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아니라 금융권 도덕적 해이 통제해야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31 10: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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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혁파와 자정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한계
금융권 구성원 윤리의식 정립이 어느 때보다 시급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와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수많은 투자자에게 존경의 대상이었고, 동·서학 개미의 구루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묻지마 투자보다 가치투자를 강조하며 투자에 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고 말해온, 항상 정석투자를 주장했던 CEO였다. 투자자에게는 신뢰 그 자체였던 그들조차 차명 투자 의혹으로 결국 사퇴하자 금융업계에는 또다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종영한 JTBC 《재벌집 막내아들》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경영권을 뺏길 위험에 놓인 재벌기업의 오너 일가가 전전긍긍하지만, 비서실장은 “모든 일은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며 의연함을 보인다. 이미 벤저민 프랭클린은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도 같기에 양심 그리고 명예도 자본이란 수렁에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매 앞에선 장사 있어도 돈 앞에선 장사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뉴시스
비리 의혹으로 스타 금융인들이 줄줄이 낙마하자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은행권 경영진의 해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탐욕을 위한 커튼 뒤 불법과 탈법

차명 투자와 횡령을 통해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이들은 투자 분야의 전문가 또는 경영진인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시장 참여자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있는 이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 고수익 추구가 용이해 도덕적 해이에 좀 더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을 제일 처음 사용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정보의 우위에 선 이들은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에 일탈의 유혹에 빠진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계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역설적으로 차명 투자와 횡령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이유다. 은행 직원이 몇백억원을 횡령하는 것도, 그리고 금융업계 경영진이 차명 투자를 통해 불법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것도 모두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커튼 뒤에서 투자와 조작을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튼 뒤 탈법은 자신들이 꿈꾸는 황금의 제국을 빨리 세우게 만드는 자극제다. 공정과 상식은 증발된 지 오래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커튼 뒤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탐욕을 축적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뇌신경 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은 이런 부도덕한 문제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 뇌는 자본에 의해 도파민이 분출되는데 차명 투자로 거액을 손에 넣은 이들은 도파민 분출 경험이 쌓이며 이를 학습해 불법투자를 좀 더 과감히 시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업계에는 도덕적 해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7년 한국경제연구 학술지에 게재된 ‘금융투자자의 시장규율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투자자 규율에 관한 내용은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에 정립돼 있음에도 도덕적 해이는 일관되게 모든 시기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 역시 평상시에는 은행의 경영위험지표에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적 불감증은 반드시 도덕적 해이를 부활시킨다.

사실 차명 투자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명성을 날렸던 투자업계 전문가들이 차명 투자로 사퇴를 거듭했고 이 이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을 넘어 미래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시장 중심 경제를 강조하며 보이지 않는 손의 자정 기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불법과 탈법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해결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영역을 규제하기 어렵고, 그 결과 부당거래는 독버섯처럼 늘어난다.

윤석열 정부의 금융 관련 공약을 보면 대부분 규제 혁파에 초점이 놓여 있다. 불법 투자에 대한 금융 당국의 규제 강화 등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개선해 증권범죄 수사 및 처벌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개편해 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한다고 약속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를 어떻게 개편해 투명성을 강화할 것인지 이 점 역시 아직 불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2년 8월,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잇따르자 자산운용사 임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 통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긴 쉽지 않다. 이미 금융권은 3~5년 주기의 순환근무 및 불시 점검, 금융감독원의 정기 감독과 자체 감사팀의 감사 진행 등 불법과 탈법을 막기 위한 다양한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불공정은 보이는 손으로 규제하기 어렵다.

무조건 처벌 강도를 높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일단, 금융권 임직원에 대한 직무역량 교육 외에 윤리 교육을 철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의 CEO는 임원진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임직원 윤리 교육 실천 정도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감사, 감찰만으로 자정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보다 꼼꼼한 감사체계 정립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구성원의 윤리의식 정립이다. 윤리의식은 탐욕을 억제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교육과 규제 두 축 개선 고민할 때

2016년 조직행동 및 의사결정이라는 국제학술지에 중국인 학자 탱(Teng)과 첸(Chen)은 ‘돈과 대인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해당 논문엔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돈과 관련된 지폐, 동전, 은행 등의 그림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실험 참가자는 모두 돈이 최고라는 황금 만능주의에 쉽게 빠졌지만 가구, 책상 등 일반적인 그림에 노출된 실험 참가자는 돈보다는 대인관계의 소중함,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탐욕은 커지기도 그리고 작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해당 연구는 시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정 기능을 발휘하려면 보이지 않는 뇌가 먼저 자본, 권력에 의해 도파민이 분출되지 않도록 윤리의식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금융범죄에 대한 단죄도 한층 더 강화돼야 한다. 예컨대, 횡령 및 불법 투자는 여전히 기소유예 또는 5~8년 미만의 징역형에 그치고 있다.

지금도 TV와 유튜브에선 부자가 돼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황금 만능주의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탐욕을 억제하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자정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시장이 작동하려면 정부는 금융업 전체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교육과 규제 두 축을 어떤 방향에서 개선, 보완해야 할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착한 관치금융이라면 금리 통제가 아니라 편법이 난무하는 도덕적 해이를 통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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