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응답하다, 《아바타: 물의 길》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9 12: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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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치에 부응한 제임스 카메론의 대작

‘창작에 대한 야심’과 ‘창작성’이 함께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자는 재능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재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적은 이유다. 물론 여기엔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야심을 재능으로 꿰어내 창의력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실행력’이다(물론 때에 따라 ‘자본력’도 필요할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자신이 이 세 가지에서 얼마나 균형감각을 지닌 감독인가를 다시 한번 선언한다. 스스로를 “세계의 왕”이라 천명했던 《타이타닉》(1998) 때의 오만한 발언이 자신감의 일환임을 《아바타》(2009)를 통해 증명했던 그는 13년 만에 들고나온 《아바타: 물의 길》로 왕좌를 지켜내려는 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바타: 물의 길》은 1편이 훌쩍 높여놓은 기대치에 부응하는 작품이다. 그 어려운 일을 카메론이 해냈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거칠게 말해 2009년 개봉한 《아바타》는 미(美) 해병대 출신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인간의 몸으로 눈을 뜨면서 시작해 판도라의 행성 원주민 나비(Na'vi)족의 몸으로 눈을 뜨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였다. 그사이 그는 불구가 된 다리를 고칠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아바타의 육체를 빌려 나비족 본거지를 염탐했고, 그 과정에서 나비족에 동화됐고, 같은 종족인 인간의 무서운 탐욕을 봤으며, 인간이 아닌 나비족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종국엔 인간이 되길 포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비족이 되길 선택했다. 이건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제임스 카메론식 반기였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의 몸을 빌려 판도라 행성에 로그인할 필요가 없다. 제이크의 아바타는 더 이상 아바타가 아니라, 제이크 자체가 됐기 때문이다. 그에겐 또 하나의 커다란 신변 변화가 있다. 1편에서 ‘꽁냥꽁냥’했던 나비족 네이티리(조 샐다나)와 결혼해 어느덧 학부모가 된 것이다. 금실은 또 어찌나 좋은지 아들 둘, 딸 하나 낳고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아바타가 낳은 딸 키리(역시, 시고니 위버)까지 입양했다. 전쟁 고아인 인간 스파이더(잭 챔피언)도 가족처럼 지내니, 다둥이 집이라 할 만하다. 그런 제이크 가족이 인간의 위협을 피해 바다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모험의 포문이 열린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바다 덕후’가 그려낸 수중 신세계

‘물의 길’이라는 부제가 드러내듯 2편은 해양으로 무대가 확장됐다. 영화가 바다로 간 건 놀라운 선택이 아니다. 타이타닉호를 스크린에 띄워 전 세계 극장가를 집어삼켰던 제임스 카메론 아닌가. 《타이타닉》 이전엔 미군 잠수함과 심연 속 미지의 존재를 다룬 《어비스》(1989)가 있었다. 심해 잠수 세계신기록도 보유한 제임스 카메론은 해저 탐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찍은 자타 공인 ‘바다 덕후’. 그 누구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카메론은 자신이 경험했던 바다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담아내려 작정한 것 같다.

실제로 카메론은 자신이 창조한 수중 세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해 헤엄치게 만든다. 황홀하고 경이롭다. ‘영화적 체험’이란 말의 뜻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바타: 물의 길》은 현재 할리우드 기술력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중 신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숲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이 비행 생물 ‘이크란’을 중심으로 활강의 체험을 크게 안겼다면, 이번엔 바다생물 ‘일루’ 등의 크리처가 등장해 물을 가르며 질주하는 쾌감을 안긴다. 고래를 연상시키는 ‘툴쿤’은 이번 영화 비장의 무기. 새롭게 등장한 바다 부족 ‘메카이나’도 흥미롭다. 숲에서 살아온 ‘오마티카야’ 부족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수중 생활에 최적화된 두꺼운 팔과 지느러미 같은 꼬리는 단순히 시각적 흥미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이들의 오랜 문화적 습성까지 고려해 디자인됐음이 감지돼 놀라움을 안긴다.

전작에서 인류는 나비족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야욕의 종족으로 묘사됐다. 이번에도 그런 인간의 모습이 전면에 서는데, 한 가지 설정이 추가되면서 뉘앙스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지구의 에너지 고갈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에 있는 에너지 광물 ‘언옵타늄’을 채취하는 것이 1편에서의 인간들 목적이었다면, 이번엔 생명체가 살기 힘들어질 만큼 황폐화된 지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도라 행성 자체가 타깃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 입장에서 판도라 행성을 차지하려는 건 단순한 ‘탐욕’이 아닌, ‘생존’의 문제 아닌가.

