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요트가 뒤집히면서 권력 구조도 거꾸로, ≪슬픔의 삼각형≫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0 13: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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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슬픈 삼각형의 풍경

승객들이 사정없이 구토를 해대는 모습이 파티 장면보다 더 길게 등장하는 요트 배경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아마 누구에게도 없는 경험일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을 만나기 전에는. 영화는 세계 각지의 부호들 그리고 젊은 모델이자 인플루언서 커플이 탄 초호화 요트가 뜻하지 않게 좌초하고, 이후 생존자들이 무인도에 당도하는 상황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스웨덴의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이번에도 냉소적 유머라는 자신만의 메스로 인간 집단행동의 모순과 사회적 딜레마 그리고 계층의 속성을 해부한다. ‘《기생충》(2019)의 초호화 요트 버전’은 이 영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영화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돌발 상황 앞에서 드러나는 모순들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작해야 한다면 이 영화의 난이도는 최상급이다. 원제는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Triangle of Sadness)’. 보톡스로 간단하게 시술 가능한 미간 사이의 주름을 뜻하는 미용 용어다. 일차적으로는 보이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인플루언서’ 시대를 비판적으로 겨냥하는 의미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제목에서 언급하는 삼각형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계층 피라미드를 뜻한다.

세계 각지의 부호들이 휴가를 즐기는 호화 요트에 젊은 모델 커플 칼(해리슨 딕킨슨)과 야야(샬비 딘 크릭)도 오른다.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초대된 것이다. 무기거래상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한창 여유로이 여행을 즐기던 때, 크루즈는 갑작스러운 태풍을 만난다. 좌초한 배에서 탈출해 생존한 소수 인원은 어느 무인도에 당도한다. 이후 상황은 뒤바뀐다. 배 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부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반면 맨손 낚시, 불을 피워 요리하기 등 기술을 발휘하는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은 순식간에 ‘캡틴’으로 변모한다. 그는 요트에서 청소노동자였다. 애비게일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모계 중심 사회가 형성된 사이, 생존자들은 새로운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야단이다. 인간의 사회성을 실험하기에 무인도는 퍽 좋은 배경이다. 이곳에 당도하기 전 각자가 몸담고 가졌던 사회의 질서, 부와 명예는 이곳에선 무용하다. 오직 생존과 연결된 것들만 가치를 가진다.

뜻밖의 삶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외스틀룬드 감독의 장기다. 코미디의 화법 안에서 그는 인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비루한 순간들을 건져 올린다. 계층과 성 역할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질서가 감독이 주로 가지고 노는 소재가 된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배케이션》(2014)은 위험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혼자만 도망쳤던 한 남자가 이후 가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겪는 갈등 상황을 주목한다. 감독에게 첫 황금종려상을 안겼던 《더 스퀘어》(2017)는 현대 미술 갤러리를 배경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던 예술 종사자의 이중성을 발가벗기는 영화다.

《슬픔의 삼각형》은 감독이 패션 사진작가인 아내가 들려준 업계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쓰기 시작한 경우다. 영화는 크게 요트 승선 전, 승선 후, 무인도 상황으로 나뉜다. 프롤로그와 1부 ‘칼과 야야’는 나머지 두 파트와 스토리상의 긴밀한 연결점을 가진다기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배경 스케치에 가깝다. 신체 분절적 평가에 가까운 모델 오디션,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명품 광고 이미지 사이 간극의 적나라한 비교는 패션 업계의 모순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낸다. 야야가 메인 모델로 선 패션쇼 무대 뒤 화면에는 ‘낙관주의를 가장한 냉소주의(Cynicism masquerading as optimism)’ 같은 난해한 문장들이 흐르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은 그럴싸하지만, 맥락도 핵심도 없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위선은 과연 부자들만의 전유물일까

이 영화는 무엇이든 숨길 의도가 없다. 드러내는 태도만 있다. 패션 업계가 화려한 포장지 안에 자본주의의 법칙이 가장 냉정하게 존재하는 세계여서 선택됐음은 즉각 감지된다. 이후 영화는 저녁 밥값을 누가 계산하느냐의 문제로 냉랭한 기류 안에서 뾰족한 다툼을 벌이는 야야와 칼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여성 모델 수입의 3분의 1을 받는 남성 모델의 처지, ‘트로피 와이프’와 같은 말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패션 산업과 사회적 성 역할을 둘러싼 이미지 소비를 조롱하듯 쏘아올린 영화의 신호탄은 이후 보다 본질적인 무언가를 향해 간다. 돈을 가진 자는 그렇지 못한 자보다 우위에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법칙이고, 요트는 그 명제의 정수만 모은 듯한 풍경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배경이다. 2부의 시작은 헬기로 무언가 신중하게 수송되는 장면이다. 요트에는 없는 응급처치 장비라도 들어있는 건가 싶은 박스가 열리면, 유명 브랜드의 초코잼이 들어있다. 그런 것에도 돈을 물 쓰듯 할 수 있는 곳이 요트다. 크루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록밴드 멤버들처럼 “돈!”을 열광적 구호로 외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뭐든 감춰지는 법이 없다. 태풍을 만나 아수라장이 된 요트 안에서 술에 취한 선장(우디 해럴슨)이 마이크에 대고 읽는 건 ‘공산당 선언’이다. 도덕의식 없이 축적한 부를 자랑하던 속물 근성의 승객들은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굴러다니며 분수 같은 구토로 속을 게워내는 중이다. 성 역할을 포함한 모든 기존 계층 질서가 전복되는 3부는 훨씬 더 직접적이다. 사람들에게 직접 잡은 문어를 요리해 나눠주는 애비게일은 자기 몫을 훨씬 더 챙기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하는 거 없이 얻어먹으면 안 되죠.”

돈과 권력, 성별과 이데올로기를 아우르는 이 전복의 드라마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Everyone's Equal)’는 또 하나의 명제는 허상에 불과하다. 부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위선은 권력 구조가 뒤바뀌는 순간 모두의 것이 된다. 은근한 풍자 대신 직설적 묘사를 택한 영화의 방식이 뾰족하다기보다 안일해 보이는 지점은 있다. 다만 계층과 젠더 그리고 이데올로기까지 사정없이 조롱하는 이 영화의 상상력은 유쾌하다가도 자주 서늘해진다. 이 비극적 유머의 드라마는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결말의 감상은 각기 다르게 가져가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슬픈 삼각형의 풍경이다.

외스틀룬드의 다음 상상력은 비행기로 간다

《포스 마쥬어》와 《더 스퀘어》 그리고 《슬픔의 삼각형》은 사람들의 위선과 사회적 딜레마를 다룬다는 점에서 느슨한 연작이다. 땅 위에서 3부작의 마침표를 경쾌하게 찍은 외스틀룬드의 다음 스텝은, 상공의 비행기로 향한다. 차기작의 제목은 《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이즈 다운(The Entertainment System Is Down)》. 런던발 시드니행 비행기 안, 와이파이를 포함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전자기기와 인생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는 듯한 오늘날,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상상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한 실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참가자들을 홀로 방에 둔 채 15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심리 실험이다. 방 안에는 원할 때만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었는데, 참가자들은 이를 누르면 약간의 전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대 121번까지 버튼을 누른 참가자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 하지만 애써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는 언제나 기어이 외스틀룬드 영화 속 유머의 질료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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