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물으러 나는 묘지에 갔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5 11:05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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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서 찾는 죽음과 삶의 기록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서울을 다니다 보면 돌 위에 새겨진 수많은 인물을 만난다. 대학로 남이장군 집터, 종로3가 최시형 처형지, 종로1가 전봉준 압송상 등. 이런 장소를 만나면 사람들은 그들의 화려한 시간보다는 보통 죽음의 시간을 생각한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으로 완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죽음이 가진 처절함에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작을 통해 외국 인물들의 묘지가 가진 깊이를 읽어낸 이희인 작가가 우리나라의 앞선 이들 속으로 들어가 죽음의 의미를 반추한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국내편을 출간했다.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만큼 선명한 것은 없다. 그래서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그 흔적인 묘지의 이야기는 공감이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죽음은 모두에게 같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공평하다. 죽음까지의 상대 시간과 절대 시간은 다르다.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을 휠씬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국내편│이희인 지음│바다출판사 펴냄│410쪽│각 1만7800원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국내편│이희인 지음│바다출판사 펴냄│410쪽│각 1만7800원

저자가 우선 주목하는 묘지들은 화려한 왕릉보다는 죽음이라는 시간을 극적으로 보낸 이들의 것이다. 천주교 박해로 처절한 마지막을 맞은 정약종 3형제, 동학 지도자로 최후를 맞은 최제우, 최시형과 양화진과 절두산의 묘지들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종횡무진 공간과 역사를 재배치하는 이야기꾼의 풍모다. 정조 사망 후 우리 역사는 박지원 등 북학파나 김정희 등 정치와 종교의 희생자, 김옥균 등 개혁파, 동학의 지도자, 마지막 왕실의 주인 등이 복잡하게 혼재한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잘 배치해 각 인물들의 활동과 죽음의 흔적인 묘지를 연결한다.

2장에는 친일과 항일 인물의 묘를 배치했다. 유관순, 한용운 등이 묻힌 망우리 묘역과 김구, 이봉창이 묻힌 효창공원 등 국내는 물론, 뤼순 감옥이나 구소련 독립투사들의 묘지 흔적도 찾는다. 국내로 봉환된 홍범도 장군이나 아직 유골을 찾지 못해 가묘로 있는 안중근 의사 묘지의 이야기도 담는다. 3부와 5부에서는 문인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만주에 있는 윤동주나 백석의 묘, 안성에 있는 기형도 등 문인과 유재하, 김현식 등 가인들의 묘지 이야기도 담고 있다. 많은 장소가 있는데, 왜 조금은 두려운 망자의 공간을 찾았을까.

“젊은 날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준 인물들이 망자가 되어 누운 자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각 분야 거장들의 묘지를 책처럼 읽음으로써 그들이 이 세상에 던진 위대한 생각과 인간적 온기를 곱씹고 싶었다. 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와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무덤 앞에 섰다.” 이 책은 묘지에서 그들의 저서나 작품을 다시 읽으며 사색과 명상에 잠기는 ‘묘지인문학’이다.

저자는 전 노무현 대통령의 묘를 참배한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이런 깊이 없음의 시대에도 우리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들은 늘 곁에 있었다. 그들은 생전의 업적이나 작품 때문에 위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잠든 자리에서마저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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