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파트2 “보아라, 글로리어스한 파국을”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8 13: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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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이슈를 사회 전반으로 넓힌 《더 글로리》의 역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방영 전에도 ‘학교폭력(학폭)’은 뉴스면에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였다. 데뷔를 앞둔 아이돌 준비생이 학폭 이슈로 팀에서 방출되거나, 인기 배우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작품에서 하차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아티스트의 과거 행적이 도덕성 검증의 중요 관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학폭 이슈는 연예계에 한정된 지점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 《더 글로리》의 성과 중 하나라면, 이러한 이슈를 사회 전반으로 넓히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처음도 아니고, ‘사적 복수’ 역시 오래도록 되풀이돼온 레퍼토리인데 왜 유독 《더 글로리》에 대중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까. 《더 글로리》가 문제 제기한 것이 ‘학폭 자체’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학폭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새어나온 공적 시스템의 무능력과 무책임, 계층의 불평등에도 거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가난한 피해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를 몸에 새기고 살아가는데, 돈 있는 집 자제들은 ‘부모 찬스’를 기반으로 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보다 기막힐 수 없는 타이밍으로 《더 글로리》 파트1 공개 후, 모두가 파트2에 목말라고 하고 있을 때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임명 하루 만에 아들의 학폭 논란으로 낙마한 ‘정순신 사태’가 일어났다. 아들은 부모가 지닌 권력을 과시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부모인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에게 전학 처분을 내린 학교 측에 맞서 대법원까지 가는 ‘끝장 소송’을 벌이면서 피해 학생에게 사실상 2차 가해를 했다는 것이 연일 보도됐다. 피해 학생이 극심한 정신적 충격 속에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것과 달리, 정 변호사의 아들은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에 기름을 부었다.

해당 사건을 언론들은 이렇게 불렀다. “《더 글로리》 현실판….” 서울대 학보사엔 《더 글로리》에 빗대어 정순신 변호사를 풍자하는 만평이 게재됐다. “멋지다 순신아~ 짝짝!” 누가 그랬더라. 《더 글로리》는 광고비가 따로 필요 없다고. 사회가 드라마 홍보를 돕고 있다고. 정치권도 학폭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으니, 《더 글로리》 흥행은 학폭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 촉매제 역할을 하며 한국 사회에서 학폭이 민감한 ‘뇌관’으로 자리 잡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모양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파트2가 그려낸 가해자들의 파국

파트2가 공개되기까지, 2개월의 공백기 동안 시청자가 원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대참사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또 하나는 학폭 피해자 동은(송혜교)의 삶이 이전으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그녀만의 봄을 찾기를. 전자의 경우 최근 ‘국밥집 막내아들’로 막을 내린 《재벌집 막내아들》과 스캔들인 줄 알았는데 스릴러였던 《일타 스캔들》에서 느낀 배신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은숙 작가가 이 분야에서 큰 획은 그은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로 끝나 버리면서 시청자들의 꿈을 조각내 버린 《파리의 연인》 때처럼, 설마 놀란 가슴 부여잡고 잠에서 깬 연진이 ‘휴~ 꿈이었구나’ 하는 결말은 아니겠지?

두 번의 배신은 없다는 듯, 김은숙 작가는 약속대로 대중이 원했던 꽉 찬 엔딩을 보여준다. 슬프지만 찬란한 동은의 복수를. 파트1이 뿌렸던 떡밥들도 이 과정에서 잘 수거됐다. 가령, ‘전재준(박성훈)의 편집숍 직원이자 과거 학폭 피해자이기도 했던 경란(안소요)은 키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할 것인가’ ‘손명오(김건우)는 진짜 죽은 것인가. 죽었다면 누가 죽였나’ ‘나이스한 개새끼 하도영(정성일)은 바둑처럼 자신의 집을 부수며 들어오는 동은과 아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칼춤 추는 망나니가 돼주겠다는 주여정(이도현)은 정말 순수한 조력자일까’ ‘현남(엄혜라) 남편은 어떤 쓰임을 할 것인가’ ‘연진(임지연)에게 이름에 O이 들어가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한 무당의 말은 어떻게 실현될까’ 등이 모두 풀리고 자리를 찾았다.

그렇다면 동은이 그만의 안식처를 찾길 바라는 대중의 기대는? 김은숙 작가는 이 물음을 주여정의 입을 통해 대답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 찾아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저는 동은 후배의 그 원점을 응원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덜 불행해지려는 것뿐이거든요.”

그렇다. 《더 글로리》는 열아홉 살 이후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했던 동은에게 원점을, 존엄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려는 드라마다. 자그마치 17년. 복수를 위해 공들여 판을 짜고, 복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미친 듯 과외를 하고, 교사 자격증을 따내고, 복수 대상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둘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마침내 ‘인생의 목표인 연진’ 딸이 다니는 학교에 부임하기까지 걸린 시간. 오랜 시간 동은이 들인 각고의 노력과 정성, 치밀함은 《올드보이》의 우진(유지태)에 비견될 만하다. 오대수(최민식)가 자신을 15년간 감금한 이우진을 찾아 복수하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대수를 향한 이우진의 15년에 걸친 꼼꼼한 복수극이었던 그 영화 속 인물 말이다.

독창적인 복수를 선보인 우진만큼이나 동은의 복수 역시 흔한 복수극 속 방법과는 달랐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가해자 집단 스스로가 자멸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이것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한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했던 계급의 차이만큼이나, 가해자들 사이에 존재한 서열을 활용해 복수의 마지막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보아라. 그들끼리의 파국이다. 평범한 세탁집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은이 아니었으면 (괴롭힘의 대상은) 너였어”라는 폭언을 오랜 시간 들어온 혜정(차주영)의 일말의 자존감. 전재준의 ‘따까리’ 역할을 하며 자존감이 구겨진 손명오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동은은 그들을 파국으로 몬다. 동은의 복수가 가해자 무리에서 가장 힘이 약한 손명오와 혜정을 거쳐 우두머리인 연진으로 올라가는 건 영리한 수순이었다. 핑크색의 러브스토리만 잘 쓰는 줄 알았던 김은숙 작가는 이렇게 한 단계 도약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재평가받는 ‘쪼개기’ 전략

《더 글로리》에서 주목할 또 하나는 새로운 시청 패턴의 급부상이다. 나는 사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시청률 50%를 기록할 때처럼, 방영 다음 날 같은 드라마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던 시대는 저물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더 글로리》 ‘쪼개기 전락’의 성공은 그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다. 본방사수를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가는 이들로 인해 ‘귀가시계’라 불렸던 《모래시계》(1995) 때처럼, 파트2가 공개되던 날 “정주행을 위해 반차를 냈다” “드라마와 함께 밤을 새웠다” 등의 증언이 SNS에 속속 등장한 걸 보면 넷플릭스의 ‘쪼개기 전략’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물론 이를 위해선 파트1이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따르긴 한다. 파트1에서 흥미를 잃은 시청자는 파트2를 과감하게 스킵해 버릴 테니.)

그리고, 안길호 PD다. 대리만족의 체험을 선사한 드라마의 여운에서 빨리 빠져나오도록 부추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를 연출한 안길호 PD의 학폭 논란이다. ‘학폭 가해자가 만든 학폭 피해자의 복수극’을 우린 어떤 심경으로 마주해야 할까. 판타지였던 드라마가 빠르게 극사실주의로 변모하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씁쓸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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