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생 꿈도 갈아버렸다…국가시험 초유의 ‘답안지 파쇄’ 사태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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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력공단, 609명 답지 채점 전 파쇄하고 한달 간 인지도 못해
대상자에 재시험 일정 및 보상 개별 안내…형평성 논란 불가피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5월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5월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기술자격 시험 답안지가 채점 전 파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재시험과 보상 방안을 비롯한 후속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응시자 간 형평성 논란 등 파장이 확산할 전망이다. 공단이 답안지를 파쇄하고도 한달 동안 이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운영과 관리부실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인력공단은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지난달 23일 시행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필답형 답안지가 채점 전 파쇄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3일 밝혔다.

당시 연서중에서는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에 응시한 수험자 609명이 시험을 봤다. 시험 종료 후 답안지는 포대에 담겨 공단 서울서부지사로 운반됐다. 서부지사로 옮겨진 답안지 포대는 이후 인수인계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로 공단 채점센터로 가지 않고 모두 파쇄됐다. 

서울서부지사에는 연서중 답안지를 포함해 총 18개 답안지 포대가 옮겨졌는데, 모두 금고 내로 옮겨져 보관됐어야 한다. 그러나 연서중 답안지 포대 1개는 금고가 아닌 옆에 있던 창고로 옮겨졌다.  

금고 안에 있던 답안지는 이튿날인 지난달 24일 다른 지역에 있는 채점실로 보내졌다. 채점실 운반 과정에서 포대 1개가 비는 사실을 인지했더라면 더 빠른 조처가 가능했지만, 누구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공단은 해당 시험 답안지를 본격 채점한 이달 20일에서야 609명 수험생 답안지가 사라졌고, 이미 파쇄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공단 측은 "국가자격시험이 매우 많기 때문에 시험을 치른 즉시 채점을 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5월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 사고와 관련한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5월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 사고와 관련한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609명에 개별 안내…재시험 형평성 논란 불가피

결국 공단의 안이한 관리로 609명의 응시자가 재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당시 전국에서 이 시험을 본 응시생은 총 15만1797명이다. 재시험을 보더라도 동일한 문항으로 볼 수 없는 데다 이미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과의 공정성 및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하다.  

국가기술자격 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는데, 매 시험마다 다른 문제로 출제해야 한다. 공단이 추가시험 기회를 6번 제공하는 만큼 최소 6개 유형의 시험 문제를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예상치 못한 재시험의 난이도 조절을 비롯해 여러 난제가 남아 있다. 

공단의 관리 부실 책임이 드러나면서 수험생들의 줄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상적으로 제출한 답안지가 채점도 없이 파쇄된 것 자체로 이미 수험생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어서다. 

우선 공단은 답안지가 파쇄된 609명의 응시자 전원에게 개별 연락해 사과하고, 후속 대책을 설명할 방침이다. 

공단은 수험자의 공무원시험 응시 등 자격 활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다음달 1∼4일 추가시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시험 결과 도 당초 예정된 기사·산업기사 정기 1회 실기시험 합격자 발표일(6월 9일)과 동일하게 발표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응시생 일정 상 내달 1∼4일 시험이 불가능한 수험자는 내달 24∼25일에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이들에 대한 합격자 발표는 내달 27일 진행할 방침이다. 

공단은 또 609명에게 교통비 등을 지원하고, 추가 보상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 중 재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전액 환불한다. 

공단은 책임자를 문책하는 등 엄중 조치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과정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기로 했다.

어수봉 공단 이사장은 이날 오전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가자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어 이사장은 "공단이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 여러분께 피해를 준 점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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