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도 바뀌지 않는 탈원전·이념적 에너지 정책
  • 고범규 (사)사실과 과학 네트웍 정책기획본부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2 07:3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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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탈원전 관성 따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그대로…신규 원자력발전소 구상 없어
한화진 환경장관, 정책 전환 위한 준비 덜 된 듯…인적 쇄신 등 새 밑그림 필요

5월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 국정 기조를 맞추지 않으면 과감한 인사 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다음 날 윤 대통령은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에너지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아온 박일준 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해임하고, 강경성 신임 2차관을 임명하는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전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탈원전 및 확대 일변도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에너지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져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 質 떨어트리는 방만한 태양광 시설

그렇다면,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무엇이었고,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맞지 않아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우선 지난 정부가 추진한 에너지 정책의 특징과 이로 인한 영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난 정부는 국내외 에너지 산업과 기술, 제반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급격하고 무리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다른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에너지 산업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현재 잘하고 있는 분야를 기반으로 미래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가 지닌 장점을 스스로 포기했고,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 원전산업 생태계 전반을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위기에 처한 원전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신한울 3·4호기 외에도 신규 원전설비 건설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원전산업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후속 호기 건설계획이 담기지 않았다.

둘째, 무정부적 확대 일변도로 추진된 재생에너지 정책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등록된 태양광 발전시설은 약 21GW에 달하며 이 중 100kW  이상 태양광발전소만 따져도 12만 개소나 된다. 여기에 가정용 태양광발전소 등까지 합치면 태양광 설비용량은 총 25GW 정도로 파악되는데, 이들 태양광 발전설비의 시간대별 발전현황 등은 전력 당국에서 모니터링되고 있지 않다.

독일의 경우 가정용 태양광 발전설비에도 ESS 배터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한편, 실시간으로 중앙에서 각각의 재생에너지 설비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반면, 우리나라 태양광 설비는 전력 당국에 의한 모니터링 및 관리가 불가능한 구형 인버터가 대부분이다. 전력품질 저하를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설비인 ESS 설비도 의무화돼 있지 않다. 전력생산자가 전력품질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국민이 낸 전기요금에 포함된 보조금으로 이득만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태양광 설비의 무정부적 확대 및 관리 방임 상태가 지속된다면 전력산업 안팎에서 우려하는 대정전 사태의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24시간 내내 질 좋은 전력 공급이 필수인 현대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국적 범위에서 발생하는 대정전은 대지진이나 슈퍼태풍 등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와 맞먹는 국가적 재난이다.

셋째,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 및 중간저장 시설 등 꼭 필요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 여론에 부닥칠 소지가 있는 것들은 회피하거나 뒤로 미뤘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시작했고, 그 결과 2016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기본관리계획’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영구처분장을 확보한다는 이 계획에 따라 산업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절차’에 대한 법을 발의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재공론화를 통해 지연시켰으며, 처분장 마련 시한도 2060년으로 미뤘다. 이처럼 기존에 추진되던 것들을 뒤엎거나 지연시키면, 원자력 및 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대한 국민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에 대해 무엇부터 접근하고 누가 어떻게 정책 전환을 할 것인지 살펴야 한다. 우선, 국정 기조에 맞춰 강력히 정책 전환을 추진할 의지와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중심에 서야 한다.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모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영역으로 이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정책 전환 의지를 갖춘 사람이 양대 부처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국가온실가스 감축계획(NDC)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등 준비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 바 있는데, 장차관급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핵심 정책과 현 정부에서 추진되는 핵심 정책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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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력 정책은 원자력 전문가에게 맡겨야

우리나라는 태양광 발전설비 증가에 따라 가스발전소의 수시가동 중단 횟수가 2017년 8536회에서 2020년 1만789회로 증가했다. 산자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가스발전소뿐 아니라 양수발전소, 심지어 원자력발전소까지 출력 조정에 동원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2020년 원전 출력제어 횟수는 4회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6회, 올해엔 4월까지 총 15회나 이뤄졌다. 이처럼 발전설비의 출력제어 횟수 및 가동 중단 횟수가 증가하면 설비 수명과 경제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 운전자가 가속과 감속 페달을 자주 밟으면 연비와 자동차 수명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재생에너지를 맹신하는 이들이 ‘에너지 민주주의’ 및 ‘온실가스 감축’ 등의 명분을 앞세워 잔뜩 태양광 설비를 늘렸지만, 그 결과는 무정부적 태양광발전소 운영 및 관리로 이어졌다.

우리 여건에 가장 적합한 에너지원인 원자력발전을 앞세워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산업 경쟁력 확보와 해외 수출시장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기본 국정 방향 중 하나임을 고려한다면, 무정부적 태양광 설비 확대를 멈추는 것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비전문적이고 비과학적 정책에 취약했던 제도적 허점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한편, 절차와 상식에 어긋난 정책은 상식과 순리에 맞게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태양광에 대한 보조금 및 정책 지원은 설치 분야나 발전사업자가 아닌 연구개발 분야와 재생에너지 수출 분야에 집중되어야 한다. 또한, 원자력 관련 정책은 원자력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원자력 전문가들은 배제되거나 소외되었다. 그리고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승인한 전력정책심의회 구성원 역시 반핵운동가를 포함, 지난 정부에서 선임된 이들이다.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현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와 손발을 맞출 수 없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한, 에너지 정책 전환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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