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덮으려는 죽음일까, 진실을 알리려는 죽음일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0 11: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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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측근 5명 사망 미스터리…이 대표와 검찰, 양쪽을 향한 저항의 시선

진실을 덮으려는 죽음일까, 진실을 알리려는 죽음일까, 아니면 억울한 누명에 대한 항의 표시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일 때 비서실장을 맡았던 전형수씨(64)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남긴 유서의 파편적 내용들이 국민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시라…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 측근들 진정성 있게 인간성을 길러주십시오.”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하다… (사건 당시) 행정기획국장이어서 권한도 없었는데, 피의자로 입건됐다… 검찰 수사에 조작이 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지만 돈 없는 사람은 너무 어렵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사저널 박은숙

4명은 극단적 선택, 1명은 지병에 의한 돌연사

전씨가 남긴 노트 6쪽 분량의 유서 중 언론에 보도된 문구 조각조각을 모아 비슷한 맥락끼리 묶었다. 현재까지 유가족의 완강한 반대로 유서 전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보도된 내용 또한 주변인들의 전언으로 확인된 것이어서 해당 문구가 어떤 맥락에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의 유서 내용 보도에 대해 유가족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어 유서에 관해서는 어떤 확인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서 일부가 보도된 이후 세간의 시선은 이 대표와 검찰 두 곳으로 쏠려 있다. 1년4개월여 사이 벌어진 5명의 유사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눈길이다. 2021년 12월10일부터 2023년 3월8일 사이 이 대표 주변 인물 5명이 유명을 달리했는데 4명은 자살이고, 1명은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 관련자라는 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중에 사망했다는 점 2가지로 요약된다. 

가장 처음 사망한 이는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었다. 그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다음 날인 2021년 12월10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를 남겼지만 유족의 반대로 공개되지는 않았다. 

당시 유 전 본부장은 2015년 황무성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혐의도 받고 있었는데, 구속될 경우 윗선까지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고민이 깊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해 “설계자 1번 플레이어를 두고 주변만 탈탈 터니 이런 것 아니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11일 뒤인 2021년 12월21일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인물 2명이 연이어 사망한 것이다. 김씨는 당시 참고인 신분으로 4회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에 따른 압박과 징계에 대한 부담까지 겹치면서 김씨의 심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으로 주변인들은 추측했다. 최근 재판을 통해 이 대표를 향한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지난해 구치소에서 풀려난 이후 진술을 번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김씨의 사망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달여 뒤 또 사망자가 나왔다. 2022년 1월12일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처음 제보한 이병철씨가 서울 양천구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씨는 2018년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변호사에게 수임료로 현금과 주식 등 20억원을 줬다며 관련 녹취록을 친문(親문재인) 성향 단체인 ‘깨어있는시민연대당’에 제보했다. 다만 부검 결과 이씨는 자살이 아닌 대동맥 파열에 의한 병사로 결론 났다.

같은 해 7월26일에는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핵심 인물인 배아무개씨의 지인 김아무개씨가 이 사건 관련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수원 영통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법카 바꿔치기’에 사용된 개인카드의 명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전직 국군기무사령부 출신으로,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 성남 지역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면서 김혜경씨의 수행비서이던 배씨와 인연을 맺었다. 경찰은 김씨가 피고인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단 한 차례 조사를 받았으며,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전혀 없었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6장 유서…1장은 이재명 대표 향한 것

그로부터 8개월여 만인 3월8일 전씨가 사망하면서 이 대표 주변 인물의 사망 사례가 5건으로 늘어났다. 전씨는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비서실장과 수정구청장 등을 지냈고, 이 대표가 도지사에 당선된 후 인수위원회 비서실장을 거쳐 2018년 7월 이 지사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일하다 이헌욱 전 GH 사장의 사퇴로 2021년 11월 이후 사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퇴직한 이후에는 별다른 대외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이 대표의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의 공범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였다. 이 대표는 2014~16년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두산건설·네이버·차병원·푸른위례 등의 후원금 133억5000만원을 유치하는 대가로 이들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 변경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전씨는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23번 등장하는데, 전씨가 이 대표와 네이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실무자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알려진 내용만으로 유추해볼 때, 전씨의 유서에는 이 대표에 대한 원망과 검찰에 대한 원망이 모두 담겼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유서는 작성 당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솔직하게 토로한 것인데, 그 내용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라고는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가 유서를 남기는 이유는 대체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자기가 왜 죽는지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여차저차해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되니, 억울함을 풀어 달라거나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6장의 유서 중 특히 이 대표에게 쓴 1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방식의 유서 작성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특정인을 향한 유서를 썼다면, 그 사람의 죽음과 대상자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5명 모두 검찰 수사 중 사망…이원석 총장 “더 세심한 주의를”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성남FC 불법 후원’ 사건 조사를 위해 지난해 12월26일 전씨를 불러 한 차례 영상녹화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별도의 조사나 출석 요구는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 또한 “(전씨가) ‘성남FC 의혹’ 사건으로 퇴직 전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앞두고 있던 조사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최근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상당한 심적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1월31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 사건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쌍방울 전 비서실장 A씨는 “2019년 5월 경기지사 비서실장(전씨)이 김성태 쌍방울 회장 모친상에 조문을 왔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성태 모친상 때 이재명 측근이 대리 조문’이라는 제목 등으로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조문 당사자로 지목된 전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죄가 있든 없든 검찰 조사를 받게 된 피의자가 심적 압박감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면서 “특히 유명 정치인이 관계돼 있고, 언론보도가 이어진다면 검찰 조사가 계속될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전씨가 사망한 당일 민주당 경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미친 칼질’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검찰이 이분 수사한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는데, 이분은 반복적으로 수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찰 압박 수사에 매우 힘들어했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전씨가 조사를 받은 당시 영상을 확인해본 결과 강압적인 수사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전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즉시 대검찰청 부장 회의를 소집해 “안타까운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에 맞고, 세상의 이치에 맞고, 사람 사는 인정에 맞도록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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