눈치 빠른 이라면 이것은 5편까지 이어질 시리즈물을 염두에 둔 설정임을 짐작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아바타: 물의 길》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의 플롯을 지니곤 있지만, 다음 시리즈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후속작을 위한 씨앗을 뿌리는 작업은 이번 편이 지닌 중요한 임무. 그중 하나가 인물 개개인의 서사인데, 완전하게 풀지 않고 남겨둔 지점이 많기에 관객에 따라선 완결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는 불평도 전편에 이어 어느 정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그것을 용인하는 정도에 따라 호불호도 조금 나뉠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독창적인 이야기로 승부를 보는 연출자라기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대중 문법으로 풀어 전달하는 데 능숙한 감독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의의 메시지를 서사에 탁월하게 결합시킨다. 이번 편에선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혼혈일 수밖에 없는 제이크의 자녀들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경계’를 돌아본다. ‘난민’ 위치에 놓인 제이크 가족이 다른 부족과 융합돼 가는 과정 역시 특기할 부분. 상세하게 그려지는 인간들의 툴쿤 사냥 신에선 실제 ‘고래 불법 포획자’들을 향한 제임스 카메론의 적극적인 비판이 읽히기도 한다.

영화 《아바타》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나의 주인공으로 기능하는 3D 기술

13년 전 《아바타》가 당도했을 당시 많은 이가 영화산업의 미래에 대해 노스트라다무스가 되길 자처했다. 그중 하나는 3D 영화의 신기원을 연 《아바타》를 유성영화 출현 급으로 비교한 것이었는데, 알다시피 그 예언은 결과적으로 틀렸다. 극장에 걸리는 모든 영화가 3D 포맷인 시대는 결국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바타》 광풍이 쓸고 간 얼마간은 많은 블록버스터가 3D 포맷을 입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너도나도 3D를 선택했지만, 3D 열풍은 빠르게 식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흥미롭게도 그 답을 알려주는 게 《아바타: 물의 길》이다. 다시 3D를 달고 돌아온 《아바타: 물의 길》이 중요한 것은 ‘3D 기법 유무’가 아니라, 내러티브와 시너지를 내는 ‘3D 화법’에 있음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13년 전 우리가 《아바타》 3D에 열광했던 것도 단순히 기술이 놀랍기만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최적의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바타》 이후 나온 많은 영화가 기술력을 전시하는 데 급급해하며 주객이 전도되곤 했다. 3D를 염두에 두고 찍지 않은 2D 영화를 3D로 부랴부랴 컨버팅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3D 영화를 약간 질리게 한 면도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은 집 나갔던 3D에 대한 흥미를 되살려놓는다. 어떻게? 기술 이야기를 위한 단순 깜짝쇼가 아닌, 하나의 주인공으로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아바타: 물의 길》이 안기는 공감각적 체험은 이미 한 번 경험한 것이기에, 이전처럼 대중의 얼을 무섭게 빼놓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끝내주는 영화적 체험을 하고 있다는 충만감을 안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1편이 ‘새로운 경험의 극대치’였다면, 이번은 ‘안정적인 경험의 연장’이랄까. 기술력에서 《아바타: 물의 길》은 모든 부분에서 《아바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3D 깊이감이 한층 선명해져 눈의 피로감이 덜하고 질감도 훨씬 사실적이다. ‘훌륭하다’와 ‘완벽한 수준이다’는 염연히 다른데, 《아바타: 물의 길》은 훌륭한 수준을 넘어선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피터 잭슨의 《호빗》, 이안 감독의 《제미니 맨》에서 쓰였던 HFR(High Frame Rate·초당 프레임을 증가시켜 영상을 매끄럽고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역시 부분적으로 적용해 조금 더 선명한 효과를 준다. 3D처럼 일반 대중의 눈에 확 띄는 기술은 아니지만, 감각이 무딘 관객이라도 몇몇 장면의 화면이 뭔가 쨍하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세상 많은 블록버스터 감독에게 복잡다단한 심경을 안길 것이다. 기술에서 할리우드와의 격차를 반걸음이라도 줄이려 안간힘인 국내 영화시장도 큰 한숨을 쉴 텐데, 《아바타: 물의 길》이 이렇게 또 기술 차이를 여러 발 벌려놓았으니.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극장 관람은 필수, 3D 추천

그렇다면 많이들 궁금해할 부분. 《아바타: 물의 길》은 꼭 3D에서 관람해야 할까. 싱싱한 활어회 질감 그대로 보고 싶다면 3D를 추천한다. 3D 외에도 IMAX , 4DX, 스크린X 등 다양한 특별관에서 영화를 체험하려는 관객이 많으리라고 예상되는데, 단 하나 당부의 말씀. 《탑건: 매버릭》 개봉 당시 특수관이 매진됐다고 해서 극장 관람을 포기하는 관객이 많았는데 그럴 것까지야. 특별관을 잡지 못하더라도, 《아바타: 물의 길》은 꼭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안방에서 보겠다는 건, 활어로 내놓은 걸 냉동했다가 다시 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OTT의 등장으로 극장이 위기인 시대라지만, 이러한 시장 변화가 역설적으로 《아바타: 물의 길》엔 호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극장에서 볼 영화와 집에서 볼 영화를 까다롭게 선별하는 관객 중 그 누구도 《아바타: 물의 길》을 ‘OTT로 풀리면 볼 영화’로 분류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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