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건강한 삶의 조건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2 07:3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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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단독 인터뷰] 지팡이 없이 2층 계단 올라 허리 꼿꼿이 세운 채 전신 사진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면 늙은 신체도 끌고 갈 수 있다”
“100세 넘어 신문 칼럼 쓸 수 있는 건 사고하는 힘이 살아있기 때문”

2023년 새해를 맞아 시사저널은 건강한 삶의 조건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건강한 삶이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 그리고 정신 건강까지 포함합니다. 이 세 가지 건강을 모두 갖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건강한 삶의 조건을 살펴보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 인물로 새해 104세를 맞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모셨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시사저널을 찾은 지난해 12월19일은 엄동설한에 갑자기 혹한이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2층 계단을 혼자 올랐습니다. 허리를 펴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전신 사진을 여러 번 찍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특정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기억할 만큼 마음과 정신도 또렷했습니다.

김 명예교수는 건강한 삶의 조건으로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 건강을 강조합니다.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면 늙은 신체도 끌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마음·정신 건강은 나라를 발전시켜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고 역설합니다. 그가 말하는 ‘104년 건강한 삶의 조건’이 새해 여러분의 건강한 삶에 보탬이 되길 기원합니다.

ⓒ시사저널 임준선

건강하십니까. 2023년 새해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건강은 괜찮은 편입니다. 새해에 특별한 계획은 없고 기존에 하던 기독교 관련 집필을 마치고 책을 내려고 합니다. 현재 신문 두 곳에 쓰고 있는 칼럼을 묶어 책을 낼 생각도 있어요.”

평소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정신 건강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강을 말할 때 신체 건강만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이 있어요. 정신 건강은 유지되는데 신체 건강이 못 따라옵니다.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에 지면 곧 죽음입니다. 나이 들면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의 균형이 깨집니다. 예컨대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96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정신 건강은 또렷했어요. 그런데 신체 건강이 나빠지니까 처음에는 지팡이를 짚더니 곧 휠체어에 의지하다가 나중에는 눕게 됐습니다.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의 균형이 깨진 것인데, 즉 인간적 건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나는 마음·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큰일을 하거나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욕심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그 균형을 잡아준 것 같아요. 1954년부터 연세대와 관계를 맺은 후 1985년 정년퇴임 때까지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때도 학과장이나 학장이 되자는 생각은 없었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97세 때인가, 한 신문사에서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 10인을 발표했어요. 대부분 50·60대인데 나만 90대였어요. 내가 왜 거기에 포함됐을까를 생각해 보면, 문장 면에서는 50·60대가 감정도 풍부하고 형용사도 훌륭한데, 나는 사상(사고력) 면에서 앞섰나 봅니다. 사상이 깨졌으면 그 10인에 포함되지 못했겠지요. 즉 사고하는 힘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00세 전해에 신문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도 사상을 유지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년퇴임하던 65세부터 80세까지 일 가장 많이 해

주어진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65세에 정년퇴임했습니다. 나는 30대 중반에 연세대에 가서 선배 교수들의 정년퇴임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퇴임하고 보니 할 일이 더 많았습니다. 강단에 있을 때 저술하지 못했던 강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자, 이것이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철학적 이해》 《윤리학》 등 책을 냈습니다. 교수직 못지않은 큰일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76~77세까지 했어요. 또 정부 기관, 사기업, 사회단체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는데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더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년퇴임부터 80세 가까이 될 때까지 일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아요. 80년을 살았으니 90세까지 그 일을 연장해 보자 했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내 친구들은 90세가 되니까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90세가 되니 힘든 시기가 찾아오는데 가장 힘든 점이 정신적 고독입니다.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 대화 상대가 없었거든요.”

정신적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그 무렵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더 많아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공산 치하에 살아보고 군사 독재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지금 한국을 보면 전쟁의 폐허에서 60~70년 쌓아올린 나라가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정치가 잘못돼 가고 경제도 병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런 것을 자꾸 느끼니까 칼럼도 쓰고 방송도 합니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이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해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강연도 많이 하고 글도 자주 쓰려고 합니다.”

 

타고난 장수 체질 아냐…‘20세까지만 살아라’ 소리 들어

김 교수는 타고난 장수 체질이 아닙니다. 어릴 때는 몸이 너무 약해 가족은 그가 20세까지 사는 것을 보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 신앙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빌었습니다. 현재 김 교수는 하루 일과를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이런 생활은 몸의 항상성을 높여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아침 6시면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10분 정도 기도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6시30분이면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합니다. 하루 세끼를 모두 챙기되 음식량은 조금 적게 그리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편입니다. 아침으로는 우유, 호박죽, 반숙 달걀, 샐러드, 토스트(또는 찐 감자)를 챙깁니다. 식후 과일이나 아메리카노 반 잔을 즐깁니다. 이후 집 근처 산에 오릅니다. 등산 후에는 책상에 앉아 책을 씁니다. 점심식사나 저녁식사 때는 고기를 조금 먹습니다. 끼니마다 단백질을 섭취하는 식습관입니다. 점심 무렵에는 30분 이내로 낮잠을 즐깁니다. 이후 강연이나 방송 활동을 합니다. 저녁 식사량은 점심보다 적습니다. 활동량이 적은 저녁을 위해 칼로리 섭취를 적게 하는 편이 건강에 이롭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를 씁니다. 밤 10시 또는 11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일정한 습관들이 건강 유지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항상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정신적 피곤을 푸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잠시 잠을 자는 것입니다.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밤잠을 충분히 자고, 낮에도 약 30분씩 잡니다. 점심 먹고 졸리는 시간에 여기(시사저널) 오느라 차 안에서도 잠시 잤습니다. 강연하러 지방에 갈 때도 비행기에서 잡니다. 또 50대 후반이나 60대쯤 되면 오래 계속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 하나는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지만 오래 수영을 했어요. 지방에 다녀온 후 피곤한데도 수영을 하면 피곤이 풀립니다. 등산도 오래 했어요. 그러나 머리 쓰는 일은 하지 않아요(웃음). 내 친구가 바둑을 권하는데 나는 안 합니다. 뇌를 되도록 쉬게 하려고요. 대신 책을 읽습니다. 젊을 때부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정서적으로 늙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일기를 쓰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은 새로워져야 합니다. 나 자신이 변화하기 위해 과거를 아는 것이 좋아 일기를 씁니다. 일기 쓰기 전에 지난해 일기를 먼저 꺼내 읽어봅니다. 그때보다 후퇴하지 않으면 좋고요(웃음).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새로워졌는지를 확인합니다.”

