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지났는데도 그대로?”…표류하는 재난안전법·스토킹처벌법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6 13: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회, ‘2022년 통과’ 자신했지만 6개월째 상임위 문턱도 못 넘어
여야는 ‘네 탓’ 공방…시민사회 일각 ‘조속한 통과’ 한 목소리

‘이태원 참사’와 ‘신당역 사건’이 발생한지 반 년이 흘렀다. 당초 국회에선 해당 사태들의 원인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과 ‘스토킹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스토킹처벌법)’의 허점을 꼽으며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들은 지금까지도 각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여야 모두 ‘연내(지난해) 법안 통과’를 공언한 것과 대조적이다.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는 사이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법안들은 줄줄이 표류하는 모양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재난안전법 공방…與 “이상민 탄핵 위해 미뤄” 野 “효율적 입법해야”

16일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10월29일부터 이날까지 총 35개의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우후죽순 발의했다. 이중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인파 재난 예방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총 26개에 달했다. 여기엔 정부가 지난해 12월28일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도 포함됐다.

앞서 재난안전법은 ‘축제의 주최’ 유무가 허점으로 거론돼왔다. 주최자 없는 축제에 대해선 의무적으로 안전관리 매뉴얼을 수립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실효성 있는 안전관리 대책도 법안으로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태원 참사 직후 “주최자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적용할 인파사고 예방안전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맞춰 국회·정부가 제출한 26개의 개정안들도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 행정기관장의 안전관리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다만 해당 법안들은 이날까지도 국회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지난해 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주요 이슈인 만큼 연내 법안이 처리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여야는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것을 두고 서로를 탓하고 있다. 행안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야권이 ‘이상민 장관 탄핵’ 강행을 위해 일부러 중대재해법에서 관련 조항 논의를 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법안소위에서도 민주당 측은 장관의 책임으로 몰아가기 위해 가장 시급한 조항 논의를 빼더라”며 “속내가 너무 뻔히 보였다”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 측은 입법보다 정부여당의 해결책 제시와 노력이 중요하다며 반박한다. 행안위 소속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조사도 진행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현재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물들을 보고 실효성 있게 법을 만들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당역 스토킹 사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0일 오전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부착된 '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 푯말에 붙여진 메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사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0일 오전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부착된 '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 푯말에 붙여진 메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스토킹처벌법도 6개월째 계류…법사위 전체회의 상정도 불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의 진행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9월14일부터 이날까지 총 33개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특히 정부도 지난해 10월 현행법의 허점으로 꼽혔던 ‘반의사 불벌죄 폐지’, ‘가해자 위치추적’ 조항을 담아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연내 통과’를 자신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들도 국회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처음 개정안 논의는 지난해 10월 이뤄졌고 당시 법사위 의원들도 ‘법안 개정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후속조치는 없었다. 여기에 정부 개정안도 결국 지난 2월에서야 국회로 넘어왔다.

이후 법사위는 첫 논의가 진행된 지 4개월이 지난 2월20일 법안소위를 열고 해당 개정안들을 심사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도 개정안들 모두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이 보류됐고 법안소위 위원들은 다음 회의에서 개정안 처리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6개월 동안 개정안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정부에서 시행령만 나오고 법 개정은 따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토킹처벌법 등에 포함된 반의사 불벌 조항이 피해자를 얼마나 곤경에 빠트리고 있는데 아직도 법안 개정이 안됐다”며 “신당역 사건 후 반년이 지났는데도 입법이 이렇게 늦어지는 건 피해자에게 좌절감을 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에 시민들과 전문가들도 정치권이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재난안전법과 스토킹처벌법 등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진영(30)씨는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도 행사 주최를 지정하고 정부의 책임을 강화시킨다더니 아직도 법이 바뀌지 않은 줄은 몰랐다”며 “국회에선 국정조사니 뭐니 목소리만 크게 내고 정작 중요한 입법 일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허민숙 조사관도 “국회와 언론에서는 개정된다고 얘기했지만 결과를 보면 아직 (개정이) 안 된 법안들이 많다”며 “이슈가 불거졌을 때만 반짝 떠서 많은 국민들은 이미 개정안들이 오래 전에 통과됐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깜짝 이슈 때만 집중하거나 책임을 미루지 말고 조속히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