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제 해결? 스타트업에 달려 있습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31 12: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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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창업혁신팀
공공 아닌 민간 영역에서 저출산 고령화·지방소멸 해법 제시

“인구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에서 실마리를 찾아나가야만 합니다.” 

이런 확신으로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창업에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이하 블루포인트)의 창업혁신팀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회사다. 블루포인트는 최근 창업혁신팀을 통해 스타트업 발굴·투자에서 더 나아가 아이템 선정과 사업기획, 스타트업 창업까지 아우르는 ‘컴퍼니빌딩’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액셀러레이터 업계 1위 회사의 첫 번째 컴퍼니빌딩 프로젝트가 무엇일지에 이목이 쏠렸다.  

뚜껑을 열어보니 주력인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아니고 유행하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와도 관계없는 어린이 공간 서비스였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출산 고령화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창업혁신팀원들이 12월19일 서울 강남구 오피스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미영 팀리더, 박은애 책임심사역, 이인성 수석심사역 ⓒ시사저널 최준필

“난제인 돌봄 공백, 민간發 혁신 필요”  

인구문제는 그간 국가적 어젠다이자 해결이 난망한 골칫거리로 여겨져 왔다. 이를 어떻게 스타트업 창업으로 풀 수 있다는 말일까.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에 속한 이미영 팀리더(39), 이인성 수석심사역(37), 박은애 책임심사역(37) 등 3명을 12월19일 서울 강남구 오피스에서 직접 만나 물어봤다.  

1호 컴퍼니빌딩 프로젝트로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어린이 공간 서비스 사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이미영 팀리더(이하 이미영) “평소 혁신가를 만나거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자 할 때 사업 구상의 출발점이 되는 문제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가’ ‘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이 질문에 대해 막히지 않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예측한다. 어린이 공간 서비스 구상은 맞벌이 부부의 아이 돌봄 공백과 이로 인한 저출산 문제가 점점 더 악화함에도 아무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아울러 관련 논의가 공공의 영역에만 갇혀 있다 보니 혁신이 더디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판단했다. 민간에서 움직인다면 혁신이 일어나고 시장도 커질 거란 가설을 세웠고, 컴퍼니빌딩을 통해 실행에 옮기게 됐다.” 

어린이 대상 공간 ‘아워스팟’을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 만들었다. 이용 가능 연령을 7~9세로 한정했는데. 
▶이미영 “시장조사를 통해 해당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들이 가장 힘겨워하고 경력 단절도 많이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워킹맘 입장에선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유치원·어린이집 하원 시간과 비교도 안 되게 빠르니 애초에 퇴근하고 아이를 챙기기가 불가능해진다. 아이를 돌보미 손에 맡기거나 ‘학원 뺑뺑이’를 시키거나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모두 최선은 아닌 것 같다. 큰 비용이 수반되고 혹여 시무룩한 아이를 보기라도 하면 자책감까지 든다. 솔루션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책 어젠다 아닌 나의 문제다” 

블루포인트가 제시한 솔루션인 아워스팟은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 즈음인 오후 1시부터 부모가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오후 7시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1시간 이용 요금은 1만5000원인데, 멤버십에 가입하면 할인된다. 100시간 멤버십의 경우 시간당 요금이 9600원으로 낮아진다. 아워스팟은 보육 기능에 중점을 둔 돌봄센터도, 사교육을 하는 학원도 아니다. 학교와 집 가까이에서 아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스스로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어린이 아지트’를 표방한다. 블루포인트는 9월 최고경영자(CEO) 공모 프로그램을 거쳐 김보경 대표(39)를 선임하고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학부모의 편의에 방점을 둔 기존 돌봄 서비스와 차별화하기 위해 아워스팟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뭔가를 하면서 머무를 수 있을까’부터 고민했다. 

여기에 빡빡하게 짜인 커리큘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봄교사의 개입 역시 최소화한다. 25평 남짓의 아워스팟은 아이들이 마음껏 다루고 집에도 가져갈 수 있는 100여 가지 재료로 꽉 차 있다. 아이들은 종이, 솜방울, 구슬, 나뭇조각, 고무줄 등 다양한 재료로 상상하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만들기로 자주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동시에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도 사귀게 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인구’ ‘저출산’은 분명 생소한 키워드다. 더구나 블루포인트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 발굴·투자에 특화된 액셀러레이터다. 어린이 공간 서비스 사업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이미영 “아이템을 선정하고 나서 한동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걱정 어린 시선이 없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컴퍼니빌딩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결혼했지만 임신과 출산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선택지에서조차 밀려나는 내 현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회사 동료들도 열렬히 응원하고 도와줘서 동력이 배가됐다. ‘이게 진짜 필요한 서비스구나. 잘 만들어 봐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이인성 수석심사역 “지난 4월 창업혁신팀에 합류할 때만 해도 어린이 공간 서비스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얼떨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업을 기획하고 서비스화하는 과정에서 저출산은 국민 개개인이 코앞에 맞닥뜨린 현실이란 문제의식이 분명해졌다. 또 스타트업이 이 난제를 풀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스타트업이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이미영 “좋은 스타트업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개개인의 상태, 욕구 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결국 혁신적인 대안을 창출해 낸다. 현재까지 저출산 등 인구문제에 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지만 ‘나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공공의 영역에서 거대 담론과 일방향적인 정책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점에서 인구문제를 인식해 재정의하고, 이들이 원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기획하는 일은 스타트업만 할 수 있다.”  

