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헌재에 무효 판단 구했지만…‘검수완박법’ 그대로 간다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4 10: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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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침해했지만 무효 아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청구에도... ‘소송 요건 안 돼’ 각하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의 효력을 인정했다. 헌재는 민주당이 입법 과정에서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지만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무부와 검사들이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권한이 침해된 것도 아니고, 이들의 권한 침해 및 무효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헌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법무부 장관은 청구인 적격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 수사·소추권에 대해서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이 아니”라며 검사들의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서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6대 수사권(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을 맡게 됐다. 이후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2022년 4~5월 6대 수사권에서 부패·경제범죄 수사만 남기고 수사-기소 검사를 분리하는 내용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검수완박법)을 강행했다. 그러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과 법무부 등은 각각 검수완박법 입법 과정상 절차적 하자 등을 지적하며 헌재에 판단을 구했다. 하지만 헌재가 개정안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검수완박법 시행에는 탄력이 붙게 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수사권, 헌법 근거 없어”…체면 구긴 한동훈

헌법재판소는 3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각각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기일을 차례로 열었다. 앞서 국회는 2022년 4월30일 검찰의 수사권을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검사가 수사 개시한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등 수사-기소 검사를 분리하는 내용도 담겼다. 같은 해 5월3일 통과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에 대해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검수완박법은 2022년 9월 시행됐다.

헌재는 이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검수완박법과 관련해 낸 권한 침해 및 무효확인 권한쟁의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을 때 내리는 처분이다. 기각은 소송 요건은 갖췄으나 그 내용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먼저 헌재는 한 장관에 대해 “해당 법안은 검사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며 “이에 수사권·소추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법무부 장관은 청구인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 장관과 검사 6명은 검수완박법이 검사들의 수사·소추권과 법무장관이 관장하는 검사에 관한 사무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2022년 6월27일 헌재에 판단을 구했다. 헌재는 법무장관이 이를 주장할 청구인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 수사권이 헌법에 명시된 권한이 아니라 법률적 권한이라고도 언급했다. 헌재는 “수사·소추권이 행정부 중 어느 ‘특정 국가 기관’에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해석할 헌법상 근거가 없다”면서 “행정부 내에서 수사·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 사항이 아닌 ‘입법 사항’이므로, 헌법이 수사·소추권을 행정부 내의 특정 국가 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님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법자(국회)는 행정부 내의 국가 기관들 사이에 수사·소추권을 구체적으로 조정·배분하고 있다”며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권은 헌법에 명시된 권한이 아니라 법률상 권한이기 때문에, 입법기관인 국회로부터 권한을 침해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동훈 장관은 이날 헌재의 판단이 나온 후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재의 결정 존중한다”면서도 “(검수완박법이) 위헌·위법이지만 유효하다는 결론에 공감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한 장관은 “검수완박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각하했는데,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헌법적 질문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듣지 못해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헌재에 판단을 구한 배경에 대해서는 “검사의 권한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권익 침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검수완박법’ 효력 인정한 헌재…여진 이어져

헌재는 집권여당 의원들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선고에서도 검수완박법의 효력을 인정했다.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청구한 사건에서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지만 무효는 아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해 검수완박법을 법사위 법률안으로 가결 선포한 행위는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인용 결정했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원장이 검수완박법을 가결 선포한 행위와 관련한 무효확인청구 및 국회의장에 대한 심판청구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했다.

여야는 2022년 검수완박법 입법 과정상 절차적 하자를 두고 팽팽히 맞서왔다. 민주당은 당시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주당 소속이었던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에 합류시켰다. 민 의원은 무소속으로 신분이 바뀌었고, 야당 몫 안건조정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만큼 민 의원의 한 표 행사가 개정안 통과를 좌우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위장 탈당과 개정안 강행 처리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고, 본회의까지 절차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가결됐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심의·표결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법안 가결이 무효라는 취지다.

헌재의 판단은 나왔지만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거짓말은 했는데 허위사실 유포는 아니다’라고 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며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상범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사위원장이 가결시킨 법안은, 안건조정위에 상정되기 전 제1소위에서 의결된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것”이라며 “즉, 안건조정위에서 통과된 법안은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법 정신에 기인해 국회 입법권과 검찰 개혁 입법 취지를 존중한 결정이지만, 일부 절차상 문제를 지적해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며 “민주당은 권력기관 개혁을 완수하고 검찰 독재를 막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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