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여성 변론 20년의 성찰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6 13: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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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위력 성폭력 사건’ 김재련 변호사의 《완벽한 피해자》

세상에는 작용, 반작용이 있다.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의 위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때문에 요즘 입지전적인 드라마 속 캐릭터는 《더 글로리》 속의 문동은이고, 《대행사》 속 고아인이다. 거기에 이제는 조금씩 성인지 감수성이 싹트기 시작한다. 여전히 폭력적인 아버지도 있지만, 직장에서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행위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것도 그 효과다.

그 결과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1990년대부터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펼치고, 페미니즘 매거진 등을 어렵사리 낸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 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것 가운데 하나가 성폭력이다. 저자는 그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워온 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자살을 선택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저자는 여전히 꿋꿋하게 피해자가 된 여성들 속에 있고, 그 생생한 기록을 출간했다.

“성폭력 증거가 없으면 피해자는 ‘명확한 가해자’가 되고, 성폭력 증거가 명백하면 ‘합의도 해주지 않는 야박한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가 자살하면 피해자는 ‘살인녀’가 되고, 가해자가 이혼하면 ‘가정파탄범’이 되고, 가해자가 파면되면 ‘잘나가는 직장 상사 모가지 자른 사람’이 된다. 지독한 편견이다. 이 견고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실제로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성인지 감수성’과 ‘양가감정’ ‘피해자다움’ 등이다. 동기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얻는 행위가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농담으로 던진 말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관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양가감정’에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미워하는 감정도 있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안타까워하는 감정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은 피해자는 눈물을 보이거나, 화려한 옷을 입지 말라는 통념을 강요하는 듯한 사회의 시각이다. 저자 역시 피해자가 법정에 갈 때 이런 요구를 해왔다는 자기반성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를 볼 때 하나의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완벽한 피해자│김재련 지음│천년의상상 펴냄 228쪽│1만7800원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성폭력 피해자 대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간혹 가해자 상담을 하거나 변론을 할 때 의뢰인에게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해 그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다.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부당하게 피해자에게 반감을 갖지 않도록 조언한다.”

2018년은 현직 검사의 미투부터 안희정 충남지사의 위력 성폭력 사건 등이 있어 우리나라 성폭력 문제를 환기시킨 한 해였다. 이로부터 2년 후에는 저자도 관련된 박원순 시장 사건이 터졌다. 김재련 변호사는 대부분 이 사건의 앞선에서 활동했다. 성폭력부터 아동학대 사건까지 1000건 넘게 맡아왔으며, 그중 600여 건은 무료법률구조 활동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20여년 활동 기록이자 아직 깨어지지 않은 사회 인식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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