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전쟁’, 국회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31 16: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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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기한 22일 넘겨 예산안 국회 통과했지만…속기록도 없는 부실한 예산심사에 뒷말 여전

2023년도 예산안이 지난해 12월24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해 예산안은 총지출 기준으로 638조7000억원 규모다. 정부안보다 3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예산과 비교하면 총수입은 2.8% 증가하고, 총지출은 5.2%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입장이 엇갈린 쟁점마다 여야는 중간선에서 타협을 선택했다. 정부가 최우선 순위로 추진했던 법인세 감세는 후퇴해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안은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씩만 내리기로 했다. 반도체 지원 특별법도 처리되기는 했지만,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이 무산됐고, 신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도 기대보다 낮아졌다. 행정안전부 경찰국을 포함해 정부가 신설한 조직의 예산은 50% 삭감으로 타협했다. 대통령실은 합의 결과를 수용하지만, 힘에 밀려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2022년 12월24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634조5000억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이 재석 273인, 찬성 251인, 반대 4인, 기권 18인으로가결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예산 처리 불발에 따른 준예산 사태 면해

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나, 예산 처리 불발에 따른 준예산 사태를 피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헌법 제54조 제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다음 해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는 헌법에 정해진 기한인 12월2일을 22일 넘긴 것은 물론이고 정기국회 기한이었던 12월9일마저 15일 넘겨 처리됐다.

물론 국회의 예산안 처리 지연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후 법정 시한 안에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두 번뿐이었다. 예산안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대립은 우리나라 특유의 헌법 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 헌법에는 예산을 법률로 확정한다는 명문상 조항이 없다. 그러니 미국처럼 대통령이 거부권을 가질 수도 없다. 대신 우리 헌법은 증액과 감액 권한을 행정부와 국회에 나누어 부여해 놓았다.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독자적으로는 감액만을 할 수 있을 뿐, 증액하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와 국회의 합의를 요구하는 우리 헌법이 정부의 정책 추진 능력을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국가에서 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의지는 예산으로 현실에서 구현된다. 예산을 법률로 정하는 미국을 제외하면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행정부 예산안이 큰 수정 없이 의회를 통과한다. 영국에서는 의회가 정부 예산안을 크게 수정할 경우 의회의 해산이 이어진다. 프랑스 헌법은 지출 증가와 세입 축소에 대한 의회의 제안을 아예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국회의 합의를 요구하는 우리 헌법의 취지가 잘못됐다고만 할 수는 없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것은 국회의 의무이고 예산 증액에 대한 엄격한 조건은 국민 부담의 증가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증액에 대한 정부의 동의권도 생각보다 강한 무기다. 이번에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수정안을 만들면 정부의 동의를 받을 수 없어 야당이 원하는 예산은 추가할 수 없었다. 여당으로서는 단독 처리를 위협하는 야당에 할 테면 해보라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 국회의 문제는 시한을 정한 헌법까지 위반하면서도 정작 예산안 심사는 부실하다는 점이다.

예산안 심사의 관행을 보자. 정부의 예산안은 보통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제출된다. 하지만 국회는 먼저 국정감사를 해야 한다. 예산안이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위로 넘어갈 때는 국정감사가 끝난 11월이다.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는 보통 50명이 8일간 질의를 한다. 예결위에서는 정치적 대립으로 작은 사안도 합의가 쉽지 않다. 당연히 시간이 부족하다. 계수조정소위원회가 가동된다. 감액심사는 1차로 계수조정소위에서 이루어진다. 법적으로 정해 놓은 사업이나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은 손대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새로 추진하려는 정책성 사업 예산이 주로 도마에 오른다. 속도가 빨라지지 않으면 이제 소소위(小小委)가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다.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들만으로 구성되는 소소위는 2008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국회법에 근거 조항이 없어 속기록도 남지 않고, 회의는 비공개다.

일단 정부 예산을 깎은 다음에 할 일은 다시 정부의 동의를 받아 증액하는 일이다. 늘린 예산을 여야가 나눠 가지는데 절반 정도는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 사업에 배당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쪽지 예산이다. 이번에도 국회는 소소위를 가동해 이틀 일정으로 예산안을 심사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은 1조5000억원을 증액했는데, 아마 대부분이 의원들의 민원 예산일 것이다.

예산심사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부족한 시간이다. 국회의 예산심사는 국정감사 기간을 빼면 채 두 달이 못 된다. 상임위 예산소위원회는 3~4일 정도 열리는 게 고작이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도 길어봐야 2주일이다. 미국에서는 보통 1월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회계연도는 10월1일에 시작하니 심사 기간이 평균 8개월에 이른다. 새해 예산안을 좀 더 일찍, 예를 들어 5월말이나 6월초에 국회에 제출하면 충분한 심사 기간을 가질 수 있다. 국정감사를 법이 정해 놓은 대로 ‘정기국회 시작 전’에 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처럼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를 하는 것은 관례일 뿐이다. 국회의 심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예상되는 여야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예산으로 실현된다. 그래서 예산은 정치다. 싸우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는 않지만, 어차피 정치적 합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부실한 예산심사는 국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소소위를 포함해 예산심사의 모든 과정은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결위 소속 의원도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로 본회의를 통과하는 예산안은 우리 정치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결위 소속 의원도 모르는 예산안?

예산 편성 권한을 나눠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만들고 감액은 국회의 권한으로 남긴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새해 예산안을 국회가 잘 심사해 감액해도 원안에서 1% 정도 줄이는 게 고작이다. 그 난리를 쳤지만, 이번에도 겨우 0.05% 감액했을 뿐이다. 예산 편성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예산 제도 개혁의 문제는 예산 편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재정법을 도입하면서 먼저 기재부가 부처별로 예산 한도를 정하면, 각 부처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편성하는 총액 배분, 자율편성 제도를 기획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성과예산 제도로의 개편을 주장한다. 성과예산 제도는 예산의 궁극적 목적인 정책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평가와 예산 배정을 연계한다. 당장은 심사평가를 강화하기만 해도 예산의 낭비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예산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이를 더 자세하게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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