아이디어나 자문은 주로 어디서 얻고 있나. 

▶박은애 책임심사역(이하 박은애) “광범위한 시장조사를 거쳐 아이디어를 낸 뒤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있다. 향후 서울대 보건대학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1~2년 하고 관둘 프로젝트가 아니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깊이 있게 보려고 노력한다. 민간 영역의 다른 주체들과도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싶다.”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의 이미영 팀리더, 박은애 책임심사역, 이인성 수석심사역(왼쪽부터)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의 이미영 팀리더, 박은애 책임심사역, 이인성 수석심사역(왼쪽부터)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블루포인트는 민간 영역에서 특히 대·중견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다면 인구문제 해결의 순간이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인성 수석심사역이 10월25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식에 참석한 것도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민간기업, 학계, 종교계 등이 모여 인구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 플랫폼 형태의 기관이다. 이 수석심사역은 SK, 포스코, 한국콜마, 한미글로벌 등 연구원 운영에 힘을 보탠 기업 관계자들 앞에서 블루포인트의 인구문제 해결 노력을 설명하며 “많은 조언을 구하고 협업 모델도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블루포인트는 아워스팟 곳곳에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DNA를 심어 이곳이 단순한 오프라인 공간에 머무르지 않도록 했다. 아워스팟엔 아이들을 위한 오프라인 공간 ‘키즈스팟’과 부모를 위한 온라인 공간 ‘페런츠스팟’이 있다. 두 공간은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아이들이 아워스팟 내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 데이터가 페런츠스팟에 공유된다. 페런츠스팟은 데이터 공유 기능을 넘어 로컬 커뮤니티로 외연을 넓혀갈 예정이다. 아워스팟의 또 다른 야심작은 매달 진행하는 ‘피플랩스’ 프로그램이다. 로컬 사업자와 스타트업 대표 등 다양한 멘토들을 피플랩스 프로그램에 초대해 아이들과 만나게 한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기업가 정신과 스타트업 문화를 체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아워스팟은 마포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서 벌써 ‘핫플레이스’로 통하고 있다. 예약과 멤버십 가입이 속출하고 12월 피플랩스 프로그램은 인기에 힘입어 예정된 일정을 넘겨 추가로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블루포인트는 아워스팟 1호점의 성과지표를 분석한 뒤 추가 점포를 낼지 결정할 계획이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 문을 연 ‘아워스팟’ 1호점에서 어린이들이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아워스팟

지방소멸·시니어 문제 해결에도 도전 

아워스팟의 수익성은 어떻게 보나. 실질적인 수익 구조가 형성돼야 점포 확장 등 성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영 “일단 돌봄 공백 문제의 해결 필요성에 절절히 공감하고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후 스타트업답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사업이 성장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아워스팟이란 공간이 주는 효용성이나 로컬 허브 역할 등이 증명되면 어떤 사업보다 확장성이 크다고 본다.” 

블루포인트의 2023년도 컴퍼니빌딩 프로젝트는 어떻게 펼쳐갈 예정인가. 

▶박은애 “2, 3호 컴퍼니빌딩 프로젝트가 궤도에 올라있다. 하나는 지방소멸, 다른 하나는 시니어 분야 프로젝트다. 모두 인구문제와 맞닿아 있다.” 

블루포인트는 2023년 2월8일 모든 인구문제에 관한 포럼도 개최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 등을 초청해 어떻게 시장 관점에서 인구문제를 풀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하기 위해 기획했다. 포럼에 대해 이미영 팀리더는 “단순히 민간에서 인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풀 수 있다고 설득하는 자리”라고 전했다. 인구학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가 왜 인구문제를 민간에서 풀어내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미 솔루션 개발에 착수한 스타트업들이 데모데이 형식으로 각각의 아이디어나 서비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의 별칭은 ‘머스크 팀’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이름을 본떴다. 일론 머스크처럼 세상과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혁신가를 찾아 테슬라, 스페이스X 같은 회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작명이다. 일론 머스크가 우리나라의 인구문제에 손을 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기대감부터 생긴다.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도 자신들의 인구문제 솔루션으로 사람들을 설레게 할 날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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