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석유공사, 연봉만 올리고 유전 개발은 손 놓나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4 15: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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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20조원 육박…이자 감당도 힘든데 사장 연봉 40.9% 인상
산유국 지위 잃고도 유전 탐사·시추 사실상 중단

한국석유공사의 최근 4년간 탐사·시추 성공률은 ‘0%’고, 신규 탐사는 10년째 지지부진하다. 해외 광구는 잇따라 매각 수순을 밟거나 시추가 중단되고 있다. 석유공사가 유전 개발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돈잔치’ 논란에 휩싸였다.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인데도 임직원 임금을 과도하게 올렸다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공사 사장 연봉(1억8286억원)은 40.9%, 상임이사는 31.9% 각각 인상됐다. 직원들의 연봉(평균 9544만원)도 1년 전보다 9.9% 뛰었다. 반면 같은 재무위기 공공기관 중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15.58%), 한국철도공사(-14.15%), 서부발전(-12.73%) 등의 기관장들은 보수를 스스로 깎아 대조를 보였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부실 공기업들의 자구 노력에도 온도 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석유공사
울산 남동쪽 58km 지점에 있는 동해 가스전이 2021년 천연가스 고갈로 생산을 중단했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했던 동해 가스전 모습 ⓒ한국석유공사

자산 매각·투자 감소, 경영 악화로 악순환

석유공사의 부채(2021년 기준)는 19조9630억원으로 자본잠식의 늪에 빠졌다. 매년 내야 하는 이자(5000억원)와 법인세(4000억원)를 합치면 연간 금융 부담이 9000억원에 이른다. 자구 노력만으로는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석유공사를 재무위험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고, 석유공사는 공기업 평가에서도 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투자 부적격’에 해당할 만큼 재무구조가 나빠 내려진 성적표다. 석유공사는 이미 2019년에 3500%의 부채비율을 기록했고, 2020년에는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1조1409억원까지 떨어지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석유공사가 빚더미에 오른 건 이명박 정부 때다. 자원외교를 한다며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사업에 투자하고, 캐나다 석유회사인 하베스트를 인수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2007년 64%였던 부채비율이 2016년 528%까지 치솟았다. 박근혜 정부는 자산을 팔아 빚을 갚으라고 지시했고, 석유공사는 2017년 완공된 지 3년도 안 된 새 건물을 2200억원에 팔았다. 사옥 매각이 빚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을까.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사옥 임대료로 15년간 1446억원을 내야 하는데, 당시 사옥을 팔지 않고 공사채를 발행했다면 585억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밀어붙인 실무자 3명을 징계했다.

석유공사의 자산 매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돈이 되는 해외 자산도 연달아 팔았다. 지난해에는 영국 자회사인 다나 페트롤리엄(다나)의 네덜란드 자산을 1조4110원에 팔았다. 다나는 북해 원유·가스 탐사업체로, 석유공사가 2010년 3조4000억원에 인수해 2020년 기준 7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짜’ 기업이다. 2011년에는 페루 석유회사를 고작 28억원에 매각했다. 2009년에 8300억원을 주고 산 회사를 헐값에 팔아치웠다.

앞서 2016년에는 미국 올드 홈, 카자흐스탄 잠빌 등의 자산도 매각했다. 그사이에 국제유가는 계속 급등했다. 매각 자산 중에는 외형 성장 위주의 ‘묻지마’ 투자로 막대한 혈세가 낭비된 캐나다 하베스트 같은 부실기업(1조3000억원 손실)도 있지만 다나와 미국 앵커 해상유전처럼 고유가 상황에서 상당한 가치 상승을 예견할 수 있는 사업도 다수 포함돼 있다. 부채 상환도 중요하지만 성급하고 무리한 매각이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석유공사법 1조에 명시된 석유공사 설립 취지는 ‘석유 자원 개발’로 ‘에너지 수급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부채를 줄인다며 신규 투자를 줄여왔고 해외 자산도 매각했다. 대신 국내외 기업들과 손잡고 수소 사업에 뛰어들었다. 석유공사는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석유 개발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석유공사의 중장기 계획에 따르면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2015년 23만1000BOE(석유환산배럴)에서 2026년 12만7000BOE로 11년 만에 반 토막 날 것으로 추산된다. 경영 악화가 자산 매각과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생산량이 줄고 다시 경영 악화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마른행주를 짜듯 구조조정으로 돌파구를 찾아 왔는데, 석유공사가 못미더워 예산 투입에 인색했다. 2010년 1조2556억원에 달했던 정부 출자액은 이후 매년 줄어 한 해 수백억원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2013년 이후 신규 탐사 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유전 개발 성공사례도 전무한 상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자원 개발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예산이 없어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석유공사 사옥 ⓒ한국석유공사

국내 대륙붕에서 유전 개발 불씨 되살아날까 

‘동해-1’ 가스전 불꽃이 꺼졌다. 동남 대륙붕 울릉분지 제3기 퇴적층인 이곳에서 2004년 가스가 나온 지 19년 만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95번째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3000억원을 투자해 19년간 5조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2020년 가스 고갈로 산유국 지위를 잃었다. 국내 대륙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탐사에서 울릉·제주·서해분지 등 3개 퇴적분지에서 석유 부존 징후들이 나오면서다.

국내 연구진의 분석 자료를 종합하면 수심이 깊은 동해는 탐사 위험이 뒤따르지만 가스 부존 가능성이 높고 중·대규모 매장량이 기대된다. 서해 퇴적분지에는 주목할 만한 지진파 이상대(anomaly)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남해분지는 이미 1994년 제5광구와 JDZ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징후가 확인됐다. 그동안 대륙붕의 석유 부존 탐지에 실패했던 석유공사가 지난해 시작한 ‘광개토 프로젝트’로 국내 자원개발 탐사에 다시 나섰다. 동해에서 제2, 제3의 가스전을 찾아 산유국 재진입이 목표다. 

전경련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해외 석유·천연가스 자원개발률은 10.7%로 일본의 40.1%보다 훨씬 낮다. 이는 최근 5년(2017∼21) 사이 신규 사업(24건)은 줄고 종료사업(103건)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원개발률’은 국가안보의 바로미터다. 국내 대륙붕 탐사의 성공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석유공사 자원개발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와 ‘정책’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명박 정부의 무분별한 자원외교는 ‘적폐’로 낙인찍혔고, 박근혜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 드라이브에 제동을 건 데다 문재인 정부는 구조조정 TF까지 꾸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원개발 사업은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 붓고도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다.

반면 일본은 20세기 초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해 범정부 차원의 자원 확보 전략을 중단 없이 유지하고 있다. 앞 정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다음 정부는 거름을 주고, 그다음 정부가 열매를 따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3%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유전 개발은 정권마다 이념에 따라 뒤집을 게 아니라 백년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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