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회고록 일파만파…사자명예훼손-수사기록 공개 이뤄질까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7 07:3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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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상 소송 가능성…노무현재단 측 “윤석열 검찰에 사건 안 맡길 것”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가운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내용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에서 촉발된 전직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검찰은 생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을 처리하지 못한 상태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맞이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최고 권력자의 사건은 이렇게 검찰 수사 단계에서 종결됐다.

그런데 이로부터 10여 년 뒤,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다시 꺼내들었다.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즉각 이 전 부장에 대해 형법상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제기됐다. 회고록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 위해 당시 수사기록이 공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왔다. 노무현재단 측은 “윤석열 검찰에 사건을 맡길 수 없다”며 수사 의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제공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제공

‘노무현 서거=검찰 책임’ 회피 위한 수사 내용 공개 파문

논란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이 이명박(MB) 정권과 진보언론,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 등에게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지목된 명품시계 수수 의혹 보도의 배후에 MB 정권과 당시 국가정보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보언론과 그 세력도 배경으로 지목됐다. 이인규 전 부장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수사 상황과 MB 정권 인사들과의 접촉 내용, 당시 언론보도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는 형법상 사자명예훼손,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동시에 수사기록 공개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로 고인의 명예를 공연히 훼손했을 때’에 해당하는데, 이를 따지기 위해서는 회고록 내용의 사실 여부를 다퉈야 하기 때문이다.

파문이 일어난 대목은 명품시계 수수 의혹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형 노건평씨를 통해 건넨 시가 2억원 상당의 시계를 회갑 선물로 받았다는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시계를 수수했다”는 검찰 측 주장과 “권양숙 여사가 퇴임 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야 이를 알았다”는 반대 측 입장이 맞선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인규 전 부장은 수사 내용과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2009년 4월30일) 상황 등을 회고록에 자세히 기술했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에서 말했다는,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는 표현은 특히 논란이 됐다. 이 전 부장은 “시계를 받은 사실에 대해 다툼이 없다”며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자녀 주택 구입 자금 등 명목으로 640만 달러를 건넨 의혹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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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허위사실 여부 다투려면 ‘수사기록 공개’ 필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회고록에 담겼다.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 의견서를 안 내는 등 무능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변호인으로 함께 입회한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회고록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유시민 작가(노무현재단 전 이사장)는 3월20일 유튜브 방송에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기소하지 않았는데, 변호인은 증거 사실에 관한 판단을 법정에 제출한 것으로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으로 거액의 채권을 전달했다가 대선자금 수사에서 이를 회수하고 현금을 줬다는 취지의 수사 내용 등도 회고록에 담겼다.

법조계에서는 회고록 출간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 지휘자가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출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전 부장에 대해서는 형법상 사자명예훼손, 명예훼손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도 적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지휘한 중수부장이,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기술한 책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공무상 알게 된 정보를 유출할 경우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될 수도 있다. 형법상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경우(제127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죄(사자명예훼손·형법308조)도 거론된다. 강태근 법률사무소 신록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허위사실이 있을 경우 형사상 사자명예훼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와 출판금지가처분신청 등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유족이 직접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이지만, 제3자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307조2항)를 물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경우 허위사실 여부를 다투기 위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록 공개 요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강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회고록 내용의 허위 여부를 알기 위해 수사기록을 봐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노무현재단 측은 회고록과 관련해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시민 작가는 3월20일 유튜브 방송에서 재단에서 논의했다면서 사견을 전제로 이처럼 전했다. 유 작가는 구체적으로 ①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공소권이 없어지면서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화할 수 없고 ②사건 관련 공소시효가 2023년 2월 종료됐기 때문에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적용이 어렵다고 반박할 가능성이 있으며 ③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라는 점 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사상 출판금지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이 문제는 공론의 장에서 다투면 된다”며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수사기록 등 노 전 대통령 사건을) 가져다줘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느냐. 윤석열 검찰에 이 사건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0년 3월31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전날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발언해, 유족과 노무현재단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당했다. 1심 재판부는 조 전 청장의 수사기록 공개 요청 등을 기각했고, 2013년 2월20일 선고에서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대법원은 2014년 3월13일 조 전 청장에게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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