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회의원 ‘보좌진’에게 혼난 광주경찰, 무슨 일이?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6: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18 행사장에 날아 든 여의도 문법…국회의원 ‘심기 의전’ 논란
“의원님들 내려 걸어가라”는 말에 민주당 의원 보좌진들 ‘뿔났나’

지난 1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후문 앞 도로. 30대 초반 즘으로 보이는 젊은이 서너명이 도로 한복판에서 나이 지긋한 교통경찰관과 교통자원봉사자를 향해 거칠게 몰아붙였다. 교통 통제에 대한 불만을 품고 항의한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두서너 명의 국회의원 보좌관·비서진(이하 보좌진)들이었다. 자식뻘의 젊은 보좌진들의 항의에 광주북부경찰서 소속 A경감과 자원봉사자 B씨는 해명과 달래기를 넘나들며 진땀을 흘렸다. 양 측 간 항의와 해명을 섞은 설전이 10여분 넘게 이어지면서 주변은 더욱 소란해졌다.

5·18민주묘지 후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인데다 추모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소란 탓인지 단숨에 이곳을 지나가던 추모객 등의 발길을 붙잡았다. 일부 경찰관과 질서 안내요원들은 교통경찰관과 자원봉사자를 고압적으로 몰아붙이는 생경한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1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후문 앞 도로. 교통통제에 대한 불만을 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비서진이 경찰관에게 거칠게 항의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1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후문 앞 도로. 교통통제에 대한 불만을 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비서진이 경찰관에게 거칠게 항의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野 보좌진-경찰, 의원 차량 통제 놓고 ‘옥신각신’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상황은 이렇다. 민주당 당지도부와 국회의원을 실은 버스 3대가 9시40분께 5·18묘지 후문 앞 교차로에 도착했다. 사달은 하필 그 시각에 일대가 교통 통제되면서 비롯됐다. 민주당 버스는 애초 목적지였던 구 망월묘역(제2묘역) 주차장으로 좌회전해서 들어가지 못했고, 의원들은 노상에 내려 1200m 가량 떨어진 5·18민주화운동 43주년 행사장까지 빗길을 걸어가게 됐다. 

그러자 의전을 맡았던 보좌진들이 A경감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사전 정보 공유없이 출입을 차단한 것은 부당하다며 따졌다. 경찰이 민주당 버스를 막아 의원들이 노상에서 하차해 행사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바람에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는 것이 항의의 골자였다. 

이에 대해, A경감은 “독단적으로 막은 것이 아니고, 민주당 버스가 막 도착한 시각에 상부에서 무전으로 차량 전면통제 지령이 내려와 어쩔 수 없이 차단했다”며 수차례 걸쳐 이해를 구했다. 말꼬리 잡기식으로 항의가 계속되자 A경감은 “제가 잘못했다면 징계처분을 달게 받겠다”며 “여러분 말씀이 다 맞다. 그만 하자”고 달랬다. 

이날 이들은 국민의힘과의 형평성도 문제 제기했다. 똑같이 비표가 있는데 국힘 버스는 들여보내주고 왜 민주당 차량만 5·18 제2묘역 주차장 출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5·18민주묘지 후문은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만큼 모두 하차해 행사장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굳이 계산하자면 제2묘역 주차장에서 도보로 이동한 국힘 당직자들보다 후문 앞에서 막바로 내린 민주당 의원들이 거리상으로 100m 가량 덜 걷는 의도치 않은 특혜(?)를 받은 셈이 된다.

 

보좌진들 왜 그렇게 화났나…‘의원들 심기 건드린’ B씨 말?

그렇다면 보좌진들은 왜 그토록 화가 난 것일까. 얼마 가지 않아 민주당 보좌진들이 진짜 격앙한 이유로 의심되는 정황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보좌진 스스로의 말을 통해서다. “그때 당시 상황에서 제가 화났던 것은 주차관리를 못했던 것도 있지만 저분(교통자원봉사자 B씨)이 오셔가지고 ‘국회의원이면 어지간하면 내려 걸어가라’며 저희가 마치 특권을 요구한 것처럼 말씀하신 것이잖아요.” 

이 보좌진의 말은 크게 ‘국회의원이면 어지간하면 내려 걸어가라’와 ‘저희가 마치 특권을 요구한 것처럼 말씀하셨다’의 두 문장으로 나뉜다. 앞 문장은 B씨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말한 객관적 사실부분에 해당되고, 뒤 문장은 B씨 말에 덧붙인 보좌진의 주관적 판단 영역에 속한다. 

