를 이대로 둘 것인가. 국민에게도 수첩이 있다. 국민들은 현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일그러진 행태를 잘 기록했다가 다음 총선에서 “국민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정치학)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