오래 산다고 꼭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김 교수는 중학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너는 이제부터 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나만의 가정만 걱정하고 살면 가정만큼밖에 크지 못한다. 친구들과 더불어 좋은 직장을 만들고,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봉사하면 그 직장의 주인이 되고 그 사회만큼 커진다.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면 너도 모르게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하게 되는 게 인생이란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인촌 김성수 같은 시대의 어른을 만나 ‘나보다 이웃과 국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평양 창덕학교 8년 선배였던 김성주, 어느날 김일성으로 둔갑”

개인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이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인데,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 또는 공동체 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103년을 살아보니 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위해 살았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국가가 성장해 좋은 나라가 되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라 없이 산 우리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애국심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어 이렇게 고언(苦言)을 남깁니다.”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1945년 해방된 후 2년 동안 북한 땅에서 살다가 더 이상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해 남한으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잘못된 점은 진실과 정의가 없어졌어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성주라는 사람입니다. 나와 고향이 같고, 창덕학교 8년 선배이기도 한 김성주가 해방 후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에서 김일성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 정권의 출발이었습니다. 그것부터 거짓입니다. 그 후 몇 달 만에 정직과 진실이라는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그다음, 옳고 그름이 없어졌습니다. 가치관이 무너진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애가 사라집니다. 평양에는 공산당원만 살고 당원이 아닌 사람은 모두 퇴출당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은 살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의란 무엇이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나한테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정의란 모든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간애를 위한 수단이라고 해석합니다. 인간애가 있는 선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라는 말입니다.”

젊은 세대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십니까.

“예전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습니다. 그런데요.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은 국가고시를 보고 의사나 검사가 되지만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의사나 검사로서 살지 ‘나’로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50·60대쯤엔 ‘내 인생을 살았다’가 중요합니다. 같이 학교에 다녔던 윤동주 시인을 보면 그 사람 속에 시인이 있었어요. 2~3년 선배인 황순원 작가를 보면 그 안에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제일 부끄러웠던 점이 내 안에 내가 없는 것이었어요. 중학교 4학년 때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안의 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 60대 되어 ‘내 인생 살았다’고 할 직업 택하길”

기성세대에게는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30·40대에게는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싶어요. 30대부터 60대까지는 일하는 시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공을 행복으로 알고 살지요. 성공했다 또는 못 했다는 평가를 50·60대에 받습니다. 돈을 좇는 것은 바보예요. 경제의 노예가 된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살고, 정신적 가치까지 느끼는 사람은 3분의 2를 살고, 사회적 보람까지 느끼면 100을 사는 것입니다. 그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우선 서두르지 말고 중책을 맡아서 끝까지 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빨리 승진하려고 욕심내지 말고요. 두 번째로는, 작은 일에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늦더라도 그릇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큰 그릇은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희망입니다. 그릇이 작으면 물을 쏟아내야 빈자리가 생기는데 대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큰 그릇은 늦게 형성되지만, 그릇을 크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좋은 말씀입니다만 나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왔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하나는 반드시 있다는 점입니다. 그 사람의 그 장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됩니다. 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면 작은 문제들은 덩달아 해결됩니다. 작은 문제로 옥신각신하면 중요한 문제를 놓칩니다. 나는 감투를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나에게 국회의장 하라면 잘할 것 같아요(웃음).”

건강한 삶의 조건 중 하나는 인간관계일 텐데, 조언 부탁드립니다.

“동양의 전통적 시각에서 보면, 우선 나 자신을 성실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웃과 사회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성실한 사람, 공동체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에서 섭섭하고 서운한 점으로 요동치지 않도록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2023년 새해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데 나는 예전부터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말합니다. 지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자는 것이죠. 이를 위해 우선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이란 50년 후의 세상을 보라는 말입니다. 그 속의 한국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누구?

1920년 출생으로 평안남도 대동군(현재 평양시)에서 자랐다. 신망학교와 창덕학교에 다녔고 기독교 학교인 숭실중학교에 진학했다. 이 무렵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 일본 조치대 철학과에 입학해 1944년 졸업했다. 귀국 후 곧 해방을 맞았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공산주의의 압박을 받아 북한 땅을 떠났다. 1947년부터 중앙고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1954년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1985년 정년퇴임 후 현재까지 각종 강연, 방송,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1985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2021년 국민통합상 등을 받았다. 새해 104세를 맞이하지만 만 나이 사용을 규정한 관련 법이 시행되는 2023년 103세로 다시 한번 젊어지는 경험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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