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박원순의 자살이 그의 범죄를 덮을 순 없다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2 08:05
  • 호수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에 참 짐승 같은 사람이 있다. 당사자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논리를 제시하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는데 실제로 짐승보다 못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친딸을 성폭행해 유죄 선고를 받은 어떤 아버지는 “딸이 나를 유혹했다”고 변론했다. 아버지는 고소인인 딸이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아빠 저도 보고 싶어요”라는 내용을 끄집어내 자기를 방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은 어려서부터 가족들이 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모습을 봤기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김재련 변호사 《완벽한 피해자》). 

소위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팬클럽 집단이 박원순 옹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그들이 제발 위에서 예를 든 종류의 인간형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박원순 옹호 영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까닭

필자는 작고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인권변호사이고 사회개혁가이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 점을 평가한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듯이 박원순도 ‘부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을 저지른 오점을 남겼다. 그에겐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그래서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박 전 시장의 사회개혁성을 믿는 것에 대해선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들이 ‘박원순은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피해자가 문제였다’라는 믿음까지 외치는 것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런 현상을 그대로 놔두게 되면 깊은 상처를 겨우 꿰매가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박원순의 피해 여성이 또다시 2차, 3차, 4차 가해를 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 지도자의 성범죄쯤은 묻지마 지지자들이 세력을 뭉치고 돈을 모아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한 편 제작하면 금세 뒤집을 수 있다는 헛된 꿈이 판치게 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원순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힘과 팬덤이 정의 행세를 하고, 법이 약자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가 오게 해선 안 된다. 셋째,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딸이 어떤 권력자의 직원으로 일하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권력자 쪽 얘기를 믿고 그를 옹호하겠는지 묻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가 당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남에게는 받아들이라고 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영화 제작자들이 내세우는 법리는 박원순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중단됐고,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성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1차 가해가 입증되지 않았기에 2차 가해도 있을 수 없다는 얘기. 허무하고 황당한 궤변이다.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멀쩡한 박원순은 왜 자살했나?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어느 날 그는 산에 올라가 죽은 것인가? 피해자가 4년간 박원순의 성희롱에 시달리다 경찰 고소에 이르게 된 수십 가지 구체적인 강제추행 사례는 모두 꿈이나 환상 속에서 벌어진 일이란 말인가?

 

공은 추앙할 수 있겠지만 과까지 부인해선 곤란

고인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게 된 것은 영화 제작자들이 인간 상식과 경험칙에 따른 실체적 사실을 없다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그를 추앙한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박원순의 범죄적 행각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피해자로 하여금 더 이상 가해자 세력에게 짓밟힐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 박원순을 높이려면 공만 높였어야 했는데 과까지 없는 것으로 조작하려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자살은 위기에 처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행위 목록 중 하나가 아니다.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게 범죄인 것처럼 나의 생명을 해치는 것도 동일한 범죄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혹여 자살을 관대하게 보는 풍조를 조성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