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하지만 유쾌한 바이러스로 대학로 평정하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7 13: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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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
코로나보다 더 강력한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우리들의 일상도 자유롭지 못했던 2021년 2월. 한 편의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대학로에서 개막해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긴 터널 같았던 시기로 기록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였다.

극장 바깥은 인류가 팬데믹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극장 안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불행했던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을 마스크를 쓰고 불편하게 관람해야 했지만 예상과 달리 관극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고 유머러스하며 에너지가 넘쳤다.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뤘다고 평가받은 이 작품은 극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코로나보다도 더 강력한 유쾌-호쾌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관객들은 오랜만에, 비록 마스크 안에서였지만 마음껏 웃고 박수를 치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었다.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 ⓒ(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 ⓒ(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대 한 장면 ⓒ(주)랑 제공

독립운동과 혼백들의 콜라보

그동안 뮤지컬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영웅적인 독립운동가와 그들을 돕는 이름 없는 민초들의 고난한 삶 속에 피어나는 휴머니즘과 인류애’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결이 다르다. 이 작품은 식민지로 인해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독립운동을 둘러싼 무거운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그 서사를 이끄는 중심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원한을 가지고 구천을 떠돌면서 성불만을 꿈꾸는 여러 혼백의 사연이다. 장르적으로는 가장 강력한 원혼인 소녀과 쿠로이 저택을 둘러싼 일본의 개발업자 그리고 우연히 흘러들어온 ‘퇴마사’가 이러저리 얽히는 미스터리 코믹 역사물이자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의 소동극이다.

1934년 독립운동이 어둡게 지속되는 식민지 시대 배경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여주인공 소녀의 존재가 공연 내내 관객들을 슬픈 분위기로 이끌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식민지 시대에도 민초들의 삶은 계속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민족 특유의 흥과 낙관성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에 뛰어든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절망한 시계수리공 청년 박해웅은 형을 빼닮은 모습으로 인해 일본 순사에게 쫓기다가 우연히 폐가(廢家) 쿠로이 저택에 운명처럼 들어선다.

그 저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박령이 돼있는 옥희와 각자 성불을 꿈꾸는 여러 원귀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해웅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눈치챈 개발업자 측에서 그러잖아도 귀신 씐 저택을 호텔로 개발하는 데 걸림돌이었던 혼백들을 없애기 위해 그에게 ‘퇴마사’ 역할을 제안하게 된다. 결국 추적도 피하고 안전한 공간인 쿠로이 저택에서 일본 개발업자 측과 동업 아닌 동업을 하게 된 해웅은 점차 지박령 옥희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녀를 통해 점차 쿠로이 저택의 비밀을 찾아보게 된다.

옥희는 원래 바닷가 절벽에 세워진 이 저택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는 지원책 역할을 할 예정이었지만 불행한 사건에 연루돼 원혼이 된다. 그녀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박해웅이 자신을 알아보자 처음에는 ‘기브 앤 테이크’ 방식으로, 이후에는 진심을 담아 우정을 쌓고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유쾌함을 노래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소극장 공연의 특징 중 하나인 배우들의 활약이 특히 눈부시다. 특히 혼백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다역으로 존재하기에 조연과 앙상블 역할을 오가며 1인 2~4역은 기본이다. 극 중에서 여러 코믹한 순간들이 있지만 즉흥적인 웃음을 주는 상황도 공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이끄는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특히 혼백들이 자신이 다역을 맡았던 역할 안에 ‘빙의’라는 설정으로 들어가서 현실과 혼백을 동시에 연기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이는 무대 언어만이 줄 수 있는 연극성을 살리면서도 서사적인 해결까지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는 하이라이트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홀로그램 스타일의 혼백 영상과 혼백들이 추는 군무는 잘 차린 잔칫상에 감칠맛 나는 양념처럼 잘 버무려져 있다.

ⓒ(주)랑 제공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포스터 ⓒ(주)랑 제공

작품성을 배가시키는 세련된 음악

이 작품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등장한다. 혼백 앙상블이 구사하는 흥겨운 팝, 록, 보사노바에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게 재즈, 국악, 전통가요도 가미돼 있다. 특히 소품으로 등장하는 풍금과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압권이다. 가사와 멜로디, 시대 상황과 악기 자체가 주는 매력이 모두 용광로처럼 통합돼 큰 매력을 선사한다. 극의 흐름과 개별 캐릭터들의 상황과 심리에 맞게 잘 표현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이 작품을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주는 핵심 퍼즐이다.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초연 당시 많은 관객을 쿠로이 저택으로 초대해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400석 이하 소극장 부문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까지 수상하며 완성도도 인정받았다. 코로나19 이후 좀 더 편해진 객석에서 120분의 러닝타임 동안 더욱 코믹 발랄하고 한줄기 페이소스까지 느낄 수 있는 웰메이드 작품으로 현재 대학로에서 두 번째 시즌 공연을 진행 중이다. 7월23일까지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상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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