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 줄수사 중인 공정거래조사부, 재계 ‘新저승사자’로 급부상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9 14: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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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고발 없이도 독자 수사 보폭 넓혀 주목…윤석열 정부 구속 1호 총수 조현범은 예고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최근 주요 대기업들과 총수들을 잇달아 겨누고 있다. 기업 비리 등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반부패수사부가 야권 등 정치권 수사에 집중하는 사이, 공조부가 새로운 ‘재계 저승사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 등 각 기관이 고발한 사건을 기업 오너 비리로 확대하면서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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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4월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특판가구 입찰 담합’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검찰은 2조3000억원대 가구 입찰 담합을 벌인 혐의로 국내 주요 가구업체 임원들과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방위 대기업 수사, 재계 사정 신호탄 되나 

공조부는 5월16일 구현모 전 KT 대표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이날 공조부 검사와 수사관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과 관련해 KT 본사와 KT텔레캅, 협력업체 및 관계자 사무실 등 1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현재 공조부는 KT텔레캅이 계열사의 시설관리 업무를 하청업체 KDFS 등에 몰아주는 과정에서 KT 본사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구현모 전 대표 시절 KT가 품질 평가 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시설관리(FM) 계열사인 KT텔레캅의 일감을 하청업체인 KDFS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자료 분석을 마무리하는 대로 구 전 대표 등 관련자를 소환해 KT그룹 차원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를 지시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KT텔레캅은 구 전 대표가 취임한 2020년 부동산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대신해 KT그룹의 시설관리 일감 발주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KDFS의 매출은 10배 이상 급증한 반면 기존 하청업체 중 가장 매출이 높았던 KFnS의 매출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공조부의 역할론이 법조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공조부는 서초동에서 재계 저승사자로 거듭났다. 삼성전자(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네이버(부동산 사업 관련 시장지위 남용), SPC(계열사 부당지원·배임), 호반건설(김상열 전 회장의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 누락), 태광그룹(이호진 전 회장 배임) 등 대기업들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빙그레·롯데푸드·해태제과(아이스크림 가격 담합), 하림·한강식품·마니커·체리부로(닭고기 가격 담합) 등을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공조부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압수수색영장을 가장 많이 집행한 부서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히 공조부 수사 과정에서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이 구속되면서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 회장은 2014년 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약 4년간 계열사인 엠케이티(MKT)로부터 약 875억원 규모의 타이어 몰드를 구매하며, MKT에 유리한 단가 테이블에 기초해 현저히 높은 가격을 지급하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막대한 회삿돈을 지인 회사에 빌려주거나, 집을 고치고 외제차를 구입하는 데 쓰는 등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조부는 3월9일 조 회장에게 부당지원  및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조 회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구속된 첫 번째 대기업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주목되는 사실은 공조부가 공정위 고발 요청 없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각 기관의 고발 대상에서 빠진 기업 총수나 임원들의 사익편취 행위를 인지해 강제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 외 분야 기업을 수사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검찰이 각 기관에서 고발한 범위에서만 수사하는 양태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1조원대 ‘특판가구’ 입찰 담합 의혹과 아난티-삼성생명 부정거래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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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부당지원 및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조현범 한국 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3월8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양하 전 한샘 회장도 소환조사

지난 2월 검찰은 국내 가구업체들의 ‘특판 가구 입찰 담합’ 의혹을 두고 한샘과 현대리바트 등 가구업체 사무소 10여 곳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통상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가지고 있다. 공정위 고발 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조사부는 우선 입찰 담합 위반 혐의로 해당 사건에 대해 독자 수사를 시작했다. 공조부는 담합에 연루된 임직원들을 재판에 넘겼으며, 최양하 전 한샘 회장까지 소환조사해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은 공조부가 공정위의 고발 없이 독자적으로 담합 수사에 나선 첫 사례로 기록됐다.

최근 공조부가 강제수사에 돌입한 아난티-삼성생명 부정거래 의혹도 사실 2019년 금융감독원 수사 의뢰에서 시작됐다. 당시 금감원은 아난티의 회계 부정 및 허위 공시 등 혐의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공조부는 허위 공시 정황의 배후를 파고들어 4년 만에 아난티와 삼성생명의 불법 부동산 거래 정황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검찰은 2009년 두 기업의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삼성생명 전직 임직원들이 아난티 소유 부동산을 고가에 사들였고, 아난티 측이 대가로 뒷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공조부는 최근 삼성생명 본사와 아난티 경영진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이만규 아난티 대표이사와 삼성생명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조현범 회장 구속을 포함,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기업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기업 총수들의 각종 범죄에 대해 강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기업 총수들은 물론 공정위의 조사 대상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앞두고 공조부를 지휘하는 이정섭 부장검사의 거취에도 재계가 촉각을 기울고 있다. 이 부장검사의 수사 스타일은 윗선 눈치도 보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끝까지 파고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특수수사를 지휘하던 당시 이 부장검사는 공조부 부부장검사였는데, 공정위 퇴직자의 재취업 특혜 정황을 파악하고 현대차와 현대건설, 쿠팡 등 대기업은 물론 공정위를 상대로 압수수색까지 밀어붙일 정도로 강골이다.  

실제로 이 부장검사는 부부장검사로 근무할 때부터 기업들의 반부패 범죄에 대한 수사 의지가 강했다. 공조부가 지난해 이 부장 보임 이후 대기업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조부가 공정위에 요청한 고발 건수는 10건으로 2013년 공정위에 의무고발요청제가 도입된 후 최대치다. 해당 기업들은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비해 이 부장검사를 잘 아는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로펌이나 전관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분위기는 이 부장검사가 다음 인사에서 승진 또는 전보됐을 때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장검사 인사 전망에 대해선 검찰 안팎의 관측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차장 승진 후보 물망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보여준 가시적인 수사 실적 등으로 검찰 수뇌부의 신뢰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승진 가능성을 점치는 이가 많다. 반면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요 사건들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해 이번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소폭으로 단행될 경우 이 부장검사가 잔류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재계는 ‘기업 저승사자’인 이 부장검사가 공조부를 떠날 경우 한숨 돌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가 반부패부와 공조부를 함께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로 승진할 경우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내부에서는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대검 반부패강력수사부 산하에 반독점과를 신설하고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조사2부를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각종 기업 수사를 비롯해 재판의 공소 유지 부담 급증 등으로 부서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반부패강력부 검사 2명을 파견한 데 이어, 부부장검사 등 형사부 검사 4명을 정식 발령 냈다. 공조부의 수사 검사는 부장 등 9명에서 15명(파견 포함)으로 늘고, 공정거래수사1팀과 공정거래수사2팀, 부당지원수사팀 등 3개 팀으로 재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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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열린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배임 혐의 검찰 고발 노동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경제민주화시민연대, 참여연대 등의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 사법 리스크 초비상 

공조부 확대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위 전속고발권 개편 공약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가 재벌 봐주기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파장이 큰 위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고 객관적인 전속고발권 행사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완 장치인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의무고발요청제와의 조화로운 운용을 약속한 바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 집행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공조부는 2017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이 종전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조사부로 나누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도 대기업의 담합, 갑질,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가 늘며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종전 부서를 확대 분리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재계가 공조부라는 또 하나의 암초를 넘어 순항할 수 있을지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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