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증자 참여하려던 태광산업, 물러선 이유는?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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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주 법적대응 예고에 없던 일로
목소리 키우는 행동주의 펀드에 긴장하는 기업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태광그룹의 섬유·석유화학 계열사 태광산업이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주와 경제 단체의 거센 반발에 따른 결정이다. 행동주의 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강한 압박에 결국 손을 들었다는 분석이다.

태광산업은 14일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고 현재 보유 중인 가용자금을 활용한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했으나, 상장사로서 기존사업 혁신 및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에 제3자 배정방식으로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 형태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5억 달러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 상환 자금 마련에 분주한 흥국생명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요주주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태광산업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려 했던 이유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대주주이어서다.

흥국생명의 최대 주주는 지분 56.3%를 가진 이 전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의 조카인 이원준씨(14.65%)와 친인척(합계 11%) 등 오너일가가 흥국생명 지분 91.95%를 쥐고 있다. 태광그룹 모회사인 태광산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9.45%, 조카인 이원준씨(7.49%)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54.53%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흥국생명 주식이 전무한 태광산업이 오너 일가의 회사인 흥국생명을 지원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 지난 9일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2대 주주 행동주의 자산운용사 트러스톤에서 반대 성명을 냈다. 트러스톤 측은 “이 전 회장 등 흥국생명 주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태광산업 주주들에게까지 떠넘기고 있다”며 “대주주를 위해 태광산업 소액주주의 권리를 희생하는 결정”이라고 반대했다.

트러스톤 측은 더 나아가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등 법적 조치까지 예고했다. 태광산업의 유상증자 참여가 상법·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상법에서는 상장회사가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주요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적 성격의 증권 매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한다. 아울러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는 회사가 제3자 배정 방식을 통해 해당 계열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계열사 부당지원행위 저촉 가능성도 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도 지난 11일 “이호진 등 흥국생명 대주주가 져야할 책임을 태광산업이 대신 부담하는 것이며, 사실상 이호진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흥국생명을 계열회사가 지원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태광산업은 손을 들었다. 흥국생명은 당초 알려진 4000억원 규모가 아닌 2800억원을 증자하며 “태광산업은 잠재 인수자 중 한 곳으로서 검토를 했으나 태광산업이 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태광그룹 다른 계열사를 중심으로 얘기가 되고 있고 올해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12월12일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차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출석,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12일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차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출석,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엠 이어 태광산업도 백기…행동주의 펀드 속내는?

이처럼 행동주의 자산운용사의 목소리가 최근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KT&G 지분 1% 내외를 갖고 있는 싱가포르계 사모펀드인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대상으로 거버넌스 재정립 등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일반 주주들과 온라인 설명회를 열며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KT&G 이사회와 대표이사에게 각각 대면 미팅과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경우 주주로서의 문제제기가 성공한 사례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에 대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에 에스엠은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행동주의 자산운용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기업 견제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면서도 “내년 3월 주총을 앞두고 이사회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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