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빠’는 잘못된 등식”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9 13: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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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 짚은 《‘팬덤 정치’라는 낙인》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 정치는 지금껏 ‘팬덤 정치’로 설명되거나 해석됐다. 그러나 ‘팬덤 정치’는 자명한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진 사회·정치 용어이며, 20년이 넘도록 심하게 남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팬덤 정치’ 담론이 유효했던 것은 그 담론이 충분히 검증됐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현상을 다르게 포착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와 언어적 힘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여야를 막론하고 연일 터져 나오고, 다수의 언론 역시 이를 문제적 현상으로 보도한다. ‘팬덤 정치’ 프레임이 겨냥하는 대상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지지자들이다. 이들의 분별 없는 ‘팬덤 정치’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해치고 갖가지 사회·정치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팬덤 정치’ 탓으로 돌리는 기존의 지배적 담론을 단호히 거부한 《‘팬덤 정치’라는 낙인》을 사회학자 조은혜씨가 펴냈다. 조씨는 ‘팬덤 정치’ 담론이 지지자, 즉 ‘시민’을 아무런 근거 없이 ‘팬’과 등치시키는 심각한 개념적 오류를 범하며, 이는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무분별한 낙인을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팬덤 정치’라는 낙인│조은혜 지음│오월의봄 펴냄│216쪽│1만6000원
‘팬덤 정치’라는 낙인│조은혜 지음│오월의봄 펴냄│216쪽│1만6000원

무분별한 낙인에 맞서 시민 정치의 가능성 모색

“가장 큰 문제는 내부 성찰과 자기비판을 수행하지 않는 정당들이 이를 정당정치의 근본 문제를 은폐하는 프레임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데 있다. ‘팬덤 정치’ 용어의 문제점과 오남용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팬(덤)’과 ‘지지자’를 동일한 존재로 간주하는 데서 발생한다. 한국 정치 담론에서 ‘팬덤 정치’는 일종의 극단주의로 분류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병리적·일탈적 현상으로 다뤄진다.”

조씨는 ‘팬덤 정치’라는 낙인이 초기의 대중문화 팬덤, 즉 ‘소녀 팬’에게 쏟아진 여성혐오적 비하의 시선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소녀 팬들이 ‘빠순이’라는 낙인에 둘러싸였던 것처럼, 정치인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도 언제나 ‘○빠’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조씨는 이런 흐름에 맞서 ‘팬덤 정치’로 낙인찍힌 시민 정치 참여의 역사와 현재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오늘날 ‘팬덤 정치’로 불리는 ‘인물 지지 정치’ 현상의 핵심은 제도 정치 행위자를 비롯한 ‘사회 권력 불신’에 있다. 이로 인한 직접행동의 필요성을 느끼는 시민들이 참여 의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사 표현 방식으로 차용하는 것이 팬덤의 문화 양식인 것이다.”

조씨는 ‘팬덤 정치’ 프레임이 교묘히 감추고자 하는 정치·사회 권력 불신 현상을 지적한다. 대의 기구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채 사회 균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거대 양당의 구조적 문제에서 그 정치 불신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위기’를 둘러싼 논의가 시대적 질문으로 반복되는 상황에서 현대사회의 시민 정치 참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조씨는 사회구조와 정치 환경이 개선될 때 ‘인물 지지 정치’보다 더 성숙하고 긍정적인 형태의 시민 정치가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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