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짓조각 된 22조원 규모 CS ‘코코본드’…“시장 충격 우려”
  • 김은정 디지털팀 기자 (ejk1407@naver.com)
  • 승인 2023.03.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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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사태로 코코본드로 자본 보강한 은행, 재평가 이뤄질 듯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로펌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을 인용하며 CS의 코코본드 보유자들이 스위스, 미국, 영국 등의 변호사들과 이번 CS 코코본드 상각 처리에 관한 법적인 조치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 AP=연합뉴스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로펌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을 인용하며 CS의 코코본드 보유자들이 스위스, 미국, 영국 등의 변호사들과 이번 CS 코코본드 상각 처리에 관한 법적인 조치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 AP=연합뉴스

스위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스위스 연방은행)에 매각되면서 CS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의 가치가 전액 손실 처리됐다. 이에 투자자들이 반발하며 법적 분쟁으로까지 확산될 분위기다. 주식과 채권의 특성이 혼용된 코코본드를 둘러싼 이번 사태는 2750억 달러(한화 약 360조원)에 달하는 유럽 코코본드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낼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세계 최대 로펌인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의 보도자료를 인용하며 CS의 코코본드 보유자들이 스위스, 미국, 영국 등 각국의 변호사들과 이번 CS 코코본드 상각 처리에 관한 법적 조치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CS 투자자들의 반발을 산 건 코코본드가 투자 위험이 더 큰 주식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전혀 보전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UBS는 4조원대의 자금을 들여 CS 주식을 22.48주당 UBS 1주로 사들였다. 반면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UBS와의 합병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6000억원) 규모의 AT1은 전액 상각 처리했다. 채권 가치가 '0'이 된 것이다.

코코본드는 보통 때는 의결권도, 배당권도 없는 이자율이 높은 고위험 채권이다.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할 수도 없고, 후순위 채권보다 변제 순위도 뒤에 있다. 그러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거나,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거나, 금융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보통주인 주식으로 강제 전환된다. 이런 특성을 지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2008년 리먼 사태 때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의 자체적인 자본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상품이다.

CS 매각 과정에서는 상각 조건이 명확한 이런 코코본드의 특성이 모두 무시됐다. CS 코코본드 발행서류에는 '스위스 금융당국은 어떤 우선원칙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회사가 공적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위기 상황(viability event)이면 감가 상각(written down) 할 수 있는 조항도 명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정부의 개입이 있었던 셈이다.

스위스 금융당국의 이런 판단 뒤엔 CS의 최대주주가 사우디국립은행(SNB)이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은행들의 주요 주주는 주로 중동 자본이다. 코란이 이자를 금지하는 탓에 무슬림은 채권이 아닌 은행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자사업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무슬림이 보유한 CS 주식이 증발한다면 그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880만 명에 이르는 스위스 인구 중 최소 9000명에 달하는 CS 직원이 감원될 전망이다. 자사주를 보유한 이들 직원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게 시장의 해석이다. 

휴짓조각이 된 CS의 코코본드 규모는 유럽 코코본드 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이전까지 상각 규모가 가장 컸던 2017년 스페인 포플라르은행의 13억5000만 유로(한화 약 1조8900억원)보다 10배 넘게 크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핌코·인베스코·블루베이펀드 등의 자산운용사가 대규모의 CS 코코본드를 보유 중이다. 이에 글로벌 채권 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아시아 은행권이 발행한 코코본드 가격이 줄줄이 떨어졌다. 홍콩에 본사를 둔 뱅크오브이스트아시아와 태국 카시콘은행의 코코본드 채권은 같은날 각각 장중 8.6센트, 4.3센트 하락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지분을 100% 보유 중인 DBS홀딩스의 코코본드 채권 역시 2.5센트 떨어져 3년 만에 최대 낙폭을 나타냈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킬라의 패트릭 카우프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주주들이 아닌 코코본드 보유자들에게 돈이 갔어야 했다"며 "코코본드 시장에 명백히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코코본드가 고위험 자산인 만큼 코코본드 투자자를 보호하는 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번 사태로 은행들이 자본으로 회계 처리해 보유 중인 코코본드가 재평가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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