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피아제·640만 달러 수수 사실…무능했던 文, 변호 안 맡았어야”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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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회고록 파장
2009년 7월14일 퇴임식에서 퇴임인사를 하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 © 시사저널 이종현
2009년 7월14일 퇴임식에서 퇴임인사를 하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 시사저널 이종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뇌물 혐의 등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당시 제기된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를 "무능했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노 전 대통령 주검 위에서 대통령이 됐다고 꼬집었다. 

17일 조갑제닷컴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 과거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수뢰 혐의 관련 검찰 수사 내용과 핵심 인물들의 진술 등을 상세히 담았다. 

노 전 대통령은 고(故)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불법 로비 사건에 연루돼 퇴임 후인 2009년 4월30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5월23일 봉하마을 사저 뒤에서 투신했다. 노 전 대통령 사망에 따라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이 전 부장은 같은 해 7월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고(故)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박연차에 뇌물수수, 충분한 증거 확보"

이 전 부장은 당시 큰 쟁점이 됐던 권양숙 여사의 '피아제 시계 수수'를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권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재임 중이었던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07년 6월29일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청와대에서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 그해 9월22일 추가로 40만 달러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고 했다. 이는 아들 노건호씨의 미국 주택구입 명목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2월22일에는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 달러를 받았으며, 사업명목으로 사용한 것 역시 '다툼이 없다'고 적었다. 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 횡령도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해 유죄를 받아낼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지만,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작전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작전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盧 '시계는 뺍시다' 제안, 논두렁 시계 보도 靑·국정원서 흘렸을 것"

이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 출석한 2009년 4월30일 조사실에서 오고 간 대화도 책에 상세히 담았다.

그는 당시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이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조사를 요구했으나 노 전 대통령 측이 거부했고, 결국 두 사람을 대면만 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조사실에서 박 회장이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라고 했다고 이 전 부장은 회상했다. 

이 전 부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이 조사 과정에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100만 달러 수수에 대해선 "저나 저의 가족이 미국에 집을 사면 조·중·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부인했다고 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구체적인 수사 개입을 시도한 사실이 있다고도 했다. 당시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은 4월10일께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피아제 명품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4월14일에는 국가정보원에서도 찾아와 비슷한 요구를 했다고 떠올렸다.

이 전 부장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요구가 이어졌지만 "수사에 간섭하지 말라"며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부장은 이를 토대로 이른바 '논두렁 시계' 의혹을 언론에 흘린 것은 국정원과 당시 청와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월21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5년 1월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비극 못 막은 文, 노무현 주검 위에 대통령 됐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을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돌렸다.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저서 《운명》에서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썼던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검찰 수사 기록을 보지도 못했고, 검찰을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며 의견서 한 장 낸 적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변호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을 찾아와 검찰의 입장을 묻고 증거관계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변호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격정 발언을 쏟아냈다.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도 직격했다. 그는 "슬픔과 원망과 죄책감을 부추기는 의식(《운명》 책 발간)을 통해 검찰을 악마화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지요 친구인 노무현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 전 부장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532쪽 분량의 회고록을 오는 24일 출간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4년 만이다.  

이 전 부장은 회고록 발간 이유에 대해 "지난 2월21일 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됐다"며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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