곧이은 B씨의 항변이다. “그 순간 (버스가)정차됐고 의원님들이 바쁘기 때문에 내가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낳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그래서 (의원들이)걸어 간 것이다. 어떤 의원이냐. 내가 대신 의원에게 말해주겠다. 만만한 우리한테만 따지지 말고...” 그는 A경감과 함께 당일 현장 교통정리를 맡았던 지역모범운전자회 소속 70대 자원봉사자다. 

지난 1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후문 앞 도로. 교통통제에 대한 불만을 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비서진이 경찰관에게 거칠게 항의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한 보좌진이 A경감에게 “직책이 어떻게 돼요?”라고 신분을 캐묻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 1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후문 앞 도로. 교통통제에 대한 불만을 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비서진이 경찰관에게 거칠게 항의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한 보좌진이 A경감에게 “직책이 어떻게 돼요?”라고 신분을 캐물은 뒤 핸드폰으로 신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사저널 정성환

‘번지수 잘못 짚었다’가 신상 털린 A경감 

결국 양 측의 대화를 종합하면 의원들에 대한 ‘심기 의전’을 거슬린 B씨의 말이 화근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민간인 B씨에 대한 불만이 A경감에게 향한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니 A경감의 상부지시에 따른 ‘교통통제 불가피론’이 먹힐 리가 만무했고, 그는 되레 번지수를 잘못 짚은 죄로 신상이 털리는 험한 꼴만 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한 보좌진은 A경감에게 “직책이 어떻게 돼요?”라고 신분을 캐물었고 이에 그는 “이XX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보좌진은 “경감이네요”라고 되물었고, “네”라고 했다. 

미처 분이 가시지 않은 B씨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여기가 복잡하니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갈 것을 요청했다”며 “국회의원이라면 솔선수범해서 빗길이라도 걸어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여기가 고향이고 더불어민주당이지만 민주당이라면 더 고개 숙이고 걸어가야 한다”면서 “그런데도 보좌진들이 따지고 저런 것은 잘못 된 일이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해당 보좌진은 “A경감의 잘못은 없다. 다만 국민의힘 버스는 출입을 허용한 반면 민주당 버스만 가로 막은 출입 관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며 ”경찰관 신분 확인도 불이익을 주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여의도 ‘심기 의전’의 민낯 

이번 소동은 5·18행사장에서 여의도의 ‘심기 의전’ 민낯을 보여준 사례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한 중앙 언론매체에 따르면 의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여의도라고 한다. ‘심기경호’라는 말을 밥 먹듯 쓰는 여의도의 의전은 밀착적이고 일상적이라는 평가다. 이 언론이 제시한 예시다. (중앙일보 2012년 8월21일자 '<분수대> 의전(儀典)' 기사 참조)

“의전을 중시한 과거 C당 대표는 스스로 치약을 짜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 대표실에서 그가 자연스럽게 칫솔을 내밀면 주변에서 치약을 짜준다는 목격담이 기자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D 원내대표를 한 당 관계자가 물샐틈없는 의전으로 만족시켰다는 소문이 퍼지자 상대 당 E 정치인은 “우리는 왜 저렇게 안 되냐”며 부러워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고위 공직자 과잉 의전의 ‘대명사’는 지난 2016년 일부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고 서울역 열차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와 KTX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올랐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경우다. 의전 과잉은 비단 중앙 관계와 정치권뿐만 아니다.

전남의 한 자치단체에선 비상구 승강기를 단체장 전용으로 몰래 쓰다가 들통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다른 지자체에선 시장의 출퇴근 시간 5분 단축을 위해 청사 인근에 새로 관사를 얻어주기도 했다. 자치단체장 집무실 변기를 뜯고 새로 설치했다거나, 멀쩡한 관용차를 새로 교체했다는 이야기는 흔한 일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관행을 두고 ‘의전 중독’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물론 한때 빗속에서 브리핑하는 법무부차관 뒤에서 한 직원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들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으면서 과잉의전을 당장 근절시킬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현주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서다.

과잉 의전에는 잘 보이고 싶은 아랫사람들의 과도한 충성심 탓도 있다. 하지만 의전 수행자의 자발적이고 과도한 충성심에 따른 행동이라 하더라도 수혜자인 의전 대상자는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한바탕 소동이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과도한 의전을 그만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상급자·고위공직자에 대한 과잉 의전보다 국민을 향한 과잉 의전이 필요하다. 시사저널이 일주일이 지난 일을 새삼 보도하기로 ‘결심한 이유’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