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포츠는 당신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 최영미 시인/ 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7: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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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새벽에 피파(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프랑스를 2대1로 꺾었다! 아침에 일어나 기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재방송이라도 보려고 스포츠 채널을 돌리다 나는 절망했다. 골프, 미국 프로야구, 한국 프로야구, 당구…. 2019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 명승부전을 KBSN스포츠에서 중계한다는 자막은 있지만, 2023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경기를 중계하는 채널은 발견하지 못했다. 피파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경기 결과가 메인에 뜨던데, 한국 방송들은 뭐 하나. 오늘 새벽 경기였는데 저녁에나 재방송하려나.

주장 이승원이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주장 이승원이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골프를 중계하는 채널이 셋이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학교 교실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교사도 있다니, 골프에 미치면 다른 게 안 보이나 보다. 한국인들에게 골프는 스포츠 그 이상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혹은 자신이 속하고 싶은 가상의 계급을 과시하고파 골프채를 휘두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포츠는 때로 신분과 재산의 상징이 된다. 축구 경기장에 갈 때, 그리고 비행기를 탈 때 나는 세상에 나보다 우월한 계급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축구에 대한 글을 신문에 기고한 덕분에, 언론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한두 번 내게 국가대항 축구 경기의 VIP 표를 선물해 귀빈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다. 야구 경기의 1등석 표는 축구처럼 비싸지 않고, 야구는 때로 3등석에 앉아 응원 열기를 느끼며 보는 게 더 재미있다. 1등석이든 3등석이든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몸이 무거워져 요즘 나는 경기장에 가지 않는다. 텔레비전 중계로는 공의 속도를 느낄 수 없어, 키움 히어로즈의 안우진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그 묵직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욕구가 일기도 한다.

WBC에서 그렇게 깨졌는데도 한국인들의 야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나도 저녁이면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1인, 평일 저녁 시간에 야구 말고 다른 소일거리가 없어 야구를 본다. 스포츠팬들에게 올해는 즐거운 해다. U-20이 끝나고 여름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2023 피파 여자월드컵이 열리는데, 한국팀 경기만 아니라 전 경기를 생중계하면 좋겠다. 요즘 여자축구 수준이 많이 올라와 유럽에서는 남자축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년에 유로2022 여자축구 결승전, 영국과 독일의 경기를 보고 싶었는데 중계하는 곳이 없어 아쉬웠다. 스포츠에서도 남녀 차별이 공고해 한국의 스포츠 방송사들은 유로2020 남자축구는 생중계하면서 여자축구는 중계할 생각을 않는다.

스포츠계에서 남녀 차별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나, 작년에 카타르월드컵에 대한 글을 쓰며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A신문사에서 제안한 월드컵 에세이 연재를 처음엔 쓰려 했으나,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B신문에 기고한 글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더는 축구에 대해 신문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쓴 A신문의 시론 밑에 달린 험악한 댓글들을 보고 나는 놀랐다.

“축구도 모르는데 글을 써야겠고” “축구 모르는 티를 그렇게 팍팍 내시나” 등 시비를 거는 글들에 대해 여기서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불쾌한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의 압도적 다수가 남자, 50대 남성이라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50대면 한창 일할 나이인데 신문 기사에 악플이나 달며 시간을 보내나. 여자가 축구에 대해 말하는 걸 한국 남자들은 봐줄 수가 없나 보다. 축구는 당신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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